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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즐기는 영화를 만드는 김수정 대표
유지혜 기자 | 승인 2018.04.01 21:18

 

이수연 씨는 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의 공길(이준기)에게 반했다. 영화를 보면서 장면을 다 외웠다. 집에 와서 검색했다. ‘저는 이 대사가 인상 깊었어요.’ ‘저는 이 장면의 대사요!’

검색내용으로 대사를 정리해서 각본집을 만들었다. ‘혹시 이 대사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다행히 사소한 대화까지 질문하는 글이 많았다. 이 씨는 그렇게 만든 각본집을 통째로 외웠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작가 이수연 씨(필명 라일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미친 짓’을 했다. ‘왕의 남자’가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리어프리는 장벽이 없다는 뜻이다. 화면에 해설과 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도록 만든 영화다.

배리어프리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에는 대사뿐 아니라 ‘쓸쓸한 분위기의 기타 연주’ ‘짜르르 짜르르르~ 풀벌레소리’처럼 음악과 음향을 설명하는 자막이 화면 아래 나온다. 준우 역의 박보검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말끔하게 생긴 청년 준우가 팝콘과 음료를 들고 밝은 얼굴로 운전석에 올라탄다”는 해설이 나온다. 눈을 감아도, 소리를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일반 버전과 배리어프리 버전.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48)는 영화감독, 배우 등 전문 영화인과 함께 국내외 영화를 배리어프리버전으로 제작한다. 이런 영화를 활용해 영화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애인식 개선교육 사업도 한다.

위원회는 정기상영회를 비롯해 장애인의 날 기념 특별상영회,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상영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만6342명의 장애인과 가족이 복지관·구청·학교 등 353곳에서 위원회의 손길이 닿은 영화를 관람했다.

김 대표는 배리어프리 영화도 ‘영화를 하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단체가 배리어프리 영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면, 그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건 영화계의 일이라는 얘기다.

그는 2000년 아트선재센터의 영화팀장으로 일하면서 제1회 장애인영화제에 참여했다. “그때 평생 처음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소풍을 오신 것처럼 귤이랑 땅콩 같은 걸 싸 오셔서 영화를 즐기시더라고요.”

일본은 좀 달랐다. 김 대표는 2010년 일본 규슈에서 열린 ‘사가 배리어프리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장애인영화제를 떠올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섞여 영화를 보는 일본과의 차이를 느꼈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시작한 계기다.

김 대표는 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및 화면해설은 좁은 의미의 배리어프리라고 했다. 노안이나 난청인 노인, 영화를 빨리 이해하기 힘든 아이 등 모두를 위한 영화가 배리어프리 영화라고 했다. 배리어프리위원회의 이세종 제작PD는 “상영회에 오신 어르신 분들이 이런 영화는 처음 봤다면서 너무 재밌다고 해주셨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2018년 첫 영화는 ‘아이 캔 스피크’다. 원작의 김현석 감독이 참여했고, 배우 엄지원이 화면해설을 맡았다. 엄 씨는 “배리어프리영화를 통해 좀 더 많은 분이 영화로 기쁨과 위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

위원회는 매년 11월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연다. 지난해(제7회)에는 나흘간 30편을 상영했는데 관객 3000여 명이 찾았다. 김 대표는 “영화를 접하기 힘든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문화공유가 어렵기 때문에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화는 문화예술 분야별 관람률 1위(73.3%)를 차지했다. 2014년(65.8%)에 비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1월 8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영화 관람객은 9524만 명이지만, 장애인 관람객은 4만3750명(0.04%)에 그쳤다.

시각장애인 김준형 씨(25)는 목소리로 영화를 골랐다. 목소리를 아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적어도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액션이나 스릴러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관을 나오기도 했다. 주인공의 동작이나 화면에 잠깐 등장하는 단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대사가 많은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봤어요. 친구를 만나든, 연인을 만나든, 명절에 친척을 만나든 영화가 가장 함께하기 좋은 문화생활이잖아요.”

그는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지 못했다. CGV 장애인 영화관람데이에서 배리어프리 ‘택시운전사’가 매진됐기 때문이다. “화요일, 목요일은 회사 때문에 안 되고, 토요일도 아침 일찍이라 가기 힘들지만, 꼭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대기해야 한다고 했어요.” 집 근처에 영화관이 있지만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려면 1시간 넘게 걸리는 구로점이나 강변점을 찾아야 한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도 비슷하다.

김 씨는 시청각장애인이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청구소송에 참여했다. 2017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영화관은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 해설·자막·보청기기를 제공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영화관 사업자들이 항소하면서 2심을 기다리게 됐다.

한국에서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별도 기기가 필요 없는 ‘개방형’으로 상영한다.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이 동시에 나오는 방식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관람하기 어려운 이유다. 장애 유형별로도 필요한 부분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관람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나온 게 ‘폐쇄형’ 장비다. 특수 안경을 쓴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자막을 따로 내보내거나 송수신기를 통해 이어폰을 꽂은 사람에게만 화면 해설을 들려주는 식이다.

이미 폐쇄형 상영방식이 정착된 나라가 있다. 미국 내 1위 극장인 리갈 엔터테인먼트는 자사 영화관의 80%에 해당하는 6000여 개 상영관에 소니가 개발한 특수 안경을 도입했다. 안경을 쓰면 렌즈에 자막이 뜬다. 화면해설이 필요한 사람은 헤드셋을 받아 입장한다.
 
호주의 4대 영화관에서는 ‘캡티뷰(Captiview)’를 사용한다. 좌석에 달린 컵 받침에 꽂고 눈높이에 맞게 길이를 조정한 뒤, 해당 상영관으로 채널을 맞추면 된다. 캡티뷰에 자막과 효과음, 배경음악 설명이 뜬다. 화면 주위를 가리개가 감싸 다른 관객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김희민 씨(22)는 폐쇄형 시스템을 이용해 4편을 봤다. 평소에는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 대신 외국영화를 보는데, 모바일 폐쇄형 시스템으로는 한국영화도 자막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김 씨는 “배리어프리 영화와 폐쇄형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시청각장애인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편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호주와 미국, 유럽 등 배리어프리 선진국과 한국은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문화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몇 명이 보는지, 제작에는 얼마가 드는지 하는 수익 관점으로 접근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청각장애인은 27만 명, 시각장애인은 25만 명을 넘었다. 지난해 노인인구(65세 이상)는 14%를 넘었다. 노인의 40% 정도가 난청을 겪는 중이다. 김 대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을 위해서도 더 많이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고, 지방 상영을 늘려 모두에게 문화적으로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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