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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미술, 비슷한 풍경
김재현 기자 | 승인 2018.06.18 00:03

 

서울  여의도 중심부에 있는 휴렛패커드(HP) 빌딩. 대화를 나누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뒤로 대형 조형물이 보인다. 사람의 얼굴, 날개, 구름의 형상을 한데 모은 잿빛의 조각작품. 성인 키의 두 배를 넘는다.

두 블록 건너 KT 여의도지사 앞에는 공중으로 솟구치는 뿔 모양의 조각이 있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이 햇빛을 반사했다. 두 조형물은 형태와 소재가 다르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위 조형물은 ‘건축물 미술작품’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와 대통령령에 따라, 연면적 1만 ㎡ 이상의 건축물에는 건축비의 0.7%를 써서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한다.

작품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아서 건물주는 대형조각을 선호한다. 실제로 건축물 미술작품의 80% 정도가 조각 작품이다. 문제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많다는 점. 앞에서 나온 작가의 작품은 빌딩, 대형마트, 아파트를 비롯해 서울에 46점이 설치됐다.

미술작품 제작 전, 지방자치단체는 작품성이나 안전성 요건을 심의한다. “이미 여러 차례 심사에 의뢰되었던 작가의 작품 같습니다.”(2018년 제6차) “같은 작가, 세 번째 작품이네요.”(2018년 제2차) 서울시의 미술작품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나오는 발언이다.
 
기자는 공공미술포털에 등록된 서울시 건축물 미술작품 실태를 분석했다. 지난 30여 년간 제작에 참여한 작가는 887명, 작품은 2789점이었다. 가장 많이 참여한 상위 10%의 작가가 전체의 40% 가량을, 상위 20%의 작가가 60% 가량을 제작했다. 1점만 제작한 작가가 절반(49.6%)에 가까웠다.

일부 작가가 계속 제작하니 다른 공간에 비슷한 조형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4월 26일 서울지하철 4호선 사당역 근처 상가. 화단 위에 은색 조형물이 보인다. 얼굴과 몸, 팔다리가 선으로 단순화된 사람의 형태였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나무꾼’을 연상케 했다. 달리고 점프하는 등 동적인 모습이다.

같은 날 찾은 서울 중구 을지로의 호텔 앞에도 비슷한 조형물이 있다. 사당역 근처에 사는 류석원 씨는 “자주 다니는 장소인데 (작품을) 의식해서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다른 곳에 설치된 작품 사진을 보여주자 “같은 작가인가?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 단순화된 사람형태의 조형물. 호텔, 상가, 아파트 앞에 설치됐다.

4월 28일 찾은 서울역 인근의 고층빌딩 앞. 황금빛 조형물이 화려하게 자리 잡았다. 거대한 소용돌이 형태가 고층빌딩과 닮았다. 종로의 상가 옆에는 구릿빛 조형물이 잔디밭 위, 가로수들과 함께 보였다. 크기와 장소가 다르지만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비슷했다. 질서 있게 배열된 수십, 수백 개의 얼굴이 하나의 조형물을 구성했다.

▲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만든 조형물.
▲ 말을 타는 사람 형태의 조형물.
▲ 파동이 이는 원 모양의 조형물.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도입목적 중 하나는 작가의 창작기회 확대였다.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공공조형물 시장은 연 평균 7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여기에 일부 작가만 참여한다면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셈이다.

경기대 박영택 교수(예술학과)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좋은 작가를 섭외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통과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형물 전문작가에게 유리한 구조다. 작가들이 많은 혜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작품수주에 대행사의 영향이 커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대행사에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2017년 4월부터 미술작품 공모 대행제를 실시하는 중이다. 건물을 지을 때 설치할 미술작품을 서울시가 공모해서 여러 작가의 참여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공공건물에 일부 적용되지만 민간분야까지는 확대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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