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가 하나의 미술관처럼 꾸며진 예술의 나라 프랑스. 자국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우아함을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프랑스 문화원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20분 정도를 걸어야 하지만 전혀 번거로움을 느낄 수가 없다. 갤러리 현대, 국제 화랑 등 유명 화랑들의 세련미와 경복궁의 고전미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길을 걸어보지만 정작 프랑스 문화원의 지극히 평면적인 하얀 건물을 보는 순간 이제까지 즐기던 기분은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지 마시길! 프랑스 문화원은 볼품없고 딱딱한 바게트 빵과 너무 닮은 곳이니까. 바게트 빵을 그 겉모양만으로 과소 평가하면 안 되는 것처럼 프랑스 문화원의 휑한 풍경에 실망부터 하는 것은 금물이다. 프랑스 문화원 정면 벽은 오랫동안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레와 양주혜씨가 파이프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의 캔버스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는 아직 이런 종류의 예술이 낯설어서 인지 "건물이 공사 중이냐"는 말이 끊이지 않아 이를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프랑스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 방문한 사람을 한번에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프랑스 문화원의 현관을 들어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추상적인 벽화이다. 이 벽화를 따라가면 1층의 전시실로 들어가게 된다. 전시실은 프랑스와 관련이 있는 모든 예술가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항상 공짜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실 안에 자리한 음료와 커피를 파는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고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하는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18세기의 '프랑스 카페'를 재현해 낸 조금은 특별한 곳이다. 이 카페는 실제로 여러 클럽들의 모임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클럽들은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만든 것이다.

프랑스 영화를 통해 프랑스의 문화와 언어를 함께 공부하고자 만들어진 드라마 클럽은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30분에, 고전에서 최신 유행하는 샹송까지 노래를 부르며 불어를 배우는 샹송클럽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에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또한 불어 토론 클럽인 브와자미(Voix-Amies)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30분에 모임이 있다. 브와자미의 회원인 하정임(23)씨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클럽 활동을 통해 프랑스인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불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요즘 많은 학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클럽 활동을 하는 것을 꺼려해요. 그런데 우리 클럽은 처음 2달 동안에 6번만 나오면 자동으로 회원이 되고 그 후엔 가끔 시간이 있을 때만 나와도 되니까 클럽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짐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지요." 토론의 주제도 아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식으로 정해질 정도로 자유롭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많은 걸 얻어간다고 한다.

최근에는 폴라 X(Pola X), 레드(Rouge), 블루(Bleu), 화이트(Blanc) 같이 프랑스 영화를 일반 극장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영화의 수입이 규제되고 비디오 등 영상매체의 대중보급이 이루어지기 전인 1970~80년대 초반, 프랑스 문화원의 르느와르 영화관은 젊은이들에게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얘기해 주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이 곳을 즐겨 찾던 사람들 중에는 이 후 영화감독이나 영화평론가가 된 사람도 많다. KBS 드라마 중 큰 인기를 모았던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극 중 영화감독이 되는 석주(배용준 役)가 영화를 보러 자주 들르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전성기에는 하루에도 700~800명의 관객이 찾아들었다던 르느와르 영화관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2시와 4시에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직접 보내온 필름이나 도서관 비디오 자료 중에서 월별로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상영하고 단돈 1,000원만 내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영화가 더빙은 물론 자막도 없이 상영된다는 점!

스탕달, 까뮈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학, 에펠탑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건축,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잔혹하고도 지적인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영화 「프렌치 키스」의 아름다운 포도밭이 연상되는 프랑스의 지리 등. 프랑스의 모든 것을 프랑스 문화원 2층의 정보센터-미디어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곳은 각종 도서와 정기 간행물은 물론 비디오, 음악CD, 멀티미디어CD, 인터넷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히 책. 정보센터-미디어 도서관 역시 13,600여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 나라에서 프랑스의 신간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 작품만을 취급하는 일반 도서관이나 서점들과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문학을 원서로 접할 수 있다. 프랑스 문화원의 본래 취지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교류인 만큼 도서관 한편에 자리잡은 한국 코너에서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작품과 한국 문화에 관련된 프랑스어 서적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된 프랑스 서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 비치된 모든 서적은 열람은 물론 회원으로 가입하면 대여도 가능하다. 연회비 1만 5천원을 내고 도서회원에 가입하면 도서관 소장 도서 3권을 15일간 대출할 수 있다. 

정보센타-미디어 도서관 안에는 누벨바그 영화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예술 영화를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는 떼아트르 퍼블리끄(theatre publique)가 있다. 이 곳에서는 2200여종의 프랑스 고전영화에서부터 현대물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유명감독의 픽션작품과 프랑스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250여종의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 문화원은 비디오 감상실을 따로 개방하고 있지 않고, 미디어 도서관 회원에 한하여 비디오를 대출해 주고 있다. 미디어 도서관 회원은 도서 회원 혜택과 함께 비디오 5개와 CD 2개를 일주일간 대여할 수 있고 관내의 인터넷을 1일 1회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미디어 도서관 회원의 1년 회비는 일반 13만원, 학생 10만원이고, 6개월 회비는 일반 9만원, 학생 7만원이다. 대학에서 학과 명의로 등록하는 경우 학과장 직인이 찍힌 공문을 첨부하면 학생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화원은 각 나라의 정부에서 직접적 지원을 받아 문화를 알리고 홍보하는 목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한 정보 획득이 쉽고,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생경한 이국의 정서를 맛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듯, 프랑스 문화원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은 어떨까?

 최지희·조수인 기자<dewedit@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