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이천호 씨(59)는 지난해 4월 휴대폰요금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20만5550원이 나왔다. 월평균 4만~5만 원을 납부했기에 내역을 봤더니 소액결제로 15만 원이 있었다.

이 씨는 스마트폰의 비밀번호 패턴을 혼자 바꾸지 못해서 아들에게 부탁을 할 정도의 ‘디지털 문맹’이다. 모바일 결제는 불가능한 수준. 결제시간을 보니 3월 14일 15시 56분으로 나왔다. 경기 부천의 현대백화점 앞에서 20대 청년을 태우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으로 가던 때였다.
 
청년은 싹싹했다. “기사님 택시하기 정말 힘드시죠?” 뒷좌석의 청년은 자신이 대학을 다니고, 아버지 또한 정년퇴직 후 택시기사를 준비한다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씨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있고, 50대 중반에 택시운전을 시작했기에 청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실례지만 어머니에게 전화 한통만 써도 되겠습니까?” 청년은 정중하게 물었다. 스마트폰이 고장 났다면서 택시비가 없어 어머니에게 돈을 넣어달라는 부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청년을 믿고 휴대폰을 건넸다. 청년은 어머니에게 10만 원만 넣어달라며 말했다. 곧이어 문자가 도착했는데, 청년은 어머니의 신상정보가 있으니 지우겠다고 말했다. 그 뒤 청년은 은행 앞의 ATM에서 돈을 뽑아 택시비를 줬다. 청년은 내리면서도 깍듯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통화는 가짜였다. 문자는 모바일결제에 필요한 승인번호를 받는 용도였다. “난 그걸 몰랐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렇게 하나싶었어요.” 그 뒤로 이 씨는 20대가 전화를 빌려 달라고 하면 자신이 번호를 직접 누르고, 스피커폰을 킨다.

 

▲ 택시기사 이천호 씨가 받은 모바일 요금청구서.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결제에 익숙하다. 2015년 2월에 출시된 ‘토스’ 등의 송금 어플리케이션을 자주 사용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간편 송금 서비스 이용실적은 일평균 68만 건, 액수로는 351억 원을 기록했다.

“24600원, 내가 그 요금을 못 잊어요.” 기사 윤모 씨(67)의 말이다. 그는 오전 7시 15분,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지하철 3호선 수서역으로 향하는 20대 중후반의 여성을 태웠다. 동부간선도로로 진입할 즈음, 승객은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지갑을 안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윤 씨는 출근시간이라 바쁠 테니 계좌이체를 해주라고 말했다. 젊은 승객을 배려한 일종의 ‘서비스 정신’이었다. 승객은 자신이 오후 6시에 퇴근하니까 7시 안에 꼭 입금하겠다며 시종일관 고마워했다.
 
승객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래도 윤 씨는 기다렸다. 다음 날까지도 요금이 입금되지 않자 윤 씨는 점심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다. 승객은 받지 않았다. 결국 요금 받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기사 송승규 씨(50)는 상당수의 기사들이 1년에 1~2번은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사들에게 계좌이체는 ‘못 받는 돈’으로 간주된다. 기사 김한표 씨(67)는 “10명 중 9명은 계좌이체를 안 넣어줘요”라고 말했다. 이런 승객의 대부분은 20~30대라고 한다.

기사들 대다수는 돈 받기를 포기했다. 소액이 많고, 자녀와 비슷한 연령대의 승객이 대부분이라 굳이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다. 기사 박준수 씨(60)는 계좌이체가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잔액이라도 달라고 말한다고 했다.

▲ 부천개인택시조합 소식지에 실린 NFC 기능설명.

교통카드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대면 결제가 된다. 10c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NFC 기술 덕분이다. 이 기능을 일부러 비활성화한 뒤 “방금 전까지는 결제가 됐다”며 계좌이체를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NFC 모드가 활성화됐는지 확인하면 되지만 중장년층 기사는 여기에 익숙하지 않다. 기사 김한표 씨는 “기사들은 본인 휴대폰도 제대로 사용 못해요. 신기술 모르는 기사들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중장년층 기사는 NFC 용어 자체를 몰랐다.

대부분의 기사는 피해를 입어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 운행시간이 제한된 택시기사에게 시간은 금(金)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서 방문은 그 날 수익의 일정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 씨는 “경찰서 가봐야 1~2시간씩 시간만 날아간다. 잊어버리고 빨리 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부천개인택시조합의 소식지에 이런 글이 실렸다. “개인적으로 몇 천원 때문에 경찰서에 고소하고, 담당 경찰관을 배정받아 조서를 받으면서 몇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은 업무 특성상 무리가 따르기에….”

부천조합에 따르면 작년 6월에서 8월 사이에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20대 승객이 계좌이체 사기를 벌인다는 피해 11건이 접수됐다. 이를 모아서 부천조합은 부천 원미경찰서에 고발장을 냈다. 송춘옥 조합장(50)은 “택시 하는 분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