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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를 말해 보련다
DEW | 승인 1999.06.01 00:00

본 기자 드됴 딴지일보를 걸고 넘어지겠슴다. 이번 참에 확 벗겨 볼람다. 선진 명랑 사회 구현을 위해 딴지일보도 딴지가 한 번 걸려 봐야 함다. 본 기사 읽으면서 딴지일보 애독자넘들 열받아도 책임 못짐다. 씨바~

위의 글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딴지일보의 말투를 빌어 쓰고자 하는 기사의 목적을 밝혀 본 것이다. 방문객의 수가 이미 900만을 넘어서며 '엽기적', '선진 명랑 사회구현', '씨바', '열라', '~했음다' 등의 수많은 인터넷 유행어를 탄생시킨 딴지일보. 승승장구하고 있는 딴지일보에 그야말로 딴지를 한 번 걸어 보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은 딴지일보의 애독자다. 작년 9월부터 딴지일보를 보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기사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게임방에서 남들이 스타 크래프트할 때 딴지일보 사이트에 가서 낄낄대고 웃기 좋아하는 열렬한 애독자가 바로 나다. 이렇게 딴지일보의 애독자임을 굳이 장황하게 밝힌 이유는 딴지일보의 기사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기존에 구축해 놓은 자신의 자리가 침해당할까봐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들과 구별되기 위해서다. 또한 내가 쓰는 이 글이 딴지일보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딴지일보, 왜 그렇게 많이 볼까?

딴지일보에 대해서 우선 칭찬해주고 싶은 면이 있다. 기존의 매체가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딴지는 과감히 기사화했다. 성에 관련된 것이나 배설에 관계된 것 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권위적인 언론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것들을 딴지일보는 특유의 과장과 익살로 시원하게 풀어냈다.

기존의 매체가 어느 정도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에 한계를 지닌다면, 딴지는 '딴나라당', '김데중', '이헤창', '너태우', '존두환' 등 자신만의 용어로 성역 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영문 이니셜이 아니라 더욱 직접적인 용어로 공격적 기사를 쓰며, 거기다 등장 인물들의 사진을 벗은 모델의 몸에 합성하고, 확대, 과장하여 만든 이미지까지 곁들여, 보는 재미를 준다.

무엇보다도 딴지일보는 분석력이 탁월하다. 강준만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딴지일보'의 가장 큰 강점은 탁월한 분석력이다. '딴지일보' 특유의 포장술을 벗기고 그걸 일반 신문들의 언어로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 수준은 적어도 '조선일보'보다 높다."

그렇다. 딴지일보를 패러디한 '망치일보', '롱풀리 어큐즈드', '거지신문' 등 수많은 사이트들이 있지만 이들은 딴지일보 만큼의 독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들의 풍자나 독설은 그냥 유머로 그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패러디 사이트들에 들어가 보았다. 형식이나 편집은 비슷하지만 기사를 읽다 보면 딴지에서 느껴지는 '재미'가 없다. 무언가 허전하고 빠진 느낌이다. 그것은 바로 딴지에서만 찾을 수 있는 치밀한 분석이 패러디 신문에는 없기 때문이다. 딴지가 흔한 유머나 독설, 풍자로만 구성되었다면, 곧장 소재의 빈곤에 부딪히거나 새로운 것을 찾는 독자들을 위해 유머의 강도를 높이는 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딴지가 괜히 900만이 넘는 독자를 확보하게 된 것은 아니다.

딴지일보,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들어 딴지일보를 보면서 딴지일보가 너무 가볍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초기에 보여 줬던 시원하고 직접적인 정치 풍자가 많이 사라졌다. 전직 대통령들의 행보나 제2 사정설 등 요즘에도 딴지가 따끔히 일침을 가해야 할 사건들은 산재해 있다. 그런데 최근의 딴지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다른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크게 언급을 안하고 있다. 다른 대항 언론들이 못하고 있는 속 시원한 비판이 아쉬운데 말이다. 딴지일보가 진정한 대항 언론으로서 자리 매김 하고자 한다면 딴지는 그들을 비판하는 세력까지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딴지는 애독자들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그들을 못마땅히 여기고 비판하는 세력에게도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딴지일보는 스스로를 비판하는 글도 싣고, 거기에 대해 논리적으로 충분히 공박하고 나서 네티즌들의 공정한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그들을 비판하는 세력을 아예 무시하거나, 온갖 욕설로 매도하며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무리들로 치부하는 것은 지극히 폐쇄적인 태도다. 이렇게 폐쇄적인 태도만 보인다면 딴지가 가장 많이 비판하는 '좃선일보'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딴지일보는 "황색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선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신문"이라고 그 목적을 당당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딴지는 지금까지의 기사에서 보여준 분석력과 탁월한 풍자 등을 볼 때 충분히 지식인을 위한 매체도 될 수 있다. 기존의 정체되어 있는 지식인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그들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한다면 지식인들도 딴지일보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성역화되고 화석화되어 가는 지식인 사회에 따끔한 경고를 주는 무게 있는 기사가 딴지일보에는 부재하다. 능력이 있는데도 가벼운 기사로만 흐른다는 것은 딴지일보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셈이 된다.  

딴지일보를 건드린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들의 인터넷상에서의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섬세하고도 조심스러운 비판을 해야 한다. 그런 비판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딴지의 애독자로서 딴지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람이고 딴지가 진정한 대항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딴지일보에 딴지를 걸어 보았다. 딴지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선진 명랑 사회의 구현을 바라며...

                                                                                                    송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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