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0년 전, 1948년 5월 10일에 첫 총선이 있었다. 당시에도 유세차량이 도심 곳곳을 돌아다녔을까. 선거 포스터는 지금과 비슷할까. 선거라는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강원 동해시로 향한 날은 6월 2일 토요일이었다. 기자의 할아버지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름은 주행수, 올해로 91세다.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입었다. 안부를 물었다. “늙은이가 어떤 말을 해야 도움이 될까 고민하느라 간밤에 밤잠을 설쳤지 뭐야(웃음).”

▲ 주행수 씨가 5.10 총선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민주항쟁 등 한국 근현대사를 몸으로 겪었다.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제헌국회 당시를 끄집어냈다.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5·10총선거를 치르던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선거라는 걸 처음 경험하고,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선거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 채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거라는 정도로만 인식했다는 뜻이다.

“관계 기관에서 투표 기간을 알려주며 유권자에게 선거활동을 독려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어. 그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국민이 중심인 나라로 거듭나는구나 싶어 벅찼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사료공장에서 일했다.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이 선거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나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투표용지를 받았지. 면사무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유권자 등록을 해야 쌀 배급표를 주겠다며 투표를 독려했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투표를 했는데, 자유롭게 누구를 뽑는 분위기가 아니라 거의 반강제적으로 누구를 뽑아야 하는 식이었다고 할아버지는 회상했다.

조선일보 1948년 4월 7일자 기사는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특정 지역에서는 청년단원과 경찰관이 유권자 등록을 권고했으며, 등록을 하지 않으면 유령식구가 아니냐며 짜증을 내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주지 않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주민들은 어떤 이유로 유권자 등록을 망설였을까. 할아버지는 이웃 이야기를 꺼냈다. 북에서 내려왔던 이웃 노인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하면 통일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 유권자 등록을 끝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가족이 북에 있는데, 나라에서는 자꾸 분단을 부추기는 행동을 한다며 개탄했던 그 분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5.10 총선거의 투표소.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할아버지는 총선거에 대한 좌익세력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들은 투표하면 독재국가가 된다며 선거권 행사를 막았다. 투표소에 총격을 가하거나 먼 데서 총소리를 내서 투표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로 해서 그렇지, 당시에는 소란도 그런 소란이 아니었지.” 할아버지는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했다.

당시 좌익세력은 전국 곳곳에서 단독선거에 반대하며 경찰서와 투표소를 습격했다. 이에 맞서 경찰과 우익세력이 쌀을 배급하면서 선거인 등록을 독려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실시된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 198명이 당선됐다. 1년 뒤 제주도에서 2명이 추가로 선출되면서 제헌의회는 200명으로 구성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당선자 소속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명 △한국민주당 29명으로 이승만과 우익세력의 압승이었다.

5.10총선거 이후의 한국은 이전 시대와 다르다. 할아버지는 가장 큰 변화로 자유를 꼽았다. 일제강점기는 군국주의이므로 총독부를 중심으로 일제의 지시 아래 움직였다. 멋모르고 끌려 나가 비행장을 닦고 방공호를 만들다가 해방이 되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고 할아버지는 회고했다.

지방선거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이건 온전히 내 생각이지만,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것은 다소 시기상조가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명예직으로 봉사하겠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마음대로 보수를 인상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일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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