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게 예의 없고 찌질하다.” “내 아들이라면 삽과 포크레인으로 묻어 버리겠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A 씨는 민원을 제기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공무원들은 동의 없이 A 씨의 거주지 등 개인정보를 열람했고,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A 씨는 광명 시민인권센터에 인권침해라며 진정했다. 해당 공무원은 인권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수원에 사는 B 씨는 자신이 일하는 복지시설로부터 원치 않는 종교 행사에 참여하라고 강요받았다. B 씨도 수원시 인권센터에 진정을 제기했다. 센터의 도움으로 복지시설의 직원채용 공고에 있던 특정종교 편향적인 문구가 삭제됐다.

두 사람이 다른 지역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위와 같은 방식의 구제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도움을 받은 인권센터의 설립 및 운영근거는 시가 제정하고 운용하는 인권기본조례(이하 인권조례)이지만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4월 지자체에 인권조례 표준안을 제시하며 제정을 권고했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인권의 표준을 일상생활에서 보장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문제는 제정과 이행이 지자체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전국 지자체 243곳 중 인권조례를 제정한 지역은 103곳이다. 제정하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광역단체를 기준으로 하면 17곳 중 인천과 충남을 제외한 15곳이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반면 기초단체에서는 제정한 지역이 226곳 중 88곳에 불과하다.

조례제정만이 능사는 아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인권조례가 실질적으로 행정을 뒷받침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으로 정책권고 권한과 인권구제기구가 꼽힌다.

정책권고는 인권조례에 따라 설립된 인권위원회가 정책을 개선하라고 지자체장에게 직접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이다. 광명시의 박경옥 시민인권센터장은 이런 권한이 “간부급 공무원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권고 권한을 조례에 명시한 지역은 광역 지자체 4곳, 기초 지자체 15곳에 불과하다.

인권구제기구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을 구제하는 조직이다. 시민이 진정을 제기하면 상담, 조사 및 구제를 진행한다. 이런 기구를 둔 곳은 광역 지자체 6곳, 기초 지자체 5곳이다.

경기 광명시는 인권조례의 실질적 이행에서 모범지역으로 꼽힌다. 2011년 8월 제정된 광명시 인권조례는 인권위원회의 정책권고 권한뿐만 아니라, 인권업무를 총괄하는 시민인권센터와 인권구제기구인 시민인권옹호관 제도를 명시했다. 광명시 시민인권센터가 작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은 이유다.

광명시는 시민위원제도를 운영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시민이 행정을 모니터링하고 개선이 필요한 점을 찾는 참여형 제도. 작년에 시민위원들은 광명시의 산책길인 ‘광명 작은 둘레길’이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지 모니터링하고 제안서를 작성해 인권센터에 제출했다.

2017년 시민위원으로 활동한 이인숙 씨는 “광명시가 시민의 삶을 돌보는 정책을 제시하면서 시민이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민인권센터가 주민의 참여를 지원함으로써 지역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킨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광명시 사례는 그림의 떡이다. 여러 지역에서 인권조례는 방치되어 있다. 경남 진주시에서는 시민단체 주도로 시의회가 2012년 10월 인권조례를 제정했으나, 시행된 정책이 거의 없다.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지자체도 늘어나는 중이다. 충남도의회는 4월 3일 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했다.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를 폐지한 사례다. 폐지를 찬성한 측은 충남도민 인권선언문에 명시된 ‘성적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의 김혜영 공동대표는 “충남에서 인권 자체를 아예 없애려는 시도”라고 했다. 충남은 도의회의 폐지 조례안 가결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 시민단체가 충남도의회 앞에서 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출처=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 페이스북)

충남의 인권조례 폐지는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중이다. 충북 증평군의회가 4월 20일, 충남 계룡시의회가 5월 1일 인권조례 폐지안을 가결했다.

국가인권위 인권정책과의 송초아 주무관은 지자체를 규제하기보다 시민의 인권의식에 맡기는 방법이 좋다고 했다. “인권조례를 실효성 있게 실천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의식이 높아져야 지자체장도 인권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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