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하나로 깨진 오프 더 레코드
지난 7월 20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의 젊은 발행인 아서 설즈버거 (A. G. Sulzberger)를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초청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오피니언 에디터인 제임스 베넷 (James Bennett) 기자와 함께 갔다. 혹시 신문의 논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에 그렇게 했다는 게 설즈버거 측 설명이었다.

백악관에서는 이 만남을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초청했다. 과거에도 뉴욕타임스 발행인과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때마다 내용은 밖에 공표하지 않는 게 관례였었다. 뉴욕타임스 측은 이번 미팅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7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래 내용으로 트위터 메시지를 공개했다. 트럼프는 여기서 일방적으로 언론이 생산하는 대부분 뉴스를 가짜뉴스 (fake news)라고 규정하고, 설즈버거와 그 문제를 얘기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기자들을 시민의 적 (enemy of the people) 이라고 비난했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성한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가 공개되자, 뉴욕타임스는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이 파기됐다고 느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곧바로 뉴욕타임스의 입장을 정리한 반론을 발표한다. <뉴욕타임스 발행인 A. G. 설즈버거 성명>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모두 5문단으로 돼있다.

 

설즈버거 대 도널드 트럼프

▲ 뉴욕타임스에 실린 설즈버거의 성명문.

요점은 세 가지다. 첫째, 그는 대통령의 계속적인 반 언론적 언행이 언론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자들을 매우 위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목적으로 백악관에 갔다고 말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적대적 표현들은 미국 사회를 분열시킬 뿐 아니라 특히 해외에서 독재자들에게 자유언론을 탄압하고, 기자를 핍박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설즈버거 발행인은 이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가 대통령이나 그의 행정부를 보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항의하거나, 반론을 제기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개별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계 전체와 기자들 모두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퍼붓는 일은 미국 민주주의의 뼈대를 흔들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설즈버거 발행인의 공개적인 반론이 나가자, 대통령과 신문사 발행인의 갈등은 세계적인 뉴스로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트위터에 뉴욕타임스의 반 트럼프적 보도가 얼마나 비애국적인지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올렸고, 미국의 매체들은 이 갈등을 주요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트럼프가 작성한 트윗.

사태의 당사자인 뉴욕타임스는 트위터 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 정치면에 주요 기사로 이 내용을 매우 자세하게 다뤘다. 취재대상에 자사의 발행인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경쟁사인 워싱턴포스트 역시 30일 사건의 전말을 매우 자세하게 다루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기사를 위해 뉴욕타임스의 설즈버거 발행인과 전화인터뷰를 하고, 심지어 전임 발행인인 그의 아버지에게 연락해 아들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논평을 받아 게재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밖에 별도의 칼럼을 게재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디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설명하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러한 대통령을 만나는 일은 언론사 경영인으로서는 차라리 오후 일정을 비우고 휴식을 취하는 선택만도 못하다고 비꼬았다.  이 칼럼 마지막 부분에서 필자는 트럼프는 누구를 만나던 사후에 오프 더 레코드 약속을 스스로 깨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약속은 신뢰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 외에도 CBS 뉴스, 가디언 등 유력한 매체들이 이 사태를 심층취재해 보도했다.

▲ 설즈버거와 트럼프의 사건을 다룬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 트럼프를 비판한 가디언 기사.

 

설즈버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언론의 길> 칼럼에서 이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역시 설즈버거 가문이 추구하는 저널리즘 철학이, 그리고 발행인과 대통령의 공개적인 갈등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는 선진매체의 언론관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거리가 크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설즈버거 발행인이 아직 37세 밖에 안 된 젊은 경영인이라는 점, 또 그가 브라운 대학을 다닐 때 프로비던스 저널지에서 인턴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포틀랜드에 있는 오레고니언(the Oregonian)이라는 신문에서 수습기자부터 10년 정도를 일선기자로 일하며 기자로서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 등을 알게 되면서 한국 언론사의 경영권 세습방식과 크게 대비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레고니언 시기에 함께 일했던 애나 그리핀 (Anna Griffin) 기자는 설즈버거는 남을 괴롭히는 사람을 대단히 싫어한다고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말했다. 특히 권력을 남용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더 참지 못하는 성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과의 갈등도 그러한 그의 성격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설즈버거는 10년 쯤 오레고니언에서 일하고 뉴욕타임스로 와서는 메트로 에디터를 맡았었다. 사주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취재 현장에서 충분히 다양한 기사를 다뤄본 경험이 이러한 결정에 바탕이 됐으리라 짐작한다.

설즈버거는 특히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전략 지침서인 혁신보고서 (Innovation Report)를 만드는 팀의 리더로 성공적인 디지털 플랫폼의 개발에 빛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37세 신문사 발행인이 현직 미국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이는 언론자유의 견고함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또 경쟁사의 어려움을 모든 주요 언론사가 나서 공공의 어젠다로 만들고, 그러한 자유체제의 유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문화 역시 여전히 정파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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