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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가 아니라 변호사입니다
이도윤 기자 | 승인 2018.04.01 21:18

 

최수진 씨(45)는 2009년 7월, 일본여행 경비를 지원하는 이벤트에 당첨됐다. 난생 처음 이벤트에 당첨돼 무척 설렜다. 그러나 배스킨라빈스의 대응은 예상밖이었다. 이벤트 내용을 축소해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최 씨를 블랙 컨수머로 몰아갔다.

“저희가 한두 번 이런 이벤트를 한 게 아닌데요.” “이런 식으로 하시면 저희 팀장님이랑 얘기하실 수밖에 없어요!” 적반하장에 최 씨는 분노했고, 소송을 결심했고, 승소했다. 2011년과 2016년에는 KT와 스타벅스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최수진 변호사의 얘기다.
 
그가 소속된 법무법인 ‘혜승’을 찾아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사무실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최 변호사가 나왔다.

▲ 법무법인 ‘혜승’의 회의실에서 만난 최수진 변호사.

최 변호사는 ‘대기업 스나이퍼(저격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정작 그는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한다. “사람이 누구나 허물이 많잖아요. 저도 허물 많고 결함도 있는데 의롭고 훌륭하다고 포장돼서 그런 부분은 제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황송하다고 해야 하나.”

배스킨라빈스 소송이 보도된 뒤, 다음 아고라에 작성했던 게시글(일명 배스킨라빈스의 굴욕의 최수진 변호사입니다)에서 그는 “저를 아주 정의롭다고 봐 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고위직 출신에게 고용된 초년 변호사 시절에는 대기업을 변호하고 자문에 응했다. “업무 지시가 내려온 사건은 당연히 다 해야 하니까 다 했었죠.”

변호사 직업윤리로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점을 꼽았다. 최 변호사는 2012년부터 형사사건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을 맡고 있다. “변호사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사무실 운영도 해야 하고 직원 급여도 줘야 하고. 그게 기본인 거죠.”

그는 국선변호사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피고인의 환경과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5분 가까이 말했다. 이날 답변 중 가장 길었다. 다른 질문에는 간결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답했지만, 이때는 목소리가 커졌고 말이 빨라졌다.

“집도, 잘 곳도, 일자리도 없는 열악한 분이 많아요. 죗값을 받아도 전과가 있고 배운 것은 없는데 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겠죠. 악순환인 거예요. 그러면 국선변호사 외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대충 하고 넘긴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2017년 우수 국선변호인 5명으로 선정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그와 관련한 인터넷 게시글에는 ‘정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굴렁*)’, ‘세상을 바꾼 대한민국의 영웅이다(L_o***)’와 같은 댓글이 많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자신이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대부분의 불의에 참고 산다고 했다.

“사회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걸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시정할 능력도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불의를 거의 다 참는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보통 그렇지 않나요?”

최 변호사를 20년 넘게 지켜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대학동기이면서 법무법인을 함께 운영하는 정선아 변호사(45)는 깔끔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 변호사가 입버릇처럼 자신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신념과 현실이 충돌할 때 생기는 내적갈등 때문일 거라고 말했다.

“(최수진 변호사가)아직 순수한 것 같아요. 처음 법조인의 길을 걸으려고 생각했을 때의 이상이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는 수익이 유지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고민을 하니까 본인을 낮게 생각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나중에 선택하는 기준은 늘 본인 가치관을 따라 가더라고요. 그래서 큰돈은 못 벌죠.”

이들이 운영하는 법무법인은 직원이 5인 미만이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자고 정 변호사에게 건의했다. 덕분에 직원 전민 씨(31)는 근무 첫해부터 연차휴가를 썼다.

그런 전 씨에게 최 변호사는 “카리스마 있는 분”이다. 한 번은 전 씨가 사건 송치번호를 문의했는데, 경찰관이 어려운 법 조항을 나열하며 부당하게 거절했다. 이를 알게 된 최 변호사는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며 반박했다고 한다. “변호사님은 말하시는 것만 보아도 시원시원하고 힘이 있으시죠. 대신 화나면 정말 무서우세요.”

최 변호사는 자신이 일상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는 거시적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데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제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불합리한 일들,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따지고 지적하긴 하는데.”

자신이 변호하면서 꼭 지키는 원칙으로는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변호사들이 거짓말로 가득 찬 준비서면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최 변호사는 정도를 간다. 이 때문에 의뢰인이 항의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배스킨라빈스 소송 뒤 “이번 일로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중략) 상대가 골리앗일지라도 세상에는 옳고 바름을 존중하는 수많은 다윗이 있기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라고 아고라에 썼다.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에서 최 변호사는 ‘굳이’라는 단어를 네 번 사용했다. 그는 굳이 부당한 현실을 못 본 체 넘기지 않았고, 굳이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 중심에는 변호사 직업윤리가 있었다. ‘대기업 스나이퍼’가 아니라 ‘변호사 최수진’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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