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주제=의료현장의 인공지능
일시=2018년 3월 29일(목) 오후 7시
장소=이화여대 법학관 104호
강연=안성민 가천대 교수(의과대학)

안성민 교수가 인공지능과 의료계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시대가 됐다. AI를 특별한 분야나 기술로 생각하지 말고, 퍼스널컴퓨터나 인터넷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

AI가 일상화되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주관한 ‘의료현장의 인공지능’ 강연에서 안성민 가천대 교수가 이런 물음에 답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2016년 12월부터 IBM의 인공지능인 왓슨포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국내처음으로 암 진료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안 교수는 작년 12월 1일자 조선일보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타이틀곡을 제작한 방시혁 PD가 “앞으로 가수, 프로듀서, 작곡가의 역할은 AI가 만든 음악을 어떻게 취사선택하고, 조율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AI 시대를 맞아 무엇에 초점을 맞출지 몰랐지만 방 PD는 정확히 알았다.

안 교수는 “중요한 점은 AI 자체가 아니라 인간-기계 협업(Human-Machine Collaboration) 모델을 만드는 일”이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인간이 나은지, AI가 나은지는 부적절한 질문이며, 지금 시점에서 물어야 할 점은 AI로 인한 협업모델의 변화라는 뜻이다.

의학의 전문분야는 세분화된 지 오래다. 현대병원은 이런 전문성을 기본단위로 운영되면서 구성원이 협업하는 구조다. 안 교수는 “AI가 전문성을 확보하면 전문성에 기초한 (진료)분과의 역할이 재조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할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AI의 영역확장에 따른 우려를 의식한 듯 “AI가 개별 의사의 분야를 위협하지 않고, 전문성을 재조정하고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흐름이 현대의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이며, 특히 의학은 여러 전문분야가 협업하기에 파급력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미 상당부분 협업을 진행한 미국과 달리, 한국 의료계가 협업을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안 교수는 AI 시대에 AI와 인간의 협업모델, 즉 새로운 작업흐름을 만들어낼 연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자에게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기존의 작업흐름을 숙지하고, AI를 이해하고, 둘을 결합해 효율적인 작업흐름을 만드는 일. 결국 연구개발 생태계의 상위자는 AI 개발자가 아니라 AI와 인간의 협업을 최적화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AI를 의료현장에 도입한 경험을 설명했다. AI 도입의 가장 큰 장애는 인간 또는 기존의 작업흐름이었다. 병원은 보수적인 조직이어서 작업흐름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전자의무기록(EMR)의 전산화에 다수 의사가 반대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EMR의 단순 전산화와 달리, AI-인간 협업모델은 일률적이지 않다. 창의력과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내병원마다 작업흐름, 인력수준, 처한 상황이 다르다. 또한 AI는 기존 작업을 60~80% 정도만 대체한다.

안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잘 파악한 예로 에픽(Epic) 시스템즈를 들었다. 에픽은 EMR 분야의 세계 1위 회사. 정보기술(IT) 회사가 아니고, 의료 작업흐름을 정의해주는 회사라고 그들은 표방한다.

이렇듯 AI 개발자는 성능에만 치중하지 말고 어떠한 인간-기계 협업(Human-Machine Collaboration) 모델을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안 교수는 강조했다.

의료현장에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병원과 의사, 의사와 의사, 의사와 환자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하다. 안 교수는 “AI 자체만 보면 안 된다. 사회적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AI는 조직에 결코 이식될 수 없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어서 안 교수는 국내 AI 논의가 알고리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알고리즘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회사의 알고리즘을 빌려도 된다.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고려하면서 사용가능한 AI를 만드는 건데, 그건 안 한다.”

안 교수는 사회적 맥락의 고려가 부족했던 예로 존슨앤드존슨(J&J)의 의료용 마취로봇 ‘세더시스(Sedasys)’를 들었다. 세더시스는 등장 1년 만에 퇴출됐다. 마취과 의사를 완전 대체했기에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해서다. “회사가 사회적 맥락을 고려했다면, 소수 마취과 의사가 다수 환자를 관리하는 협업모델을 구축했다면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안 교수는 인간-기계 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했다. “인간-기계의 협업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인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AI 솔루션 자체를 개발하기보다 성공적인 협업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그로 인해 바뀐 작업흐름과 사회적 맥락을 관리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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