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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직업 ② 암실, 그리고 추억
이형주 기자 | 승인 2018.07.16 18:49

 

서울역 15번 출구에서 10분 남짓 걷다보면 작은 간판이 보인다. 건물 안은 햇빛이 차단돼 어두컴컴하고 습기가 가득하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인기척이 느껴진다. ‘미미현상소’의 오세찬 씨(56).

공간은 5평정도. 빛바랜 흑백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속 인물의 대부분은 자기 얼굴이 이곳을 채우고 있음을 잊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추억은 여전히 미미현상소에 남았다.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차단속원 다림은 촬영한 자동차 번호를 확인하려고 동네 필름현상소를 자주 찾는다. 하지만 필름현상소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서울 24곳, 인천과 경기 6곳, 강원도 1곳만 남았다.

미미현상소는 흑백필름을 전문으로 현상한다. 현상(現像)은 노출된 필름이나 인화지를 약품으로 처리하여 어떤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는 작업을 말한다. 흑백현상은 컬러와는 다른 약품을 사용한다.

흑백필름으로 찍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다. 그래서 필름현상 중에서도 흑백사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가 드물다. 다른 현상소에 맡겨진 흑백필름을 오 씨가 현상하는 이유다.

▲ 서울 용산구 미미현상소. 흑백사진이 내부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40년간 한 우물을 팠다. 필름을 자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자기 손을 거친 필름을 한 장도 버린 적이 없다. 흑백사진은 작은 빛 하나에도 천차만별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사진은 인화가 잘 안돼서 붙여뒀어요. 손님이 가져간 사진은 훨씬 잘나왔어요. 머리카락이 좀 어둡게 나와서 처진 거 보여요? 손님사진은 밝고 예뻐요. 흑백사진은 이렇게 빛 하나에도 달라진다니까.”

그가 사랑하는 필름카메라를 세상은 점점 잊는 중이다. 일본카메라산업협회(JCIA)는 2000년 디지털카메라의 세계시장 규모(4조 4000억 원)가 필름카메라(3조 7000만 원)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성 갤럭시 S8은 1200만 화소, LG G7은 1600만 화소의 후면카메라를 장착했다. 캐논의 보급형 카메라 100D가 1800만 화소임을 감안하면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술은 눈부실 정도.

필름카메라 종사자는 대부분 떠났다. 암실을 대여하는 업체도 타산이 맞지 않아 거의 사라졌다. 약 20년 전, 오 씨가 미미현상소를 인수했을 때 근무하던 직원은 모두 다른 분야로 떠났다.

“지금, 저 같이 해도 힘든데 아무데서나 현상소를 차릴 수 없죠. 여기도 보세요. 옛날에는 사람을 써야 됐는데 지금은 혼자해도 충분해요.”

▲ 오세찬 씨가 필름현상을 준비하는 모습.

필름카메라가 없어지는 시대이지만 일부 현상소는 인기다. 서울 중구의 ‘인스튜디오.’ 1만 원으로 필름 4롤을 현상, 스캔할 수 있어 젊은 층에게 입소문이 났다. 5년 전부터 필름현상업체가 줄면서 고객이 상대적으로 늘었고, 3년 전부터 필름카메라가 유행하면서 수요가 증가했다.

이곳을 11년째 운영하는 정연민 씨(40)는 “방문객 100명 중에 98명이 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10~30대가 주 사용자인 인스타그램에서 ‘필름카메라’를 검색하면 70만개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연관된 검색어로 ‘필름카메라감성’, ‘필름카메라느낌’ 같은 단어가 나온다.

대학생 신소현 씨(23)는 친구의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가 디지털과는 다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부가비용이 부담되긴 하지만 필름만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숙미회’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를 모두 다루는 숙명여대 사진동아리다. 집행부, 기획부, 암실부, 홍보부로 나뉘는데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교내 암실에서 현상한다. 암실부장 신주영 씨(22)는 올해 신입 동아리원을 모집할 때, 필름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암실부 배정을 원하는 학생이 유독 많았다고 말했다.
 

▲ 숙명여대 사진동아리 ‘숙미회’의 54회 정기전시회. 필름카메라로 찍은 작품을 전시했다.

디지털을 활용해 아날로그 분위기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일회용 필름카메라 앱 ‘구닥’은 지난해 중순 국내 앱스토어의 유료 앱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촬영 후 3일이 지나야 결과물을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

구닥을 개발한 스크루바의 강상훈 대표(40)는 사진을 무한정 찍고 한 두장을 골라내기 보다는 한 장을 찍더라도 고민하던 순간을 재현하고 싶었다. 2017년 중순에 출시하기 직전까지도 구닥이 뜨거운 반응을 가져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생 하유정 씨(24)도 구닥을 다운받았다. 그는 “한 번도 필름카메라를 사용한 적이 없어서 궁금했다. 사진 결과물의 느낌이 필름과 비슷해서 실제 필름카메라를 쓰는 느낌”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아날로그 수요가 늘었지만 필름사진 시장은 가라앉는 중이다. “이런 현상도 잠시의 유행이 아닐까 싶네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보고 일한다는 생각은 변함 없어요”라고 정연민 씨는 말했다

필름을 현상하러 오면 실물형태의 ‘인화’가 아니라, 컴퓨터 파일로 보기 위한 ‘스캔’을 요청하는 고객이 많다고 한다. 2000년까지는 현상된 필름을 인화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극소수.

2만~3만 원이던 필름카메라 ‘뮤2’는 이제 30만 원에 팔린다. 하지만 필름공급은 계속 줄었다. “아그파 필름도 단종 됐어요. 필름카메라 수요는 느는데….” 그럼에도 누군가는 필름의 진가를 알고 현상소를 찾으리라 기대한다. 빛 없는 암실에서 필름을 계속 들여다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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