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교수 최선열      

수학자들이 생각하는 수의 개념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
좋아하는 숫자, 싫어하는 숫자가 있는가 하면 햇수를 헤아리는 숫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백일, 돌, 회갑, 칠순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기념일임에 틀림없다. 개인은 물론 각종 단체들, 정부까지도 10주년, 20주년, 30주년 등 10단위의 햇수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그 성장의 마디 마디에 의미를 새겨왔다.

서양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햇수를 기념하는 행사를 많이 갖는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 때 그리고 미국 독립 200주년 때 두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요란한 자축행사를 벌이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는지 꽤 오래 지난 지금에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니 어찌 2000년을 조용히 맞을 수 있겠는가.
20, 200이란 숫자에도 그 난리인데 2000은 광란을 불러 일으킬만한 숫자가 아닌가.

그런 특이한 것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식욕을 가진 매스 미디어가 그것을 탐닉하지 않을 리 없으며, 두뇌회전이 빠른 국제적 장사꾼들이 그 숫자에서 돈이 샘솟는 것을 못 볼 리 없는 것이다.

작년부터 우리는 '새천년'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에 시달려 왔다. '세기말에 서서', '밀레니엄 인터뷰', '새천년, 새한국인' 같은 거창한 특집에서부터 밀레니엄 베이비 붐 이야기, 새천년 맞이 이색 관광상품 이야기. 폴 메카트니가 지난 1000년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 지퍼가 지난 천년 간 인류가 만들어낸 걸작 발명품 중의 하나라든가 하는 가벼운 화제거리까지 언론의 새천년 메뉴는 다양하였다.

게다가 'Y2K 대재앙' 운운하며 슬슬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이제 '새천년 준비위원회'라는 정부 기구까지 출범한다니 우리 언론의 새천년 메뉴에는 정식코스까지 포함되게 된 셈이다. 사실 우리들은 지난 몇 년 간 수개념에 큰 혼란을 경험하였다. 억대의 떡값 이야기, 사과 궤짝에 가득한 돈 이야기... 언론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몇 조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언론이 새천년을 수없이 되뇌이는 바람에 이제는 햇수도 천년단위로 생각하게끔 되었다. 1년이 왜 365일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천년을 우습게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하루 24시간을 벅차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365일을 미리 생각하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새해를 맞는 것도 부담스러웠는데 새천년을 맞이해야 한다니. 나의 머리로는 1천년이 헤아려지지 않는다. 새천년의 특집을 읽어보고 특강을 들어봐도 그 내용이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지금 당장, 아니면 가능한 빠른 장래에 해결해야 할 엄청난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눈앞이 가리워졌는데 무슨 천년을 내다본단 말인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정치 현실, 불투명한 경제, 문화적 정체성과 가치관의 혼란... 혹시 언론의 실속없는 새천년 담론이 현실의 심각한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언론의 새천년 담론은 이 유행가 가사보다도 더 우리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10년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지은 다리, 건물이 장난감처럼 무너지는 것을 본 우리들이 아닌가. 몇 년도 못 가서 뒤바뀌는 정책들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새천년을 노래한단 말인가. 1000년을 노래하기 전에 100년, 아니 10년이라도 내다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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