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이화여대 광장에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노란 뱃지를 단  학생 교수 교직원들은 피켓을 들어 한 목소리를 냈다. 교육환경 수호 신촌공원 되찾기 운동. 총학생회와 교수들이 결의문을 낭독한 후 이화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손에 들린 검은 띠는 끝없이 이어져 학교부터 전철역까지를 빽빽이 메웠다.

이대에서 전철역까지 인간띠 잇기

교수와 학생이 같은 뜻으로 함께 거리에 나선 이번 시위는 2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돼온 호원당 일대 부지가 그 발단이다. 이대 정문에서 전철역을 향해 200m 떨어진 위치에 있는 문제의 땅 2000여 평은 1940년대에 한 독지가가 어린이용 공원부지로 기증했다. 85년에는 서울시가 이 땅을 주택재개발지구로 고시하고 용적률을 최대 220%로 지정했다. 여기 세워질 대형 상가건물에 대한 학교와 재개발조합의 마찰은 이미 97년부터 있어왔다.

재개발 지역에 주상복합건물을 세우려는 재개발조합측 주장과 학교 앞 교육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학교측 주장은 지난 2년 간의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했다. 2000여 평의 부지를 반으로 나눠 도로 전면에는 공원을, 공원 후면에는 건물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물의 용적률이 문제가 돼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학교측은 아예 전면 공원화를 주장하게 됐다.

서대문구청은 주택재개발지구(용적률 220%)로 지정된 호원당 부지에 도심재개발(용적률 1000%)을 적용해 지하 7층 지상 23층의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현재 시에서는 주택재개발을 도심재개발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행정처리를 유보한 상태다. "학교에서 서울시와 환경부 장관, 교육부 장관 등에 보낸 결의문에 서울시에서는 공식적인 회답이 왔어요. 아직 결정된 바 없다. 건설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서대문구 도시계획위원회,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등 세 개의 위원회를 거쳐야 해요. 지금은 서울시에 면담 신청을 해놓은 상태죠(이화여대 전길자 학생처장)."

학교측은 대학생 뿐 아니라 유치원생, 초중고생들의 통학로가 되는 이대입구를 '교육친화적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길자 교수은 "교육환경에 대한 모델 케이스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마음도 있다"고 말한다. "95년도에 전국 총장 협의회에서 교육부 장관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교육환경보존법을 만들자는 건의를 했었어요. 무산되고 말았지만, 다시 건의할 생각입니다."

이대 교차로 교통서비스 F

거대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질 경우 교통 상황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도 이대역에서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일방통행 차도는 거의 정체 상태나 다름없다. 전철역 사거리인 이대 교차로에서의 지체도는 자동차 한 대당 65.3초이며 서비스 수준은 F등급을 받았다. 현재 시간당 600대의 차량이 오가는 이대 앞 거리에 용적률 1000%를 적용한 건물이 들어서면 시간당 약 300대의 증가가 예상되며, 220%의 경우에는 약 90대가 늘어난다.

학교 앞 거리를 지키기 위한 본격적인 교육환경 수호 운동은 97년 10월 이화여대 교직원 5112명이 공개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로 98년 이화여대·서대문구청 간담회, 99년 교육환경 수호를 위한 궐기대회 등으로 이어지면서 학교측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학생 5,000원, 교직원과 동문, 시민은 10,000원 등 1인 1구좌 모금운동도 꾸준히 이어져 12월 8일 현재 3,441,100원이 입금됐다.

교육환경권 vs 생존권

학교측이 주장하는 교육환경권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생존권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돈을 들여 이미 상권을 매입한 사람들은 학교측의 '부지 전면 공원화' 주장에 분노한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구청과 주민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며 서울시의 역할을 요구한다. "시에서 여의도공원도 만들고 영등포 OB 부지를 사서 공원을 만드는데, 지금 이 경우는 원래 공원부지에 공원을 만드는 거예요. 땅을 매입할 돈으로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지난 4월, 홍익대는 학교 정문 바로 옆에 세워지는 상가건물에 대한 반대 운동을 시작한지 5년 만에 '교육환경의 승리'를 거뒀다. 홍대 측은 건물 신축을 포기하고 경매에 붙여진 부지를 사들여 연구 건물을 짓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이화여대의 교육환경 수호운동도 승리의 그날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궐기대회에 참가한 한 홍익대 교수는, 홍대는 학생들이 주로 움직였는데 "이화여대는 금방 이기겠다"며 학생과 교수 교직원이 내는 한 목소리에서 희망을 읽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

그러나 교직원들의 열의에 비하면 학생들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지난 12월 선출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이지수양은 "학생회는 아직 건설준비위원회이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지는 않았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했다.

학생들의 무관심에 대해 전 교수는 "학교의 주인이 당연히 학생인 줄 알았는데, 학생은 4, 5년만 있으면 졸업하고 교직원들은 몇 십 년씩 있잖아요. 이번에 보니까 결국 교직원이 학교의 주인이더라"며 농담 섞인 아쉬움을 나타냈다. "교직원들에게는 매주 이메일을 보내서 상황을 보고해요. 학생들에게도 보내고 싶은데, 이메일 주소가 없잖아요. 이화여대 이메일 주소는 잘 안 보고." 의식있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 교수는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교육환경 수호를 위한 메일 주소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띄웠다.

교육환경보존법이 무산된 상태에서도 교육환경권을 수호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는 이들에게 반드시 '학교 이기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야만 할까. 이제 남아있는 것은 서울시의 결정이다. 학교측의 교육환경권과 주민들의 생존권을 현명하게 절충해낼 정부와 서울시의 해법이 기대된다.

조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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