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면서 올해부터 서울의 22개 공원이 음주청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조례시행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취재팀이 현장을 점검했다.

4월 12일 오후 6시 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경의선 숲길 공원. 마포구 연남동에 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다고 해서 ‘연트럴파크’로 불린다. 입구에서부터 혼자 책을 읽으며 병맥주를 마시는 시민이 보였다. ‘우리 공원은 2018년 1월 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옆에 있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벤치에서 500㎖짜리 맥주 네 캔을 놓고 마시는 남성 2명을 발견했다. 맞은편에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수입맥주를 마셨다. 평일이지만 기자는 2시간 동안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음주자 15명 이상을 봤다.

▲ 경의선 숲길 입구의 음주청정지역 안내 현수막.

“여기는 원래 ‘술트럴파크’로 불리는 곳이에요. 여행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여기서 자주 마셔요. 퇴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30대 회사원이 수입맥주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곳이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된 사실을 알았다. “고성방가나 폭력만 안 일어나면 되지 않나요. 법적으로 제재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법적으로 제재한다면 술을 마실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겠다고 했다.

연트럴파크는 이런 시민으로 가득 찼다. 버스킹을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는 연인, 돗자리를 깔고 병맥주를 부딪히는 젊은 남녀가 보였다. 즉석 만남, 일명 ‘헌팅’을 하는 장면도 보였다. 오후 7시 30분, 캔 맥주를 마시던 남성 2명이 목소리를 높여 욕설을 뱉었다. 시민들은 흘깃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경의선 숲길이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알기는 힘들었다. 입구에서 끝까지 음주청정지역을 알리는 플래카드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맞은편의 1개가 전부였다. 공원 주변에는 테라스가 있는 술집이 즐비했다. 가게에선 테이크아웃 잔에 맥주를 팔았다. 쓰레기통마다 빈 캔과 병이 가득했다.

매일 저녁 경의선 숲길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임재덕 씨(55)는 이렇게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면 맥주 캔이 제일 많이 나오죠.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더 많이 나와요. 단속하는 사람도 없고. 다들 은근슬쩍 먹고 버려요.”


4월 19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공원 1번 출입구 앞. 증권가와 가깝다. 체크무늬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남성이 지나갔다. 손에는 맥주 캔이 보였다. 공원 내 금지행위 안내 표지판을 위아래로 훑고,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표지판에는 음주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남성은 벤치에 앉아 캔을 땄다. 공원 쓰레기통에서는 빈 맥주 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초록색의 소주병도 보였다.

▲ 여의도 공원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소주병과 맥주 캔.

여의도공원도 서울시가 지정한 음주청정공원에 포함된다. 그러나 1번부터 12번 출입구까지 걷는 동안 음주청정지역을 알리는 플래카드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공원이용수칙 표지판에는 ‘소음이나 악취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지 마세요’라고만 나온다.

같은 날 오후 8시 서울 종로구의 낙산공원. 공원을 둘러싼 한양도성 성곽에 은은한 조명이 비췄다. 산 아래로는 서울 시내가 펼쳐졌다. 옆으로는 불 켜진 남산타워가 있다.
 
술을 마시는 연인이 자주 보였다. 정자에서 맥주를 마시는 커플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큰소리로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성곽계단에서는 다른 커플이 술을 마셨다.

4월 21일 오후 7시 45분, 낙산공원을 다시 찾았다. 토요일이고, 최고 기온 26도의 따뜻한 날씨라 시민이 많았다. 공원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어느 남성이 맥주 캔을 들고 비틀거렸다. 정상에는 음주청정지역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있었다. 남성은 “씨X, 술 마시면 안 돼?”라고 욕을 뱉었다.
 
주말 낙산공원은 음주공원이었다. 정자 하나에 두세 커플이 비집고 앉아서 술을 마셨다. 걸터앉기 좋은 돌, 벤치 등 모든 장소에 술이 있었다. 낙산공원에서 혜화역으로 내려가는 길 역시 술판이었다.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위에다가 맥주 캔을 놓고 갔다.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성곽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가운데서 여자의 허리를 감쌌다. 벌게진 얼굴이었고 발음은 불명확했다. 스킨십이 이어졌다. 공원에선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는 커플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음주 중이거나 이미 공원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올라왔다.

“혜화역 근처 데이트 온 김에 왔어요. 풍경이 좋잖아요. 원래 공원에서 마시는 걸 좋아해요.” 야경을 내려다보며 맥주를 마시던 커플은 이곳이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고 했다. 음주청정지역임을 아느냐고 묻자 “마시면 안 돼요? 전혀 몰랐어요”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벌금 내는 건가요? 그럼 걸릴 때까지 먹으면 되나요? 벌금 내죠, 뭐”라며 크게 웃었다. 현수막을 봤냐고 물었더니 전혀 못 봤다고 했다. 현수막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작은 크기라서 눈에 띄지 않았다.

▲ 낙산공원의 현수막은 크기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서상혁 씨(28)는 이런 모습에 대해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먹고 남은 맥주를 공원에 그냥 버리면 냄새도 나고요. 해외여행에 갔을 때 공원에서 맥주 마시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좋았는데….”

하지만 김수림 씨(27)는 “탁 트여 있으니 더 좋죠. 실내에서 마시는 것보다 더 저렴하고. 서울시 공원이 음주청정지역인 지도 처음 알았어요. 다른 사람도 마시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상위법이 없어 과태료를 부과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 건강증진과의 박종수 주무관은 “음주청정지역 자체가 음주를 금하지 않고, 고성방가나 냄새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속보다는 계도위주이지만 소란이 심하면 경찰이 경범죄로 처벌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음주청정지역을 홍보하려고 이화여대의 동아리(HEWA‧Happy Ewha Without Alcohol)’와 캠페인을 벌였다. 4월 2일, 10일, 13일 오후 7시에 경의선 숲길 공원과 여의도 공원.

동아리 대표인 이화여대 3학년 최지원 씨(22)는 “캠페인을 진행하니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기념품을 받고 인증샷을 찍으며 절주를 다짐하던 커플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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