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최선열 교수

세계의 언론들은 20세기의 가장 큰 성과를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우주탐험이나, 생명과학, 정보통신 기술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학도인 필자는 자유와 평등의 신장이야말로 지난 세기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라고 본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다름 아닌 자유와 평등에서 앞서 간 나라들인 것이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우리 사회도 자유와 평등 측면에서 크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군인 가산점 위헌 판결이 마지막 1주일 동안 우리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면 자유와 평등을 향한 우리사회의 여정은 아직도  험하고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제대군인 가산점 폐지에 대한 남성들의 격렬한 반발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70만 재향군인회가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판결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라고 "천명"하는 것이나 국방부가 "장병의 사기저하와 국민의 병역의무 이행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정황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 행해지는 도를 넘어선 비방과 욕설,  비겁한 협박, 해킹과 같은 폭력은 우리 군의 존엄성과 자부심에 손상을 줄 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제대군인이 누구인가? 바로 그들에게 주어져왔던 가산점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아버지요, 오빠요, 동생이요, 또한 남편이나 애인일 수도 있다. 또한 평등을 부르짖는 그 여성들은 누구란 말인가? 제대군인들의 딸이요, 누나요, 누이 동생이고, 아내이고 애인일 수 있다. 어차피 쌍방은 싸워서 물리쳐야 할 상대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갈등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성대결이며, 칼로 물 베기 싸움인 것이다.

격노하고 있는 남성들은 자신이 성별권한척도가 세계 78위인 후진국 시민임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성평등이 이미 세계인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는데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유와 평등은 이미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다. 칼을 뽑아 보았자 그 물결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12월 29일 조선일보에 실린 소설가 김영하 씨의 "병역, 성대결 문제 아니다"라는 의견에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남성인 그가  병역의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문제로 보고 "우리 조금 우아해지자.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군필) 가진 자의 특권이며 의무다"라고 주장한 것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영하 씨와 마찬가지로 나는 사이버 폭력으로 분을 삭이고 있는 남성들에게  가진 자의 자긍심과 우아함을 보여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번 일에 대해 "군대 가는 사람만 바보"라든가 "군대가지 말자"는 등 이 문제를 병역기피와 연결시키는 남성들에게, 나는 군대경험이 진실로 그들에게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했는가 묻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누리고 있는 혜택이나 특권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다. 군복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물론 다양하지만 대체로 그것이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군필자들은 그들의 군경험을 인생과 사회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로 인식하며 어려운 과정을 해냈다는 자신감과 국가를 위해 일정기간 자신을 바쳤다는 자부심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우리 사회가 제대군인들을 "뭔가 해낸 사람들", "뭔가를 아는 사람들"로 인정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인정과 배려야말로 제대군인 가산점과 같은 명백한 혜택보다 더 의미있는 중요한  혜택임을 남성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군대에 갈 수 없었던 남자들, 치사하게 기피했던 남자들이 일평생 갖고 있는 소외감과 자격지심을 재대 군인들은 "가진 자"의 입장에서 헤아려 주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기업체 구인광고에는 "병역필"이라는 자격조항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은 아예 원서도 내지 못하고 분을 삭여야 했다. 요즘에 와서는 그런 노골적인 성차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인터뷰나 인턴쉽 과정에서 여성들은 군대생활을 한 남성들과 흔히 비교되면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여성들의 상대적 박탈감 또한 "가진 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군을 남성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전통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복무에 대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왔다는 것이다. 첨단 정보통신 장비와 고도로 전산화된 무기의 개발로 세계 각국은 군인력은 줄이되 고급화시키는 군사전략을 택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간호영역 이외에 전산, 정보, 상담, 교육, 경영, 홍보 등 다양한 후방 지원분야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신병훈련소 교관들이 상당수 여군들이며, 이들이 남성교관들보다  훨씬 더 좋은 교육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보다 많은 여성들이 우리 군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현재와 같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징집제도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안보상황에서 현재의 징집제도를 지원제도로 바꾸는 문제는 아직 논의할 시점이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에 대한 군 지원제도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 사관학교들이 여성에 대해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우리 군은 여성들에게 너무 굳게 닫혀있다.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우수한 여학생들이 날로 증가하는 것을 보더라도 군을 바람직한 전문직업으로 보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OTC와 같은 제도가 여성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여성의 군복무 기회확대는 군필자에 대한 적합한 보상책 마련과 함께  이 세기말의 성대결을 생산적 갈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win-win작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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