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독서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듯 수도 없이 쏟아지는 신간들 속에서 신문이나 잡지, 혹은 텔레비전의 신간 안내는 책을 읽지 않고도 아는 척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쓸모 있다. 방송은 그들도 좋은 책을 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어려운 책보다는 차라리 TV쇼 보기를 권유하기 위해 신간을 소개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서평은 때로 의도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을 사용한다. 군데군데 현학적인 단어를 섞어가며 그들의 지적 수준이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주려 한다. 대부분의 서평은 저자에 대해 소개하고, 책의 서문을 이용한 간략한 내용언급, 그 책의 출판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지적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저자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까지 분석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빠뜨리는 거다. 서평을 쓰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는 책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핵심적 내용을 쉬운 말로 보여주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독자들이 그 책에 대해 경외심을 갖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서평은 매출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서평을 쓰는 사람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 신문과 잡지에서 출판사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평은 대개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세상의 바보들을 향해 웃음을 날리다

덥수룩한 수염의 까만 모자. 사진에서 풍기는 외모만으로도 천재의 느낌을 주는 사람. 중세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묵시론적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그는 이미 대중에게 친숙하다. 현대의 저명한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인 그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그 박식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는 모국어인 이탈리아어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에 이르기까지 보통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지독한 천재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투박함을 타고난 그는 결코 거드름을 피우는 법이 없다. 그래서 거드름이 생활화된 사람들에게 그의 언어는 가시가 된다. 그는 없는 말을 꾸미지는 않는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감없이 쓸 뿐이다. 다른 누구도 일상의 경험들이 이렇게 훌륭한 코미디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에코는 바보들이 만드는 세상이 얼마나 웃긴지 독자들에게 펼쳐보인다.

그는 일상의 경험을 글로 표현하며 궁극적으로는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그는 현대사회의 광기와 어리석음을 발랄한 어휘로 지적하고 있다. 그의 파스티슈(어떤 대가의 기법이나 양식을 모방하는 것)와 패러디는 이 책이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패러디에 대해 그는 서문에서 명쾌한 해석을 내린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소재에 있다. 고대의 철학에서부터 최첨단 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그의 박식함을 경험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또다른 쏠쏠한 즐거움이다. (옮긴이 이세욱, 열린책들)

그럼에도 이 책의 서평이 필요한 이유

대충 이런 식이다. 독자들은 대게 이런 형식의 서평을 읽고는 한 마디 중얼거릴지 모른다. "도대체 이 책이 무슨 내용이야?" 만약 그렇다면 그건 성공한 서평이다. 출판사와 글쓴이의 의도에 딱 맞아떨어지는. 그래도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서평이 필요하다. 그 이유를 이 책의 한 에세이 일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하려 한다. 왜 그런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생각할 몫이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플라톤 : 이상적으로 지냅니다.
칸트 :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헤겔 : 총체적으로 보아 잘 지냅니다.
쇼펜하우어 :   잘 지내려는 의지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 내일은 더 잘 지내게 될 거요.
다윈 : 사람은 적응하게 마련이지요.
비트겐슈타인 :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군요.
히틀러 : 내가 해결책을 찾아낸 듯합니다. 모든 답은 내게 있다.
프로이트 : 당신은요?
포퍼 : 내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시오.
카뮈 : 부조리한 질문이군요.
맬서스 : 인구에 회자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하이데거 : 바스 하이스트 게엔?('지낸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라는 뜻)

 김수진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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