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천년을 '개혁의 세기'라고 부를 만큼 우리 사회에는 '개혁'이 많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모두 개혁을 단행한다. 특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교육개혁'이다. 연년생인 오빠와 동생이 서로 다른 방식의 시험을 보고, 내용이 완전히 바뀐 교과서로 공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요구해도 이상하리만큼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평준화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비평준화 지역의 학부모, 학생들의 요구는 항상 허공에 맴돌 뿐이다. 그나마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는 특수목적고 학생들이 내신에서 받는 불이익을 거론할 때나 그 문제점이 곁가지처럼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그 아래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외면 당하고 있다.
 
비평준화 지역에 사는 학생은 두 번의 입시를 치르게 된다. 고등학교 입시와 대학교 입시. 일반적으로 대학 입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며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진학하는 곳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하지만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생에게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노력 역시 대학 입시를 방불케 한다.

대학 입학시험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있듯이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생에게도 나름대로의 무용담이 있다. 신도시의 후기고를 가기 위해 일부러 떨어지려고 명문고를 지원했는데 그해 미달로 붙었다는 얘기, 마감 5분 전에 경쟁률이 적은 고등학교에 가까스로 원서를 낼 수 있었다는 얘기들…. 재미보다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가장 경쟁률이 심했던 94년. 그 해에 비평준화 지역인 안양에서 고등학교를 떨어진 학생 수는 무려 1천4백57명이나 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99년, 아직까지 496명의 학생이 고등학교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1차에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학생들은 2차에 인근 지역의 후기 고등학교를 찾아 입학할 수밖에 없다. 후기에 학생을 받는 고등학생의 경우 아직 공사가 다 완공되지 않은 채 소위 교육부의 대책으로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97년 개교한 용호고등학교(경기도 군포시)도 공사가 다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을 받았다.

단순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입의 실패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가 감당하기에는 큰 상처로 남게 된다. 또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두세 반 정도를 전기에서 떨어진 우수한 학생을 후기에 받기 위해 남겨 두는데, 그 경우 정시에 입학한 학생들과 후기에 입학한 학생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게다가 2001년부터 중학교 내신성적으로만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고, 고등학교 내신을 산출하는 것도 절대평가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 기피현상이 사라지면서 다시 나타나는 '고교 서열화' 현상이 중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요즘 중학교에서는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는 것만으로 좋은 내신을 받을 수 없다. 소위 '수행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온 집안 식구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비평준화 지역 학원들의 팜플렛을 보면 학생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받는다. 특수목적고반, 명문 A고등학교 반, B고등학교 반, C고등학교 반, 그 외…. 각 반에 따라 가르치는 교제도 틀리고, 선생님도 다르다.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그 애가 어느 반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현실은 무시하고 '교육수준의 질 저하'를 빌미 삼아 비평준화에 대해서만 난색을 표하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낭비되는 불필요한 노력과 시간과 자원을 거두어 실질적인 교육개혁에 투자할 수 있도록 과감한 용단을 내릴 의향은 없는가?

 김은지<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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