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씨(23)는 프랑스에서 3년간 지냈다. 생떼띠엔에서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무서웠다. 매일 길에서 ‘Ma cherie(자기야)’, ‘baby’ 등 성희롱 발언을 들었기 때문. 안시 여행을 갔을 때는 남성 노숙자가 일본말을 했다. 콘돔회사 이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프랑스 동북지역 여행 중에 밤늦게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대놓고 자기랑 자자고 하는 거에요. 처음에는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지 않으면 택시에서 안 내려준다고.” 김 씨는 바가지요금을 내고 헐레벌떡 내렸다.

비슷한 일을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었다.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 넘게 체류 중인 프랑스인 쥬스틴 씨(26). 어느 날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길에서 다가오며 이렇게 물었다. “얼마에요?”

쥬스틴 씨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 친구들을 만나러 홍대나 강남역 근처를 갈 때면 변태같이 환호하는 남자들의 야유를 감수해야 한다. 쥬스틴 씨와 함께 한국에 온 마에바 씨(26)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서 자주 겪는 일이에요. 프랑스에서는 치마를 입으면 주로 아랍인이 휘파람을 불면서 쟤 저기 예쁘다며 내 몸을 대놓고 훑어봐요. 한국에서는 두 달 전쯤 어떤 가게 앞에서 남자 무리가 나를 보고 가슴 되게 크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2년 넘게 사는 캐나다인 타마라 씨(24)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노래방이 많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길가에서 한국남성들이 다가와 “러시아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고 했다. “백인여성에게 그 말은 혹시 몸을 파는 거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외국인만 국내에서 이런 일을 겪지는 않는다. 직장인 오하나 씨(가명·25)는 “초등학생 때 동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걷는데 30대 남자가 내 걸음 속도에 맞춰 운전을 하면서 따라오며 휘파람을 불었어요. 지난해 여름에 해운대를 갔을 때는 외국인들이 같이 놀자며 따라와서 식겁한 적이 있어요.”

▲ 길거리 성희롱 설문조사 내용. (출처=Stop street harassment)

캣콜링(catcalling)은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는 형식의 성희롱을 말한다. 길거리 괴롭힘 추방을 위한 미국의 비영리단체(Stop Street Harassment)는 올해 1월 미국의 남성과 여성 1000명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 여성만 보면 66%가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을, 77%가 언어적 성희롱을, 51%가 불쾌한 접촉을 경험했다. 34%는 누군가가 따라오는 걸 경험했다. 여성의 85%와 남성의 44%는 1명 또는 2명의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여성의 31%와 남성의 20%는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했고, 여성의 23%와 남성의 12%는 일상생활 패턴을 바꿨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작년 12월 발표한 ‘길거리 괴롭힘 상담통계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등굣길에서 피해를 당하고 성인이 된 뒤에 약을 복용하고, 섭식장애를 호소한 사례도 있었다.

기자는 길거리 괴롭힘의 경험과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4월 15일부터 23일까지 가까운 사이인 38명을 조사했다. 성희롱을 경험한 장소는 공공장소가 3분의 1을 넘었다. 길거리, 공원, 해변, 가게, 식당, 도서관, 영화관, 박물관, 수영장, 헬스장…. 이들 중 28.9%는 불안이나 우울을 겪었다고 답했다.

길거리 괴롭힘이 늘자 여기에 대응하는 움직임 또한 활발해졌다.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게 디어어캣콜러스(DearCatcallers) 운동. 2014년 시작했다. 자신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긴 남성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국제연대모임인 할라백(Hollaback)은 뉴욕에서 10시간 걸으며 얼마나 성희롱을 당했는지 보여주는 영상(10 Hours of Walking in NYC as a Woman)을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 수 4600만 회를 기록.

할라백은 2005년 미국의 젊은이 7명이 길거리 괴롭힘 경험담을 공유하는 블로그를 만들며 시작됐다. 이들은 타오 뉴엔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타오 뉴엔은 지하철에서 자신을 향해 음란 행위를 하는 남성의 사진을 찍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그들이 무시하자 인터넷 사이트 플리커(flikr)에 올렸다.

이후 할라백은 24개국 71개 도시에서 공공장소 길거리 괴롭힘에 대응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한국지부인 할라백코리아는 2013년 8월, 23명이 만들었다. 홈페이지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경험담이나 목격담을 올릴 수 있다.

▲ 10 Hours of Walking in NYC as a Woman 영상. (출처=유튜브)

4월 8일부터 14일은 ‘국제 안티-길거리 괴롭힘의 주’였다. 비영리단체 ‘Stop Street Harassment’가 주최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회째. 6개 대륙, 38개국에서 피케팅, 학교교육, 워크숍이 열렸다. 4월 10일에는 전 세계적으로 ‘#EndSH’ 트위터마라톤 운동을 진행했다. 트위터에는 이날 약 250개의 해시태그가 올라 왔다.

“어떤 남자도 더러운 손으로 11살 여자아이의 등교길에 그녀의 성기를 만질 자유나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이 내가 처음 겪은 일이다.”(@Gavi********)
“나에게 소리지르는 남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볼륨으로 음악을 듣는 행동을 하지 않고 걸을 것이다. 내가 길을 걸을 때 남자에게 함께 걸어달라는 요청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Ceci********)”

한국성폭력상담소 또한 ‘길거리괴롭힘소멸프로젝트:넌(non)!진상’을 통해 대응하는 중이다. 1월에는 지하철역사에 대형광고를 설치했다. 또 트위터 계정(@jinsangroad_org)을 통해 괴롭힘 경험담을 공유했다.
 
해외에서는 길거리 괴롭힘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중이다. 벨기에는 신체적 혹은 직장 내 성폭력뿐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성별을 이유로 무시하는 발언까지 막는 성차별법을 2014년 제정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법을 통해 올해 3월 처음으로 여자 경찰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했던 남성에게 3000유로의 벌금형이 내려졌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시는 올해부터 모욕하거나, 잠자리를 위해 따라다니는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최대 4100유로의 벌금, 혹은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프랑스의 마를렌 시아파 여성부 장관은 ‘길거리 성희롱에 관한 의회 실무 그룹’에 관한 보고서를 1월에 발표하면서 “여성의 자존감과 안전을 누릴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벌금을 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보도전문채널 ‘프랑스 24’에 따르면 ‘캣콜링 금지법’은 프랑스 하원을 통과했다. 법이 발효되면 길거리에서 휘파람을 불거나 여성에게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에 최대 750유로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길거리 괴롭힘에 대한 규제가 없다. 다만 경범죄처벌법 제3조 41항에 따라,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 30일 미만의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피해내용과 범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어느 형사는 “최고 처벌이 30일 미만의 구류이기 때문에 가해자 입장에서는 데미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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