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유네스코한국회원회‧경기 남양주시
후원=교육부
일시=2018년 4월 5일(목)~6일(금)
장소=그랜드워커힐 서울
발제=정순우(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박노자(오슬로대 한국학 전임교수) 데니스 홍(캘리포니아대 기계공학과 교수) 방인(경북대 철학과 교수) 홍성태(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다산 정약용의 해배 2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다산 사상으로 한국의 교육 과학 경제, 사회 등 네 가지 분야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행사 첫날인 5일에는 축하공연이 열렸다. 기조 강연은 3명이 했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다산의 정치사상: 법치(法治)와 예치(禮治)’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레이번대의 보데왼 왈라번 명예교수가 ‘다산 정약용 정신의 현대적 의의’를 주제로, 양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Korea) 대표가 ‘지속가능한 발전, 정약용에게 묻다’를 주제로 얘기했다.

▲ 정순우 교수가 다산의 교육철학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다산 국제심포지엄 사무국)

교육세션의 첫 발제는 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맡았다. 주제는 ‘근대 교육의 반성적 성찰’이었다.

근대교육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당 부분을 이끌며 밑거름을 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반성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국가건설의 기계나 자본재로 교육이 쓰이듯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한국 근대교육의 핵심을 관통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이 지점에서 다산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상실케 하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다산이 지향하므로 기존 담론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가 현재 대면한 문제를 풀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도덕적 성장이 기존 교육의 목표라면,  능력과 이상에 맞게 살도록 하는 게 오늘날 교육의 목표다. 하지만 주자학식으로 아이를 가르치면 누구도 성인이 될 수 없다고 다산은 얘기했다.

“다산은 과감하게 주자를 공격하며 지식을 쌓아 성인이 된다는 주장은 허구라고 얘기했습니다. 앎이란 무엇인가를 말한, 이치를 헤아리는 작업으로서의 격물서가 오히려 실제 세계에서는 방해가 된다는 말이죠.”
 
자신을 갈고 닦을 이치를 아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능동적 삶이 필요하다는 게 다산의 교육관이었다. 이에 따르면 역사의 아픔 속에 동참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인이다. 다산은 올바른 인간, 즉 성인의 기준은 인간의 본연적 상태에 있다고 봤다.

다산은 교육을 하나의 수단적인 가치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지식과 덕성을 아우르는 인간을 기르는데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는 말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다산의 교육관으로 오늘날 교육의 현실과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는 오슬로대의 박노자 교수였다. ‘다산 사상의 특징과 독자성 탐구’를 주제로 했다. 다산을 근대적 관점에서 바라볼 게 아니고, 당대의 맥락에서 보는 게 마땅하다는 말이다.

다산을 근대의 맹아로 여긴 이유는 그의 진보적 성향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개화기에 이르러 다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면서 당시만 해도 그를 실용적인 유학자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족주의자들이 다산을 민족주의자 반열에 편입시키고 진보적 사상가로 보려하면서 다산이라는 인물을 무리하게 근대화했다는 주장.

박 교수는 다산 사상에 대한 남북한의 차이를 설명했다. 북한은 다산의 진보성과 근대지향적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그의 사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남한에서는 독재정권 때 다산을 재조명했다. 근대 맹아로서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며 민족주의적 성향을 높게 평가했다. 남북 모두 다산을 근대와 연결했다는 점에서 같다.

다산의 진보성을 말할 때 신분제 문제를 거론한다. 하지만 다산은 노비제 존속을 얘기하는 등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박 교수는 얘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적 사고를 다산의 독자적 면모로 읽는 게 옳다고 했다.

개인의 판단, 도덕적 면모를 강조한 관점은 양명학자와 같지만, 다산은 개인을 주체화하고 나를 지키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박 교수는 이용후생, 실용철학, 개인 내면과 주체성에 집중했던 다산의 생각을 그 시대 맥락에서 볼 때 독자성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의 이튿날은 과학세션으로 시작했다. 다산 사상과 맞닿은 과학의 현재를 검토하고 과학을 대하는 다산의 자세, 한국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 과학 세션의 모습. 왼쪽부터 데니스 홍, 방인, 홍성태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데니스 홍 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로봇공학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로멜라(RoMeLa) 연구소를 이끌며 휴머노이드 로봇, 무인자동차 시스템을 연구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든 로봇을 먼저 언급했다. 발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몸을 뒤집으며 관절을 꺾어 발을 내딛는 스트라이더, 외부충격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는 찰리의 모습에서 사람이 연상된다. 로봇 축구대회인 ‘로보컵’이 2050년까지 인간과의 축구시합에서 승리하는 목표를 세웠듯이, 이러한 로봇은 사람을 지향한다.

홍 교수는 또 무인자동차를 얘기했다. 그는 학부 학생들로 팀을 꾸려 2007년 무인자동차경주대회(DARPA Urban Challenge)에서 3등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인자동차는 공상과학영화에 나왔지만 그의 도전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시각장애인협회(NFB)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대회를 개최하자 참가하기로 했다. 첫 모임에서 홍 교수는 지원자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과 대회취지를 알고 당황했다. 협회는 시각장애인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자동차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원했다.

착오로 시작한 일이지만 오기가 생겼다. 시각장애인을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하자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고 교류했다. 그리고 단순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무인자동차를 만들어서 처음 테스트하는 날은 홍 교수에게 결코 잊지 못할 하루였다. 컴퓨터 화면에 도착을 알리는 불이 켜지자 홍 교수는 그의 인생을 바꿀 미소를 봤다. 자신의 일로 누군가를 이렇게나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11년 대회에서 무인자동차 ‘브라이언’을 타고 시각장애인이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가 안내를 안고 눈물을 글썽이던 장면을 홍 교수는 똑똑히 기억한다. 이 일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가슴으로 알게 됐다.

홍 교수는 로봇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중요한 점은 로봇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학생은 실험실에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지혜를 배운다고 했다. 더 나은 변화에의 긍정, 그리고 사람. 다산의 정신과 맞닿은 홍 교수의 과학철학이다.

두 번째 발제는 경북대 방인 교수의 차례였다. 주제는 주역과 풍수 담론으로 본 다산의 토폴로지. 토폴로지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에서 나온 용어로 수학분야 중 하나인 위상기하학을 말한다. 위상은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점하는 위치, 상태를 뜻한다.

방 교수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축을 먼저 얘기했다. 인간이 두 개의 축을 엮어놓은 장에서 살아가는데 주역은 삶의 공간, 터전과 관련된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을 활용해 공간에 대한 다산의 생각, 즉 토폴로지를 읽어낼 수 있다고 방 교수는 말했다.

“주역에서는 위(位)라는 공간 개념이 중요합니다. 주역의 발상은 공간, 장소의 개념을 인간의 사회적 친분, 사회적 위치와 연계하는 데에 있죠. 고대인의 위계적 사고가 여기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방 교수는 풍수사상 근저에 자리 잡은 불합리한 주술적 사고를 다산이 비판한데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땅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고방식은 결단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다산은 봤다. 방 교수는 다산의 토폴로지를 탐구함으로써 유가적 사고의 바탕에서 명확성을 추구하며 인간 주체성을 생각한 다산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홍성태 교수가 올랐다. 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생태복지국가로의 미래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풍요가 생태위기를 초래했는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라고 홍 교수는 강조했다. 생태위기가 생겨나고 가속화되며 다시 생태위기를 촉발하는 현상으로는 지구 온난화, 환경호르몬, 미세먼지, 플라스틱, 방사능을 꼽았다.

생태위기는 위험사회를 만든다. 과학기술 위험도, 사회체계 정비도를 기준으로 위험사회를 유형화할 수 있다고 홍 교수는 주장했다. 과학기술 위험도는 핵발전을, 사회체계 정비도는 비리문제를 핵심지표로 활용한다.

그에 따르면 두 가지가 모두 높은 오늘날의 한국은 사고사회에 해당한다. 30년에 걸친 개발독재로 구조화된 비리가 만연한 국가,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국가, 세계 최악의 난개발 토건국가, 4대강 파괴 등 자연훼손 문제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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