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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죽음을 기록하는 법
진선민 기자 | 승인 2018.05.09 00:15


지난 3월 29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1면이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유관순 열사의 사망기사(obituary)가 실렸기 때문이다. A4 2장 분량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1919년 봄, 한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16세 여학생은 자유를 염원하는 민족 전체의 갈망을 상징하는 얼굴이 됐다.”

기사는 유관순이 3.1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유관순이 감옥에서 남긴 말을 직접 인용하고, 옥중 사진을 실었다. 시대 상황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한국의 역사’ 저자 김준길을 출처로 밝혔다. 기사 말미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사과 발언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유관순 평가를 인용했다.

▲ 3월 29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뉴욕타임스는 왜 유관순이 순국한지 98년 만에 사망기사를 냈을까.
유관순 사망기사는 3월 8일에 시작한 ‘우리가 간과한 사람들’ 기획의 일환이다. 167년간 뉴욕타임스의 사망기사가 백인 남성에 편중됐다는 반성에서 비롯했다. ‘제인에어’를 쓴 소설가 샬롯 브론테의 사망기사(3월 8일자)가 163년 만에, 1차 세계 대전 때 ‘죽음의 부대’를 이끈 러시아 군인 마리아 보크카레바의 사망기사(4월 26일자)가 98년 만에, 초코칩 쿠키를 발명한 루스 웨이크필드의 사망기사(3월 22일자)가 41년 만에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아미샤 팻나니 기자와 제시카 베넷 기자가 작성한 기획의도의 일부를 소개한다.
“누구의 죽음을 기록할지는 사회적 판단을 반영해 결정한다. 그간 뉴욕타임스의 사망기사를 돌아보면 미국 사회가 다양한 인물과 업적에 어떤 가치를 매겨왔는지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영미권에서 사망기사는 고인의 삶을 기념하는 동시에 사회적·공적 가치를 담은 기록물이다. 뉴욕타임스의 사망기사 전문기자 윌리엄 맥도날드가 고백한 대로 작성자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편견”이 담길지언정 사망기사의 가치를 부정할 순 없다.

▲ 뉴욕타임스 사망기사란(5월 4일 기준)

 
영미권 언론들은 부음(paid death notice)과 사망기사(obituary)를 분명하게 구분한다. 부음은 유족이 언론에 돈을 내서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온라인 부음란은 79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사망기사는 언론사의 판단으로 작성된다. 미국 작가 알렉산더 그린은 “우리 중 대부분은 뉴욕타임스에 사망기사가 실릴 만큼 유명해지거나 악랄해지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부음과 사망기사는 양적으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부음에는 고인의 생애 정보와 장례식 정보가 500단어 내외로 간략히 실린다. 사망기사는 선택된 고인들의 생애를 상세하게 기록한다.

한국 언론에선 영미권식 사망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망기사 전문기자도 없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가디언 등은 사망기사란을 따로 두지만, 한국 언론은 부음란만 둔다. 중앙일보의 ‘삶과 추억’ 연재와 한국일보의 ‘가만한 당신’ 연재가 비정기적으로 사망기사를 싣는 정도다.

4월 30일자 조선일보 부음란은 8명의 죽음을 다뤘다. 이들의 죽음은 정형적인 형식과 분량으로 적힌다. 고인과 유족의 이름, 장례식 일시와 장소, 장례식장 연락처를 쓰면 끝이다. 영미권 부음(paid death notice)과 비교해도 훨씬 간소하다.

▲ 4월 30일자 조선일보 부음란. 사회면(A14면) 하단에 실렸다.

고인이 특별한 업적을 남기면 ‘한 줄 부음’을 면한다. 4월 28일자 조선일보 부음란에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 씨가 실렸다. 마지막에 유족과 장례식 정보를 제공한 것은 일반 부음과 같지만, 고인의 생애 기록이 추가됐다. 이동기 씨가 한국의 베니 굿맨으로 불렸고, 1967년 재즈 밴드를 시작했고, 최근까지 활발히 연주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드물지만 저명인사가 사망하면 한국 언론도 사망기사를 싣는다. 3월 14일(현지시각) 스티븐 호킹 박사가 별세했을 때, 조선일보는 15일자 지면 한 페이지를 할애해 스티븐 호킹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했다. 기사를 쓴 이영완 과학 전문기자는 “국내외 유명인의 사망기사는 관련된 분야의 담당 기자가 맡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스티븐 호킹 기사는 A4로 1장 반 분량이다. 전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기사는 A4 10장이 넘는다. 기사 분량뿐만 아니라 취재양도 압도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 7명의 취재원을 직접 인용했다. 가령, 에드워드 위튼 프린스턴 연구원은 “호킹의 발견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은 지난 40년간 학계의 새로운 생각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기사는 동료 연구자나 지도 교수·학생 등의 코멘트를 통해 스티븐 호킹의 업적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 설명한다.

사망기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대신 무수한 일화와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 주변인의 증언을 교차 편집하는 식으로 독자에게 인물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스티븐 호킹은 65세 때 무중력 비행에 도전하며 “신체장애로 제약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건 노벨상 수상뿐이라는 세간의 말을 듣고 “노벨상은 관찰로 확인된 연구 이론에 주어지는데 나의 작업을 관찰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스티븐 호킹이 우주 탐사 옹호론자라고 썼다. 그는 우주 탐사가 앞으로의 인간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고인의 다양한 삶의 흔적을 모아두었기에 독자에게 판단의 여지가 주어진다.

물론 사망기사가 찬사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호킹이 아내 일레인에게 폭행당한 의혹으로 조사받았다는 점과 사후세계를 부정해 종교계의 빈축을 샀다는 점도 적혔다. 스티븐 호킹과 야콥 베켄슈타인의 논쟁, 끈이론의 대가 레너드 서스킨드와의 30년 블랙홀 논쟁도 상세히 실렸다.

▲ 뉴욕타임스의 스티븐 호킹 사망기사

영미권의 사망기사를 처음 접한 독자는 그 방대한 양에 한 번 놀라고, 고인이 죽자마자 기사를 내는 속도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건 3월 14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모두 당일에 사망기사를 발행했다.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의 동거인이 공식적으로 지방시의 사망을 알린 3월 12일에도, 세 언론사는 곧바로 사망기사를 내보냈다.

유명인사 사망기사는 인물이 죽기 전에 미리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아직 죽지 않았는데도 언론에서 잘못 알고 사망기사를 내는 일이 있다. 영미권에서는 이를 일컫는 ‘시기상조의 사망기사(premature obituaries)’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윌리엄 맥도날드는 자사의 ‘뉴스룸을 말한다’(2006년 9월 25일자) 기사에서 사망기사 취재법을 공개했다. “주요 인물과는 생전에 사망기사를 위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내용은 엠바고에 부치고 그가 죽고 나면 공개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사망기사 전문기자 앤 로도 자사 인터뷰(2017년 6월 5일자)에서 유명인사의 사망기사용 자필 진술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명한 사람은 드물다. 사망기사에 실리는 인물 대부분은 업적을 남겼으나 유명세를 떨치진 못했다. 맥도날드는 “내가 맡은 사망기사 열 건 중 한 건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기자들은 제로베이스에서 취재를 시작한다. 구글에 검색하고 고인이 쓴 책을 읽는 것부터 고인을 잘 아는 취재원을 찾아내는 것까지. 워싱턴포스트의 사망기사 전문기자 리차드 피어슨은 “사망기사를 쓰는 건 내 삶을 모험(adventure)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을 탐구해 수많은 정보를 흡입하고 그것을 지면에 내뿜는 일. 맥도날드가 말했듯 이것은 사망기사를 쓰는 기자만의 특권이다. 사망기사는 죽음으로 빛을 보는 글이지만, 죽음보다는 삶에 관한 글이다. 우리는 사망기사 속 삶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언메트릭 창립자 럭스 나라얀은 매일 아침 신문의 사망기사란을 읽는다. 나라얀은 2017년 테드 강연에서 20개월간 그가 본 2,000개의 사망기사 제목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름, 인물의 삶을 요약하는 수식어, N살에 죽다’ 2,000개의 제목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수식어는 ‘Help’였다. 사망기사에 실릴 만한 인물은 남을 돕는 삶을 살았다는 교훈을 준다.

영미권 언론은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독자에게 삶의 유산을 남긴다. 한국 언론은 죽음을 충분히 곱씹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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