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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는 이념이 없다 - 충남 아산 학살의 민낯을 파헤치다
김예원 기자 | 승인 2018.05.05 11:49

 

▲ 잔뿌리와 흙에 뒤덮인 채 발굴된 학살 피해자 유골. 완전한 형태로 발굴된 몇 안 되는 유해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진 망자의 유골에는 풀뿌리와 흙이 가득했다. 손상을 막기 위해 조심스런 손길로 흙을 털고 뿌리를 자르자 굳게 닫혔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비명을 지르는 듯한 입은 67년 전 신음과 울음이 난무했던 학살의 그 날을 여과 없이 재현했다. “집단 총살 후 작은 신음이라도 나면 짚으로 불을 피웠다는 증언이 있어요. 살아 있을까 봐.” 안경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총괄팀장은 호미로 능숙하게 흙을 긁어모았다.

한 번의 호미질로도 새까맣게 탄 허리끈과 그을린 섬유가 붙은 뼈들이 나왔다. 흙을 파내던 그의 손길은 구덩이 속 작은 구멍을 발견할 때마다 신중해졌다. 땅 속에 묻힌 유해의 생전 뇌가 있던 구멍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의 두개골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땅 속에 갇혔던 유해는 조금만 손길이 닿아도 으스러졌다. 유해 주변 흙을 체로 치면 잘게 부스러진 뼈가 남았다. 체 칠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난 유해가 나올 때면 안 팀장은 조심스럽게 주변 흙을 쓸어 담아 옆 사람에게 건넸다. “좋은 곳에 모셔드려라.” 발굴 내내 그는 몇 번이나 이 말을 반복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원인 김광욱 씨(72)는 체를 쳐 유해 조각을 찾는 작업을 했다. 그는 다섯 살 때 학살로 아버지를 잃었다. 김 씨는 이웃 증언을 토대로 아버지가 이곳 폐광산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믿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담을 수 있을까 싶어 매일 산에 올라와 발굴 작업을 돕는다. 그가 체를 살살 흔들자 흙덩어리 속에서 치아와 잔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 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체 위의 유해를 발굴판에 옮겼다.

 

▲ (왼쪽부터) 불에 탄 섬유가 붙어 있는 발굴된 유해, 체로 잔뼈를 골라내는 김광욱 씨.


1·4 후퇴 무렵이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앞세워 북한군이 머물렀던 지역 주민들을 본격적으로 학살했다. 충남 아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충남경찰국장의 명령과 온양경찰서장의 총괄 지휘 아래 경찰은 ‘도민증을 발급해준다’며 주민들을 불렀다. 허리 굽은 노인부터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까지 집을 나섰다. 사람들이 모이자 경찰은 말을 바꿨다. 주민들이 공산군을 도왔다고 주장하며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을 동원해 그들을 동네 방앗간에 감금했다. 짚단을 지고 산길을 앞장서도록 총부리를 겨눴다. 1951년 1월, 하얗게 눈이 덮인 설화산 폐광산에서 총소리가 하루 종일 울려 퍼졌다.

진실은 학살이 일어난 지 4년 만에 처음 알려졌다. 1955년 1월 검찰 수사를 통해 충남 아산 배방읍에서 경찰이 민간인 250여 명을 인민군 부역 혐의로 사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학살 주체인 경찰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2015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사업과 유해 발굴 사업을 지원하는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계기로 재조명됐다. 2017년 11월 16일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를 발굴단장으로 하는 공동조사단은 지역 주민 증언을 토대로 시굴작업에 들어갔다. 2018년 2월 22일 개토제로 시작된 발굴은 3월 30일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4월 말까지 감식과 보고서 작성을 끝내고 5월 경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 (왼쪽부터) 학살 은폐를 위해 희생자 매장지를 덮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판한 돌들이 쌓인 모습, 발굴 구역별로 정리된 유해들. 구슬, 옥가락지 등이 보인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폐광산엔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입구엔 유독 판판한 돌이 많이 나왔다. 자연적으로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이, 일정한 간격으로 발굴됐다. 이유를 묻자, 안 총괄팀장으로부터 “가스 때문에 시체가 부풀어 구덩이를 덮은 흙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누른 것으로 추측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쪽엔 돌을 들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밖으로 던져진 돌이 쌓여 돌무덤을 이뤘다.          

무차별적으로 겨눠진 총탄은 갓난아기의 조그만 가슴에도, 아낙네의 쪽진 머리에도 박혔다. 발굴 현장에선 M1과 카빈 소총 탄피가 자주 발견됐다. 각각 군과 경찰이 주로 사용했던 탄환이다. 미발탄 묶음도 종종 나왔다. 학살이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증거다.

 

▲ (왼쪽부터) 시신 유기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흙벽에 고꾸라져 박힌 유해(검은 원 안), 브러쉬를 사용해 유해를 드러내는 작업 중인 발굴단, 엄마와 아이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에 싸인 비녀와 치아.

유해는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엎드리거나 웅크린 자세도 심심찮게 발굴됐다. 공동조사단의 일원인 노용석 부경대 교수를 따라 4년 전부터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는 대학생 김소현 씨(24)는 “엄마 등에 업혀 죽은 채 발굴된 아이도 있습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폐광산에서 최종 발굴된 187구의 유해 중 여성과 아이들은 95% 이상으로 추정된다. 16세 미만 유해는 50여 구에 달한다. 김 씨는 머리카락이 엉킨 은비녀의 흙을 털어 모판 위에 올렸다. 녹슨 반지와 구슬 장난감이 생전 모습을 추측게 했다. 가로 10m·세로 15m·높이 2m의 작은 구덩이에 서린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왼쪽부터) 아세톤으로 발굴한 유해를 세척 중인 작업장, 곰팡이를 막기 위해 뼈를 건조 중인 모습.

발굴이 끝나면 세척을 한다. 뼈의 습기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칫솔로 유해를 닦는 작업장에는 아세톤 냄새가 가득했다. 세척이 끝나면 통풍이 잘되는 곳에 3~6시간 정도 건조한다. 건조가 마무리되면 감식에 들어간다. 성별, 사망원인, DNA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 작업이다. 이후 유가족과 유해를 어떻게 보존·보관할지 논의한다. 이번 발굴된 유해는 행정안전부 소속 세종시 추모의 집에 봉안된다. 발굴단장인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세종시 추모의 집은 임시 보관소입니다. 그마저도 재작년에 생겼어요. 우리나라는 학살 희생자를 위한 국가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국가의 무관심을 지적했다.

국가 차원의 조직적 학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거창사건 등 민간인 학살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 요구 법안이 꾸준히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임기만료를 이유로 폐기했다. 아산 민간인 학살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공식적으로 알려졌지만 진상규명과 발굴은 2010년 진실화해위 해산 이후 전면 중단됐다. 정부 예산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체 유해 발굴뿐이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아산유족회는 올해 2월에서야 민간단체인 공동조사단과 함께 목격자 증언을 기반으로 본격 발굴에 착수할 수 있었다.

발굴 종료 일주일 전 3월 24일 김광욱 씨는 유독 구덩이를 서성였다. 휴식시간에도 발굴도구인 솔과 양동이를 쥔 채 유해를 물끄러미 응시하기를 반복했다. 안 팀장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김 씨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여기 안 계신가 봐. 내일 다른 산을 가보려고…….선생하고 100만 원 내기를 했는데 내가 질 것 같아. 선생님. 100만 원 취소해주십시오. 취소해야지.”발굴이 종료될 때까지 그는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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