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가까이 잊지 못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SBS 보도국에서 문화부장으로 일할 때다. 한국의 대표 소프라노 중 한 분인 홍혜경 선생이 우리 가곡 CD를 냈다고 해서 만나봤다. 한국 가곡집의 전 세계 동시발매 첫 사례였다. 그것도 EMI라는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VIRGIN CLASSICS라는 유명 레이블로 발매된다고 했다.

My Favourite Korean Songs라는 제목의 이 CD는 우리가곡 16곡을 담았다. 그리운 금강산, 보리밭, 그리워, 수선화, 가고파, 그네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듬뿍 담긴 성악곡이었다.

▲ 2003년에 발매된 소프라노 홍혜경 선생의 한국 가곡집 CD.

연주녹음을 어디서 했는지 궁금했다. 우리 가곡을 우리 성악가가 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우리 기술로 녹음해 전 세계에 배포하려 했다면 그야말로 한국 가곡사와 우리 음반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홍혜경 선생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공연장이라고 했다. 놀라서 다시 물었다. “그럼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파리까지 대동하고 가서 녹음하셨어요?”

외국노래가 아니라 우리 가곡이니까 당연히 우리 정서를 잘 아는 우리 오케스트라와 우리 지휘자가 협연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선생의 대답은 달랐다. 지휘만 한국인에게 맡기고 오케스트라는 프랑스에서 구했다고 했다.

지금은 워너뮤직을 통해 발매되는 이 CD는 2003년 3월 파리 퐁피두센터의 스트라빈스키홀에서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홍혜경 선생의 협연으로 제작됐다. 지휘는 김덕기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홍혜경 선생에게 다시 물었다. “프랑스 사람은 우리 가곡에 깔린 정서를 모르지 않나요? 협연에 아무 문제가 없었나요?” 홍 선생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노래가사의 내용을 프랑스 말로 일일이 설명해주고, 그 내용을 떠올리면서 반주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당시 한국의 녹음 수준이 믿을만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음악은 어떤 CD, 어떤 LP, 어떤 파일로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음악을 많이 듣는 분들은 잘 아는 사실이다. 녹음이 잘 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소리는 천양지차다. 심지어 똑같은 가수의 노래임에도 서로 다른 가수의 노래처럼 들리는 경우도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의 중저음 가수 레오나드 코헨의 음반이 하나의 예다. 그의 노래를 실황녹음으로 들으면 우리나라 포크가수 조동진 정도 음역대의 음성이지만, 음반 중에는 더 낮고 굵은 베이스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 있다.

영화 쉬리 삽입곡 ‘When I Dream’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영국 여성 재즈가수 캐롤 키드의 경우도 그렇다. 녹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복제음반으로 들으면 부드럽고 청순한 목소리로 들리지만, 인터넷 스트리밍에서는 약간 목이 쉰 것 같은 목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노래반주도 어떤 음반으로 들으면 나일론 소재의 기타 줄로 하는 듯이 들리지만, 어떤 음반으로 들으면 마치 금속성 소재의 줄로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 캐나다 출신 남성가수 레오나드 코헨(왼쪽)과 영국 여성 재즈가수 캐롤 키드의 음반.

음악 제대로 듣기의 출발점은 좋은 CD, 좋은 LP, 좋은 음악 파일을 찾는 일이다. 좋은 오디오 기기를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음악의 제 맛을 즐기고 싶다면 CD나 LP, 또는 음악 파일을 잘 가려서 들어보자.

맛집 찾듯이 좋은 음반, 좋은 CD, 좋은 음악파일을 찾아 들으면 이어폰을 구경이 큰 스피커로 바꾸는 것 이상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첫 두 편의 이야기에서 스피커 크기와 음반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봤으니, 다음 편부터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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