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어눌한 한국어가 또렷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는 시와 작가, 심지어는 출판인까지 시와 관련된 모든 점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태평양을 건너와 20년 간 열정을 바칠 만큼 한국 시가 재밌다”(네이버, 열정에 기름 붓기, 2017년 3월 10일)고 말하는 사람. 서강대에서 국제한국학을 가르치는 웨인 드 프레메리(Wayne de Fremery) 교수를 2월 27일 만났다.
 
그는 시의 물성(物性)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연구한다. 내용뿐 아니라, 시를 만들고, 출판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원본은 무엇인지, 서체는 어땠는지, 종이 위에 쓰였는지, 노래로 불렸는지, 어떤 과정으로 출판되었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보면 ‘나보기가 역겨워’에서 행 바꿈이 생긴다. 행의 띄어쓰기 같은 것은 물질적인 측면이지만, 이것들이 변하면 시의 내용도 변화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구관점은 ‘원본 진달내꽃 진달내ㅅ곳 서지 연구’에 잘 담겨있다.

▲ 조형물에 대해 설명하는 프레메리 교수. (출처: 서강대 홈페이지)

그는 우연한 기회로 한국시와 인연을 맺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평택에서 1년을 일했다. 그가 기억하는 한국시와의 첫 만남이다.

미국에 돌아가서는 “죽기 전에 한국어로 시 한편 정도는 읽어보자”(조선일보, 2017년 4월 15일)는 마음으로 한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재미시인 강옥구를 만났다. “함께 한국시를 하나씩 번역하면서 한국의 시를 더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강옥구 시인은 프레메리 교수를 UC 버클리대에 방문교수이던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소개했다. 이런 인연으로 서울대에서 한국학 석사를 딸 수 있었다. 이후에는 하버드대 동아시아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시 공부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한국 사람처럼 정말 시를 다 이해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윤동주나 이상의 시를 읽을 때 한국인의 민족적 정서 같은 부분은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는 이를 단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한국 시를 이해하는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도움이 돼요. 시는 한쪽으로만 열린 창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시를 좀 더 다양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그는 김소월의 시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하늘의 천(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과 상당부분 닮았다고 했다. 그가 가르치는 ‘Korean Literature’ 강의는 이런 장점을 담았다.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면서 시뿐만 아니라 여러 한국문학 작품을 한국인의 시각과 외국인의 시각에서 해석한다.

그는 수업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으로 한국 학생들이 시에 흥미가 없다는 점을 꼽았다. “아무래도 한국은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시를 배우다보니 학생들이 흥미를 잃게 된 것 된 같아요.” 시를 제대로 알기 이전에 이미 어렵고 재미없는 것으로 인식해버린 탓이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한국 시를 색다르게 읽을지, 어떻게 흥미를 되찾게 할 지를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잘 드러나는 작업이 3D 모델링 기술이다. 시를 입력하면 3D 프린터가 3차원 조형물을 인쇄하는 기술이다.

“컴퓨터에서 글자는 모두 코드로 이뤄져 있어요. 코드를 3D 프린터의 소프트웨어에 입력하면, 조형물을 인쇄하는 거예요.” 대표적인 사례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인쇄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조형물이다. 학생들은 이걸 보면서 시의 원작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고 한다.
 

▲ 3D 프린팅으로 인쇄한 조형물. (출처: 프레메리 교수의 홈페이지)

덕분에 작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익을 위해 머신 러닝, AI 등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클라우드 포 굿(Cloud for good)의 지원 대상 9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병수 연구원은 논문에서 “프레메리 교수는 창의적인 연구방법과 열정으로 본받을만하다”고 밝혔다.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박지연 학생은 “한국학생도 잘 모르는 김소월 시집의 초판은 뭔지, 어떻게 전래됐는지까지 다 아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채연 학생은 “한국 시를 정말 사랑한다는 게 수업에서 느껴질 정도다. 평소에도 김소월 시를 술술 읊곤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프레메리 교수는 김소월 뿐 아니라 서정주, 이상 등 좋아하는 작가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한국에 좋은 시인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 김소월은 토속적인 민율이나 음율, 리듬을 가장 잘 활용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프레메리 교수는 올해 1월 미국의 대학에서 시조쓰기 워크샵을 열었다. 한국시조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한국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틈틈이 한다. 4년 전에는 최정례 시인의 작품 번역에 참여했다.

그는 요즘 고문서와 책이 수북이 쌓인 연구실과 3D 프린터실을 번갈아가며 머문다. 한국시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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