얼마전 어느 책 전문 웹진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독설가를 뽑는 설문조사를 했다.
①강준만 ②진중권 ③장정일 ④김어준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른다. 다만 1, 2, 3, 4번 독설가들의 책을 다 읽어본 내가 3번에 기꺼이 표를 던졌다는 사실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장정일은 독설가다. 1, 2, 4번의 인물들이 최근에 들어서야 각광받는 독설가들이라면 장정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독설가다. 그러나 장정일은 독설가라기 보다 외설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글을 읽지 않고, 그에 관한 글을 읽은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2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내는 그가 최근 <보트하우스>라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은 제목의 책을 가지고 나타났다. 창비에서 나오는 동화책만큼 예쁘고 깔끔한 책을 들고서.

<보트하우스>는 작가 서문이 매우 길다. 최근 근황부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까지 독자는 작가의 잘난 체를 끈질기게 참아내야 한다. 전체 책 분량의 1/4 가량이 지나면 예외 없이 외설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하는 작가 인터뷰. 작가는 언론과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자신의 지면을 빌려 말한다. 그것도 아주 품위있고 고상하게.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작가는 실제 인물처럼 보이는 주인공들을 통해 현실 세계에 독한 혀를 낼름거린다. 그의 눈에 보이는 한국의 작가들은 '포르노 비슷한 걸 써서 감옥에라도 한 번 가보자는 정도의 패기'도 없는 '양계장의 닭들'이다. 이 닭들은 '여자팬을 만나 잠자리에 드는 일을 인세와는 별도로 주어지는 상여금이나 위로금'으로 받아들인다. '공화국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번도 낙마하지 않고 실세에 몸을 담은' 정치인도 작가의 눈을 피해 가진 못 한다. '훈련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CF로 뜬 모델이 탤런트나 배우로 발탁되는' 경우도 작가에겐 아니꼽다.

소설 속의 수 많은 독설들은 우스꽝스러운 성행위 묘사와 어울려 웃음을 자아낸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서 배웠던 대로라면 시점도 수시로 바뀌는 엉터리 소설이지만 <보트하우스>는 '청소년 필독도서'인 카프카의 <변신>에 비길 만하다. (<보트하우스>의 여주인공은 남자의 손길이 닿자 갑자기 타자기로 바뀐다.)

나는 이 책을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을 때처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해야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즘, 해학과 풍자가 있는 장정일식 독설은 오랜만에 만나는 단비와도 같았다.

                                                                                    박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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