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하는 캘브 리포트 프로그램.

마빈 캘브(Marvin Kalb).

마빈 캘브(Marvin Kalb)=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즘 미디어 환경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단히 부정적인 기류가 지배적입니다. 디지털 기술혁신의 측면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측면에서 모두 그렇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두 분은 여기 방청객 중에 있는 기자 지망생에게 어떠한 충고를 해 주시겠습니까?

마틴 배런 (Martin Baron).

마틴 배런(Martin Baron)=간단히 말하죠. 뛰어 들어가십시오. 당장 저널리즘으로 들어가십시오. 저는 낙천주의자입니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저널리즘은 대단한 영역입니다. 지금 어려움이 많지만 이 영역에서는 한 사람이, 한 명의 기자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만드는 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저널리즘으로 뛰어 들기를 권합니다.

딘 베케이 (Dean Baquet).

딘 베케이(Dean Baquet)=지금은 기자가 되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제가 언론계에서 성장할 때는 기사를 전달할 플랫폼이 인쇄신문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최고의 뉴스매체들은 과거 미디어에 비해 수십억 배는 훌륭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기자들에게는 엄청난 기회들이 제공됩니다.

배런과 베케이는 2018년 현재 미국 저널리즘을 끌고 가는 에디터들이다. 배런은 워싱턴포스트, 베케이는 뉴욕타임스의 취재와 편집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편집인이다. 위에 인용한 대화는 2017년 10월 16일 녹화된 프로그램의 마지막 질문 답변 직전 부분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마빈 캘브는 조지워싱턴대 초빙연구원으로 과거 하버드대의 케네디스쿨에 교수로 재직했던 전직 방송기자다. 그는 1959년 에드워드 머로우가 채용한 CBS 방송의 러시아 전문기자였다.
 
캘브 리포트는 지난 24년 동안 1년에 3~4회, 미국공영텔레비젼(American Public Television) 등의 매체를 통해 방송된 저널리즘 토크쇼다. 내셔널프레스센터와 하버드대, 조지워싱턴대, 매릴랜드대가 공동으로 제작한다.

<언론의 길> 칼럼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담은 저널리즘 철학이 우리가 익숙한 한국식 언론관과 얼마나 다른지를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캘브 리포트>를 통해 확인하는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사회와 언론계가 저널리즘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우리사회의 문화나 관행과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방송에는 기자들이 등장해 언론의 문제를 얘기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미디어 비평류의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주제와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프레스센터나 방송회관에서 언론단체가 주관하는 토론 프로그램은 예외 없이 정치인이나 장관이 질문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기자들은 이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진행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여기 소개하는 미국의 <캘브 리포트>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기자가 질문하고 기자가 주빈으로 대답한다. 토론의 주제는 당연히 언론의 문제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독자와 시청자에게 전하는 의미는 프로그램 안에서 다뤄지는 세부적 쟁점에 관한 내용에 제한되지 않는다. 포맷 자체를 통해 전달되는 저널리즘의 중요성이 어찌 보면 더 핵심적 의미로 느껴진다.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에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긴밀한 관계를 시민이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제도를 운영하는 지혜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반 시민에게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기회가 구조화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앞에서 제시한 내용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미국 기자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매우 적극적으로 공적 공간에 나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설명한다. 여기 소개하는 베케이나 배런의 소통노력이 단적인 예다.

두 사람은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바쁜 사람들이다. 그러나 유튜브에는 이들이 발언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다양한 채널에서, 그리고 지면에서 제공되기에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역시 본인들의 의지가 없으면 <캘브 리포트> 같은 영상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눈을 돌려 한국을 보면, 상황이 너무 다르다. 사장을 비롯한 경영 핵심인력이 바뀌고, 과거 권력과 유착했던 간부들을 모두 물러나게 만든 한국 공영방송의 경우 KBS나 MBC 어느 회사에서도 그동안 도대체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공식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에게 알려주려 했던 적이 없다.

 또 권력이 바뀐 이후, 방송사에서 새로운 방송문화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어떠한 노력을 하는 지도 일반 시민으로서는 전혀 알 길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마도 그러한 편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적기 때문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한 접근이 방송문화의 건강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시청자에게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주지도 못한다. 또 공적자원으로 운영되는 매체에 대한 시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디지털 파괴로, 또 포털회사들과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는 신문사도 자신의 문제를 공개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의 문제가 한국에서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 공영방송이 그리고 나아가서는 언론계 전체가 정치체제와 정부의 하부구조로 존재하는 한국적 현실의 원인도 이러한 폐쇄성에 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캘브 리포트>를 보며 느낀 세 번째 한미 간 언론문화의 차이는 현재 군림하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이다. 마빈 캘브와 딘 베케이, 그리고 마틴 배런의 대화를 다시 잠시 들여다보자.

마빈 캘브=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언론을 미국이라는 국가의 적 (the enemies of the state)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대통령의 정부를 언론은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딘 베케이=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보도기준을 지키는 일입니다. 근본적인 보도기준은 분명합니다. 우선 진실(truth)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리고 공정함(fairness), 공격적 취재(aggressive reporting) 자세, 그리고 회의적 접근(skeptical)이 핵심기준을 구성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하고, 용기 있게 취재하고 그 과정에서 보도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회의적으로 검증해 나간다면 시민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빈 캘브=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장악력으로 쟁점을 자기중심으로 끌고 가려합니다. 공적의제의 논의 구도를 자신이 주도하려하죠. 이러한 상황에서 베케이 편집인이 말하듯이 원칙만 지켜서 언론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마틴 배런=매체 환경은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하루 한번 뉴스를 내는 게 아니라 언제나 즉각적으로 기사를 출고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언론의 가치와 사명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는 편집국 벽에 신문제작 원칙을  걸어 두었습니다. 80여년 됐습니다. 매일 출근하면서 그 원칙을 마주합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원칙이 진실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하자(to tell truth as nearly as the truth may be ascertained)입니다. 이 말에는 노력해야한다, 끊임없이 애를 써야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완전한 진실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해도, 세상에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기사는 의견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추적한 진실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담아내는 글입니다.

마틴 배런 편집인은 이러한 자세로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연결고리를 추적해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 안보보좌관의 거짓말을 입증함으로써 그를 공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러한 워싱턴포스트의 접근방법은 현존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의무에 충실한 자세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한국언론은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부의 허물을 드러내는 데만 집중한다.  진보정권이 들어오거나 보수정권이 권력을 잡거나 이러한 관행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언론이 만든 취재와 보도관행, 다시 말해, 언론의 길이 현격하게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시민이 언론에 기대하는 권력 감시는 오늘, 현재, 돈과 힘을 쓰는 권력에 대한 감시를 의미한다.

그래야 권력의 남용과 예산의 유용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긴다. 과거 권력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보도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저널리즘이 현대사의 기록자이기를 원하면, 더 주목할 대상은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정부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의 긴장관계는 어쩔 수 없이 오늘 우리 언론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언론은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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