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지진 옥외대피소가 마련됐다.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난 뒤부터다. 올해 4월 기준으로 1만여 곳.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지진 초기에 낙하물이나 파손된 구조물로부터 안전하다며 읍면동별로 대피소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검색기능을 제공한다. 옥외대피소는 얼마나 안전할까.

지난해 11월 15일, 경북 포항 북구의 한동대.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규모 5.4의 지진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자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대피했다. 같은 날 포항의 주유소. 건물 2층 외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건물과 인접한 곳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하다. 내진설계가 안 된 건물은 건물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내진설계로 지은 건물 주변도 안심할 수 없다. 연세대 조원철 명예교수(환경시스템공학과)는 “건물 마감재나 유리 같은 비(非) 구조물에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지진 옥외대피소는 주변 건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옥외대피소는 건물로부터 건물 높이의 1.5배 이상 떨어진 위치에 마련해야 한다.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옆으로 무너지면서 주변에 파편이 튀는 상황을 고려해서 만든 기준이다.

이런 기준을 잘 지키는지 기자는 서울 강서구의 대피소 86곳을 전수 조사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2017년 위험목록 보고서’에 따르면 강서구는 서울에서 지진에 가장 취약한 3곳에 들어간다.

 

▲ 연지공원의 지진 옥외대피소

 

화곡동의 연지공원 옥외대피소. 앞에 20층 높이의 오피스텔이 있다. 대피소가 건물 높이의 1.5배 이상 떨어져 있기는커녕 바짝 붙었다. 오피스텔 외벽의 유리 창문은 규모 4.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깨지기 쉽다. 지난해 포항 지진의 규모는 5.4였다.

주민 임정혜 씨(40)는 “이곳으로 대피했다가 아파트 같은 건물이 무너지면 우리가 다 맞는 거 아니냐”며 몸서리를 쳤다. 기자가 강서구의 옥외대피소 86곳을 확인했더니 주변 건물 높이의 1.5배 이상 건물로부터 떨어진 대피소는 하나도 없었다.

▲ 발음공원의 지진 옥외대피소.

내발산동의 발음공원. 대피소의 3면을 저층 빌라가 둘러쌌다. 고층건물보다 덜 위험할까. 그렇지 않다. 내진설계가 안 된 경우가 많아 저층 건물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한양대 송창영 교수(방재안전공학과)는 “외국의 경우 3층 이하 건물의 피해가 전체 지진 피해의 9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다를까?

우리나라는 2005년에 3층 또는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을 대상으로, 2017년에는 2층 또는 연면적 500㎡ 이상의 건물을 대상으로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전에 지어진 저층 건물에는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

▲ 화곡로 우장초등학교 운동장의 지진 옥외대피소. 밑이 지하주차장이다.

화곡로의 우장초등학교 운동장은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곳이다. 문제는 아래 전체가 지하주차장이라는 점.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 주차장을 지탱하는 기둥이 무너질 수 있다. 대피소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주변 건물로부터 1.5배 이상 떨어져 있는 공간은 건물의 붕괴나 낙하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다. 그러나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양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주변 건물로부터 1.5배 이상 떨어진 공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려주는 표식이 없다. 서울시립대 이영주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대피소라고 지정만 해놓을 게 아니라, 어느 공간에 있어야 안전한지 알려주는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건물 인근이 위험할 수 있는데도 옥외대피소로 지정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구체적인 지정 및 운영기준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기준 없이 마련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서울 강서구의 관계자는 “최근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단 대피소 지정부터 하고 관련 규정을 마련하자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행안부를 통해 지진 옥외대피소 지정 기준을 받지 못했다. 기준을 마련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 행정안전부의 답변 공문.

취재 과정에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제시한 ‘1.5배 기준’이 과학적인 실험을 거쳐 만든 기준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연구에 참여한 관계자는 “공학적인 시뮬레이션을 거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고베 지진이 발생한 이후에 1.5배라는 기준을 만들었는데, 그 기준을 가지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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