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이런 유리 본 적이 있으세요.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유리. 특수필름이 있어서 한쪽에서만 건너편이 볼 수 있게 되는 건데요. 사람들도 가끔 마음에 특수 필름을 붙여놓지 않나 싶어요.”

나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때문에 마음을 숨겨왔다. 언어, 문화, 수업,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 자신에게 특수필름을 씌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어려운 전공 수업을 들으면, 수업토론에서 말할 타이밍을 놓치면, 조별과제를 채팅방에서 논의하는데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실망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유학생활에서 자신감을 잃고 특수필름에 갇힌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외국인이 자신과는 다른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하지만 외국인은 어디든 있다. 당신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외국인일 수 있다.

한국의 주요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이화여대 유학생은 2015년 328명에서 올해 74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교류할 기회는 늘겠지만 친근함을 느낄 기회는 많지 않다.
 
기말시험이 다가오던 지난달, 나는 별생각 없이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어갔다. 외국인 학생의 글을 읽었다. 외국인으로서 학교생활에 어려움과 고통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과제를 같이하는 조원에게 미안하다, 친구가 없고 학교생활이 우울해 집에서는 매일 운다고 했다.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자신도 유학 경험자이니 공감한다는 말과 글쓴이의 친구가 되겠다는 댓글이 쏟아지는 등 모두가 글쓴이를 모두가 격려했다. 게시된 글과 댓글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동시에 특수필름에는 무서운 힘이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위로해주는데 글쓴이가 게시판에 왜 올렸을까. 오프라인에서는 글쓴이와 주변 사람 사이에 특수필름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글을 올릴 때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마음속의 특수필름을 모르고 산다. 나도 라디오를 듣지 않았더라면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알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외국인으로서 힘든 일이 적지는 않았으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노력하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음을 나는 안다. 특수필름은 생각보다 떼기 쉬울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는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 모토나가 미키

일본 남쪽의 오키나와에서 태어났다. “한국의 제주도 같은 곳에서 왔어요”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2014년 한국에 유학 왔다. 한류스타의 유창한 언어실력에 감탄했고 용기를 얻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고, 한국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의 4학년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