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경찰청 인권센터·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주제=형사사법 절차에서 성폭력 2차 피해 예방과 근절
일시=2018년 4월 11일(수) 오전 10시
장소=이화여대 법학관 405호
사회=정현미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장
발제=배복주(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토론=곽미경(대구 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김은실(이화여대 교수‧아시아여성학센터소장) 서혜진(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

▲ 민갑룡 경찰청 차장의 축사모습.

“미투 운동의 확산과정에서 분노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민갑룡 경찰청 차장은 4월 11일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주관한 인권아카데미‧세미나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실천방법을 제시했다.

범죄피해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을 용납할 수 없다는 다짐, 여성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유하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사회를 맡은 이화여대의 정현미 젠더법학연구소장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분노를 미투로 고발하더라도 2차 피해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번 세미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복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은 발제를 통해 미투 운동이 성폭력에 대한 좁은 해석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강간을 폭행과 협박을 수반하는 간음행위로 본다. 피해자로 증명받기를 요구하는 법과 제도가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강화하면서 피해자는 참거나, 잊거나,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오랜 시간 참았던 피해자가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에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이 미투 운동의 배경이라고 배 위원은 설명했다.

배 위원은 “2차 피해가 성폭력 피해를 지속하게 하고, 피해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했다. 피해자가 호소하는 2차 피해는 다음과 같다.

피해를 의심하거나 비난받음으로써 경험하는 사회적 고립,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피해를 부정당하거나 증거가 부족해 피해사실이 축소되고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무고로 역고소를 받는 사례, 인터넷을 통해 사적정보와 허위사실이 유포돼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례다.

“피해자에게 경찰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왜 이제 신고하느냐, 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느냐다.” 배 위원은 피해자에게 뭘 했는지 묻는 방식보다 가해자의 의도와 압도성에 대해 수사기관이 질문하는 방식이 실체에 접근하는 훨씬 나은 방법이라고 했다.

수사사법 절차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2차 피해가 일어난다. 참아라, 잊어라, 신고하면 너만 손해다, 거절 못한 너도 책임 있지 않느냐는 식의 말이 침묵을 강요한다는 얘기다. 이는 피해자의 삶을 흔들리게 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한다고 배 위원은 강조했다.

“2차 피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꽃뱀 프레임이다. 개인의 행실이나 의도를 묻기 전에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와 문화, 환경이 어떤지를 먼저 질문하면 왜 피해자가 늦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투 이후,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배 위원은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피해자 지원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셋째, 피해자가 국가를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유엔에서 권고한 차별금지법제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 여섯째, 보호만을 강조하거나 겁주기식 교육이 아닌 실효성 있는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토론에 나선 대구 달서경찰서의 곽미경 경감(여성·청소년수사팀장)은 수사현장에서의 잘못된 질문으로 인해 2차 피해가 많이 생긴다고 했다. 지연 신고경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 피해 당시 상황이 꼭 필요하다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잘못된 질문에 따른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경찰은 2010년 아동‧장애인 면담기법(NICHD 프로토콜)을 도입했다. 개방형 질문을 통해 경험사실에 대해 양적·질적으로 정보를 극대화하도록 만든 기법이다. 신빙성 높은 진술을 확보하는데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토콜을 활용하면 수사관 개인의 가치관이나 통념이 반영된 질문을 배제할 수 있다. 신고단계부터 프로토콜을 활용한 수사가 정착된다면 잘못된 질문에 의한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곽 경감은 피해자를 위한 진술 조력인, 진술 분석전문가, 상담원,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 등 다양한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국선전담 변호사 제도가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피해자 권리 보장과 2차 피해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제도라고 강조했다.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아시아여성학센터소장)는 성폭력 2차 피해가 남성중심의 성(性)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둘러싼 가부장적 성 규범과 남녀차별의식이 깊이 개입해있다는 말이다.

“피해여성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중심의 성 규범과 통념을 내재화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피해자가 된 상황이 자기 잘못이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정말 책임이 없는 완벽한 피해자인가를 스스로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형사사법절차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거부했는지 피해자에게 묻지 말고 피해자의 충분한 동의를 받았는지를 가해자에게 질문하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2차 피해를 완벽히 방지할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는 분명히 있다”고 얘기했다. 대표적인 방법이 피해자 변호사 제도다. 그는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에게 국선 변호사를 지원하는 이 제도의 신청건수가 전체의 6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최초 피해 진술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을 번복하거나 다른 주장을 하면 진술의 신빙성에 큰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가 최초 피해 진술을 할 때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도록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안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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