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된 진원이는 요새 텔레비전에 빠져 산다. 아침 8시에 하는 「꼬꼬마 텔레토비」를 시작으로 오후 4시에는 「춤추는 젤라비」와 「안녕 노디」까지 진원이의 하루는 영국 유아프로그램으로 꽉 차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아요. 그 말투를 따라하기도 하고 춤을 따라 추기도 해요." 진원이의 엄마 박분자씨는 진원이를 위해 텔레토비 인형을 사주기도 했다.

호주에서 7년에 걸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4개월 된 아기가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시간은 하루 평균 44분 정도다. 그리고 12개월이 되면 62분, 30개월이 되면 평균 84분 정도 텔레비전에 노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30개월 된 아기는 67%가 텔레비전의 유아 프로그램에 나오는 대로 춤을 추고 30% 내외의 아기들이 캐릭터에 관심을 갖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을 따라하는 등 텔레비전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그 말투와 행동을 따라하고 그 속의 정서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텔레비전 속에는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는 유아 프로그램은 없다. 유아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KBS의 「꼬꼬마 텔레토비」는 영국의 BBC에서 제작했다. 「꼬꼬마 텔레토비」의 성공은 외국 유아 프로그램의 열풍을 몰고 왔다. 이후 MBC는 영국 BBC제작의 「안녕 노디」를, SBS는 영국 윈체스터 텔레비전 제작의 「춤추는 젤라비」를 방영하고 있다. 우리의 안방을 외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외국의 유아 프로그램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꼬꼬마 텔레토비」는 15%전후의 시청률을 올리며 우리 나라 유아프로그램의 대표격인 MBC 「뽀뽀뽀」의 시청률을 급하락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비상사태를 맞아 지난 3월 「뽀뽀뽀」팀은 '우리 나라 어린이 프로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마련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얘기들은 우리 나라 유아프로그램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안정임 교수(서울여대 신방과)는 "영국 BBC는 어린이국을 별도로 설치하고 예산의 16%를 어린이 프로그램에 투자하며 일본은 한 유아프로그램을 PD 13명이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뽀뽀뽀」는 PD 2명, AD 2명과 5명의 작가가 만든다. 촬영은 하루 동안 일주일 분이 이루어진다. KBS의 「TV유치원 하나 둘 셋」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TV유치원」의 연출진은 4명의 PD와 6~7명의 작가로 이루어져 있다. 촬영은 3일 동안 일주일 분이 이루어진다. PD 3명이 3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돌아가면 맡기 때문에 기획기간은 2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자문위원은 특집 방송을 제작할 때만 임시로 두고 보통은 아동학과나 유아교육과 출신의 작가와 시청자 의견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이러한 현재 우리 나라 유아 프로그램의 실정에 대해 「뽀뽀뽀」의 안정은 작가는 "데일리 프로그램은 외국이나 우리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아교육전문 프로덕션 '투마로우 타이거'의 대표 박선우씨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잘라 말한다. "외국의 경우는 장기적인 사전 기획을 합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을 찾아내서 보여줍니다. 우리 나라 프로그램들처럼 '이런 걸 하면 착한 아이에요, 저런 걸 하면 안되죠'라는 개념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세사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어린아이가 계단을 기어가서 뛰어가기의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의 성장을 보여주기 위해 4~5년을 투자한 거였죠."

우리 나라 방송국의 PD들은 유아프로그램을 한직으로 여긴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는 유아프로그램 전문 연출자가 부족하다. 현재 KBS의 「혼자서도 잘해요」의 강일파 PD만이 30년 이상 유아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강일파 PD는 6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유아 교육 프로그램의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유아 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떠나서는 제작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만들기도 어렵죠. 거기다가 반응이 눈에 띄게 오는 것도 아닌 프로그램이기에 젊은 사람들은 기피하는 편이죠. 제가 67년에 처음 유아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로 그랬습니다. '내가 안 하면 안 되겠다'라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겼죠. 그래서 정년퇴직을 한 지금까지도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18개월∼4세 유아의 눈높이에 맞춘 「꼬꼬마 텔레토비」는 30년 넘게 어린이 프로 제작에만 몰두해 온 ‘랙돌 프로덕션’ 사장 앤 우드(Anne Wood)에 의해서 탄생했다. 앤 우드는 2년 동안 영국 전역으로부터 각기 다른 사회·경제·인종적 배경을 가진 어린이들을 모아 치밀히 관찰하고 아이들의 평가를 받아 「꼬꼬마 텔레토비」를 완성했다. 영국의 유아프로그램은 이렇게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친 후에 제작된다.

박선우씨는 우리 나라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교육적 철학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영국의 BBC는 30억을 투자해서 오픈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일선에서는 스튜디오를 개방해서 돈을 벌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BBC는 거절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꿈의 동산을 환상 그 자체로 지키기 위해서였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한 겁니다."

제작자들의 상업적인 생각도 문제이지만 우리 나라의 정책도 문제다. 미국과 호주에는 각각 CTW, ACTF라고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전문 기획·제작 지원 단체가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아동학·교육학 전문가와 방송 전문가는 물론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서는 환경 전문가가 관여하기도 하는 등 모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시청자 단체의 모니터링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전문 자문위원은 특집 때 한 두 번 임시로 두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미국은 상업방송에 대해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주 3시간 의무적으로 방송하도록 한다. 호주에서는 유아프로그램과 어린이 프로그램을 연간 360시간 이상 방송하도록 하고 그 질적 수준을 호주방송 위원회가 감독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방송사의 자율적 노력이나 방송위원회의 심의를 통한 내용·표현의 규제만이 유아프로그램 정책의 전부이다. 

제대로 된 국산 유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한창(19)씨는 유아교육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면 유치하고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보려야 합니다. 유아교육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분야입니다. 영어 교육이라면서 외국인이 나와서 영어 몇 마디 하는 건 교육이 아닙니다. 적어도 유아교육에 한해서는 교육은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경직된 사고 때문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프로그램뿐인 겁니다. 즐겁게 놀면서 상상력을 키워주는, 그러면서도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꼬꼬마 텔레토비」등의 유아 프로그램의 전문 작가로 일했던 박선우씨는 우리 나라 유아 교육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독립 프로덕션의 양성을 얘기한다. "이제 시청률에 급급해서 만드는 유아 프로그램은 소용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캐릭터 자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텔레토비나 바나바나는 어린이들에게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그러한 생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기획단계가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방송국보다는 사전 기획에 오랜 시간을 들일 수 있는 독립 프로덕션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오래된 얘기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김치가 꼽혔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김치를 우리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꼽은 것을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우리의 것은 없는 외국의 정서에 맞춰서 만든 외국의 프로그램만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수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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