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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영웅
허지영 기자 | 승인 2018.06.30 23:41

 

열두 개의 독방 문이 열려있다. ‘6월의 독립운동가’ 문패가 달린 방에 들어갔다. 이대위 선생의 사진 밑에 나온 설명을 읽는데 10여 명이 다가왔다. 제복을 입은 여학생이 학부모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에게 이대위 선생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가 6월 6일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제12옥사. ‘2018 이달의 독립운동가’ 기획전시가 열렸다. 국가보훈처가 올해 선정한 독립운동가 12명에 대한 내용이다. 국가보훈처는 1992년부터 매년 12명 이상의 독립운동가를 월별로 선정한다. 지금까지 327명.

정부가 지금까지 포상한 독립유공자는 얼마인지를 관람객에게 물었다. 대답은 20명부터 3만 명까지 다양했다.
 
9살 딸과 함께 전시를 찾은 이제헌 씨(35)는 “100명에서 200명 정도 되지 않느냐. (자료를) 찾아봐야만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다”고 말했다. 11살 조카와 함께 광주에서 왔다는 윤지영 씨(37) 역시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많이 안 가르치다 보니 독립운동가를 아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서울 서대문형무소 제12옥사의 모습.

국가보훈처가 포상한 독립유공자는 6월 6일 기준으로 1만 4879명이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약 300만 명이라고 했다. 5% 정도만이 공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중에서 절반의 절반도 알려지지 않았다.
 
교과서를 펼쳐봤다. 동일한 출판사에서 나온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 독립운동가 중에서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사람은 42명이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경우 66명이었다.
 
인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유관순 안창호 안중근 김구 선생 정도만 별도의 소개란이 있었다. 학생들은 그마저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강민준 군(17)은 “중학교 국사시간에 배웠지만 아는 독립운동가는 별로 없다. 김구 선생 정도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정상규 작가(32)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는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와 ‘잃어버린 영웅들’을 집필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2명의 조력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17살 고등학생 유동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 작가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알리고자 2015년에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서거일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207명 가운데 186명의 업적을 확인하고 정리했다.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독립운동가의 서거일에 푸시알람을 받아볼 수 있다. 이용자는 6월 기준 20만 명 정도.

정 작가는 2016년 7월 남자현 열사의 생가를 찾아갔을 때를 언급했다. 생가는 폐허에 가까웠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면 봉분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그마저 관리되지 못했다.

영화 ‘암살’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름이 알려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경북 영양군이 생가를 복원했다. 정 작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영웅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나라가 위기에 닥쳤을 때 누가 나서겠느냐. 이름이 알려지면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300만 명 중 나머지 95%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박원재 씨(69)는 아버지 박구진 선생의 독립운동 기록을 찾아 다녔다. 박구진 선생은 평남 성천군 금융조합을 습격하는 등 군자금을 마련하다가 1919년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평양형무소에서 15년을 선고받고 11년 6개월을 복역했다.

박 씨는 1.4후퇴 때 월남한 6촌 형제로부터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다 12년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기록을 찾아다녔다. 국가보훈처, 당시 남산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 지금의 국가기록원인 정부기록보존소까지. 국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일본과 중국에도 다녀왔다. 평양을 왕래하는 교수에게 관련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박 씨가 24년 만에 기록을 찾은 건 동아일보에 그의 사연이 소개되면서다. 보도가 나간 지 3일 만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자료도 많고 증언자도 있다. 하지만 1900년대 초부터 독립운동을 했다면 자료도 없고 생존자도 없다. 지금도 기록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도와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조규태 한성대 교수(역사문화학부‧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는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많지만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되는 부분은 적다. 또 공적이 있지만 변절한 분은 제외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작년 8월부터 서울 성북구, 11월부터 경기 평택시와 함께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 판결문, 수형인명부, 신문기사, 서적을 활용해 성북구에서 113명, 평택시에서 148명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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