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오후 8시,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근처의 마로니에 공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9개 단체가 장애인 인권개선을 위해 마련한 ‘대항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박길연 씨(55)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전동휠체어의 배터리가 몇 시간 전에 방전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자원봉사자가 주변 건물에 갖고 가서 충전했지만 언제 또 방전될지 몰랐다.

▲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대항로 파티’ 현장.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런 걱정을 한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서울 마포장애인자립센터의 이선호 총괄국장은 이렇게 묻고 “불안하죠? 전동휠체어는 보행에 관련된 거니까 그거보다 훨씬 심각하죠”라고 말했다.

이용자는 외출하고 들어오면 다음날 아침까지 8시간 정도 충전을 한다. 핸드폰 배터리가 1년 넘으면 빨리 방전되듯이 전동휠체어 배터리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잔량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겨울철이 되거나 비탈진 곳을 자주 다니면 이용시간이 짧아진다.
 
급속충전기는 이런 경우에 유용하다. 일반충전기로는 8시간 넘게 걸리지만 급속충전기로는 2시간이면 된다. 문제는 일부 지하철역과 주민센터에만 설치됐다는 점이다.

▲ 지하철 1호선의 종로3가역에 설치된 급속충전기.

김희철 씨(58, 지체장애 1급)는 작년 10월, KTX를 타려고 서울역에 도착했다가 배터리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알았다. 지하철역 안내원이 데리고 간 곳은 일반 콘센트만 있었다. 그는 “서울역에 당연히 급속충전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너무 황당했죠”라고 말했다.
 
전국에 설치된 급속충전소는 2016년 기준으로 758곳. 서울 199곳, 부산 82곳, 광주 20곳이다. 세종시는 1곳뿐이다.

관리 허술도 문제다. 김 모 씨는 작년 5월, 전동휠체어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강북구청으로 향했다. 별관 1층의 급속충전기를 휠체어에 연결하고 1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충전이 되지 않았다. 급속충전기가 고장난 상태였다. 기자가 강북구청에 묻자 “점검을 따로 하지는 못하고 민원인이 요구하면 조치를 취한다”고 대답했다.

현실이 이러니 장애인은 배터리가 방전될 것 같으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른다고 했다. 작년 12월, 이형숙 씨(52)는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근처에서 전동휠체어가 멈춰 선 적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고 3시간 정도 기다렸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16년 보고서(전동보장구 충전소 운영 효율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동보장구 사용 중 배터리 방전을 경험한 비율이 48.7%였다. 연구를 담당했던 강정배 조사패널팀장은 “(급속충전소가) 제대로 관리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충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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