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 돌아가셨던 남성의 얼굴과 심폐소생술(CPR)을 할 때의 감촉이 떠올라요.”

경기 일산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복무하는 윤재영 수방은 첫 출동 당시를 담담하게 떠올렸다.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은 40대 남성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임무였다. 중앙소방학교에서 응급조치교육을 받았지만 실전은 교육과 달랐다.

눈앞에는 애니(CPR 교육용 마네킹)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 누워있었다. 긴장감 때문일까, 교육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CPR을 시작했지만 결국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숨을 거둔 뒤였다.

한 생명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셈이다. 윤재영 수방은 “내 앞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무서웠다”고 말했다.

▲ 윤재영 수방이 탔던 구급차 내부.

의무소방원은 구급대나 구조대에서 소방관을 보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죽음과 마주한다. 경기 분당소방서의 이건구 일방은 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적이 있다. 26세 여성 운전자가 갓길에 주차하고 내렸다가 뒤차에 치인 사고였다.

이건구 일방은 “도착했을 땐 (여성의) 다리가 절단되고, 머리 뒷부분이 열린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절단된 다리는 여성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도로에 흩어졌다. 머리 뒷부분으로는 뇌수가 흘러나왔다.

그는 절단된 다리를 자루에 담고, 심전도 패드를 붙인 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 하지만 여성 운전자는 숨졌다. 그에게 죽음은 두렵다고 해서 피해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의무소방원의 대부분은 20대 초중반이다. 죽음을 생각하거나 겪어보기에는 이른 나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 삶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1월 전역한 윤영제 씨(24)는 3중 추돌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었다. 트럭 2대와 SUV 1대가 추돌하면서 가운데 있던 SUV 탑승자의 머리가 중간에 끼었다.

도착했을 때 탑승자의 팔다리는 조금씩 움직였다. 유압기를 이용해 구출하려 했으나 탑승자는 곧바로 숨을 거뒀다. 윤 씨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의무소방원은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진 여성노인이 목숨을 잃는 사고처럼 어이없는 죽음을 많이 목격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죽음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인간의 목숨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의무소방원은 자살현장에 출동해서 시신을 수습하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아내와 이혼한 남편이 삶을 비관해 네 살배기 딸을 목 졸라 죽이고 흉기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 사건이 있었다.

▲ 윤재영 소방이 일산소방서의 구급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취재에 응한 의무소방원과 전역자는 출동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였다. 그런 순간을 보면서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변했다고 말한다.

윤영제 씨는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윤재영 수방은 남을 돕는 일이 쉬워졌다고 말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이 있다. 의무소방원은 많은 죽음을 보며 자신에게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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