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교 중간에서 내려주세요.” 이 말을 듣고 택시기사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는 기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절대 못 내려준다”고 했다. 2월 6일 서울 마포대교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기자는 ‘SOS생명의전화’를 취재하기 위해 마포대교에 갔다. 낮 최고기온이 영하3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탔지만 기사는 내려주지 않았다. 대신 기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고민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취업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취재목적이라고 설명했지만 택시기사 김동화 씨(57)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리 중간에 절대 안내려줍니다. 누구 말을 어떻게 믿어요. 내려주더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내려줄 겁니다.” 그는 다리를 건너고 나서야 멈췄다. 결국 기자는 여의도 쪽에서 걸어 마포대교에 도착했다.

‘비밀, 있어요?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서 꾹꾹 담아온 얘기. 가슴 아파서 혹은 쪽팔려서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 얘기 시원하게 한 번 얘기해 봐요. 여기 옆에 전화기 있잖아요. 당신의 얘기 잘 들어줄 거예요. 자, 한번 해봐요.’

다리 난간에 적힌 문구를 따라가자 생명의전화가 나왔다. 흰 바탕에 초록색.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이 전화기 너머엔 누가 있을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 SOS생명의 전화는 서울시 관할의 19개 한강교량에 설치됐다.

두 사람이 서있기만 해도 꽉 차는 공간. 한 평이 안 되는 생명의전화 상담부스에는 모니터와 전화기, 그리고 전화를 기다리는 봉사원이 있다. 생명의전화는 한강교랑 위의 SOS생명의전화와 일반 상담전화(1588-9191)로 구분된다.

SOS생명의전화는 2001년 7월 개통됐다. 행주대교부터 광진교까지 19개의 한강교량에 설치됐다. 전화기는 47개. 봉사원 21명이 돌아가며 전화를 받는다.
 
봉사자 김경희 씨(52)는 기자를 만난 1월 31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SOS생명의전화를 기다렸다. 6년 전부터 하루 4시간, 1주일에 2~3회라고 했다. “친구 따라 좋은 일 해보려고 왔어요. 전화를 받다보니 사회에 힘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됐죠. 학생전화도 많아서 내 아이도 이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SOS생명의전화를 찾는 사람의 연령은 다양하다. 눈에 띄는 연령대는 10대와 20대다. 2011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20~29세가 1865건, 고등학생 연령이 1748건, 불명이 1122건이다. 상담내용도 대인관계(1677건)와 지로학업(1557건) 고민이 인생(1048건)  및 가족(880)건을 앞섰다.
 
김 씨는 고등학생의 전화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었요.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폭발할 것 같아서 왔다고, 부모님도 형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뛰어내리긴 너무 어둡고 무섭고 춥다고. 죽을 용기도 없어서 전화를 들었다고···.”

이야기를 모두 듣고 119에 학생을 인계해 자살시도를 막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부모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학생의 전화는 계속된다고 했다.

▲ 봉사원 김경희 씨가 가장 최근 걸려온 SOS생명의전화 위치를 표시하는 모습.

 봉사원은 벨이 3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아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낸 ‘용기’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신호가 세 번을 넘어가면 전화를 든 사람이 이것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봉사원은 전화를 받으면 “네, 생명의전화입니다.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인사말에 울음을 터트린다.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난간에 기댄 경우는 특히 그렇다. 봉사원은 “울지 마세요”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실컷 울며 감정을 표출하도록 기다린다.

전화기를 붙잡고 힘든 상황을 풀어놓으면 희망을 되찾기도 한다. 봉사원이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김 씨도 “다음에 잘 되면 또 전화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던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새벽 4시에 어렵고 답답한 상황을 풀어놓은 분이 계셨어요.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힘든 감정을 털어놓고 나니 ‘아 그건 몰랐는데, 못해봤는데’라고 하시더군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셨나 봐요. 한강이 너무 예쁘다고, 잘 되면 또 전화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던 그 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자기 자신을 놓고 그 사람 옆에 서는 일. 김 씨가 상담 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다. 부스에 들어서는 순간, 김 씨는 자신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전화를 건 사람의 옆에 서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는 일이 상담봉사원을 힘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허상이 아닌 괴로워하는 사람을 직접 맞닥뜨렸기 때문에 많이 아프고 속상하다. 집에 가더라도 그 끝이 남아 무언가 계속 해주고 싶을 경우가 종종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에 여러 신호를 보낸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도움을 찾는 울음(A cry for help)’이라고 표현했다. “포기하고 싶다, 끝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주변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과 같아요. 내 손을 좀 잡아달라는 신호입니다.”

▲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정신적 119역할을 생명의전화가 한다고 말했다.

생명의전화는 양가감정, 즉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는 상태의 사람을 붙잡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자살시도자는 양가감정을 겪는데, 전화를 통해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SOS생명의전화가 설치된 후에 위기상담전화는 6497건, 119출동건수는 1077건에 이른다. 소방재난본부 구조대책팀이 집계한 한강교량별 자살시도자 현황에 따르면 SOS생명의전화가 설치되면서 사망자가 △2010년 87명 △2011년 95명 △2012년 65명 △2013년 11명으로 줄었다.

김 씨는 지금까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화를 받을 때 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대상자가 눈앞에 있으면 꼭 안아주고 싶어요. 얘기하면서 진정되는 느낌을 받았을 땐 ‘내가 작게나마 힘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뿌듯함 때문에 계속 전화기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생명의전화 봉사원은 지금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아주는 중이다. 일반 상담전화(1588-9191)는 전국 18개 도시, 19개 상담센터에서 운영된다. 2000명이 하루 3시간 30분씩 돌아가며 전화를 받는다. 하루 평균 58건, 개통 후 102만 9833건이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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