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인천국제공항 제2 여객터미널 G게이트 앞. 공항 카트 위의 커다란 케이지 2개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대형견 두 마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애견택시 운전사 이종수 씨(58)는 케이지에 물통과 밥그릇을 고정시켰다.

일을 마칠 무렵 여성 한 명이 다가왔다. “혹시 제가 늦은 건 아니죠? 이동봉사하기로 했던 정혜연입니다.” 정혜연 씨(28)는 이 씨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케이지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어머. 얘네들이구나. 되게 순하네요.” 활짝 웃는 정 씨의 마음을 읽었는지 케이지 안의 써니(셰퍼드)가 창틀 사이로 정 씨 손가락을 연신 핥았다.
 
유기견인 써니와 쿠키(진돗개 잡종)는 국내 입양자를 찾지 못해 미국의 동물구조단체에 입양이 결정됐다. 정 씨는 로스앤젤레스까지 이동할 때 두 대형견을 맡아줄 봉사자다. 평소 즐겨보던 블로그에서 이런 봉사활동이 있다는 걸 알고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 씨가 서류를 펼치며 알아둬야 할 점을 설명하자 정 씨는 기대와 우려 섞인 얼굴로 듣기 시작했다.
 

▲ 애견택시 운전사 이종수 씨의 차량 안에 있는 써니(왼쪽)와 쿠키(오른쪽).

고아 수출국에서 유기견 수출국으로
써니가 발견된 건 작년 8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동물보호단체 ‘생명공감’ 보호소 주변이었다. 생명공감 강경미 대표는 써니가 학대당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방치된 채 키워지던 아이였어요. 밥그릇에 구더기가 끓고 있을 정도였죠.”

생명공감은 당시 상황을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구더기와 개의 털 뭉치, 쥐의 사체가 한데 엉켜 있었다. 강 대표는 현장을 확인한 뒤에 세 달 넘게 주인을 설득, 결국 20만 원을 건네고 데려왔다. 써니는 품종견(셰퍼드)이라 국내입양 문의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키울 사람이 없어 미국 구호단체에게 입양이 결정됐다.
     
해외로 입양되는 개는 써니만이 아니다. 과거 고아 수출국이라 불렸던 한국은 이제 유기견 수출국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작년 한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 간 개는 8300마리다. 같은 기간 2713마리가 한국으로 들어온 점과 비교해보면 5600여 마리가 더 많이 간 셈이다 대부분은 미국으로 입양 간 유기견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생명공감에서 구조한 1000여 마리의 유기견 중 250마리가 해외로 입양됐다. 중·대형견이 주를 이룬다. 생명공감 회원 김정은 씨는 “국내에서는 5kg이 넘지 않는 강아지만 입양이 잘 돼요. 외국에서는 10kg 정도여도 소형견으로 보는 경향이 많지만 한국은 중·대형견으로 인식하곤 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물보호단체인 ‘용인시동물보호협회’도 작년에 발견된 유기견 1000여 마리 중 250여 마리를 해외로 입양 보냈다. 해외입양 업무를 담당하는 하연지 씨는 “한국에서 입양이 힘든 아이들이기 때문에 대형견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좋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입양 보내죠”라고 말했다.

협회는 최근 ‘백구 19마리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중이다. 작년 12월까지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지 못한 대형견 19마리를 미국과 캐나다로 보내려 한다. 이들 중에는 1년 넘게 가족을 찾지 못한 개도 많다. 해외입양은 국내에서 외면 받은 개를 위한 마지막 선택지다.

대형견을 외국으로 보내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개는 사람과 함께 기내에 타거나 개별 화물로 보내진다. 대형견은 모두 힘들다. 항공사 규정상 기내에는 케이지 무게를 합쳐 7kg까지의 개만 들어갈 수 있고, 개별 화물로 보낼 경우 100만 원이 넘는 운송비를 내야 한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들은 해외입양이 결정된 대형견이 생기면 정혜연 씨와 같은 봉사자를 구한다. 여행객의 위탁수하물로 보내기 위해서다. 한 마리당 20만~60만 원에 보낼 수 있다. 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한국에 머무는 개도 있다. ‘백구 19마리 프로젝트’에서도 19마리 중 10마리의 입양처가 확정됐지만 아직 국내에 머무는 중이다.

지금은 어렵게나마 해외 입양처를 찾아 보내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보안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강경미 대표는 “검역 문제도 있고 하니까 외국에서도 좋아하지 않아요. 미국에선 한국에서 수입된 개들이 너무 많다며 이제 허가증을 받도록 해요”라고 어려움을 말했다.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형견의 해외입양이 추진되는 이유는 국내 입양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은 소형견에 대한 선호도가 유난히 높다. 서울시 동물보호과의 박해령 주무관은 주거 환경을 이유로 지적했다. “아무래도 대형견을 키우려면 마당 같은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주로 아파트에서 키워야 하니까 소형견을 선호하죠.”

대형견은 입양이 힘들다는 인식이 크다 보니 일부 지자체는 의무 보호기간이 지나면 안락사 시키기도 한다. 용인시동물보호협회 김이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유기견이 보호소에 들어오면 입양자를 구할 시간이 10일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아요. 대형 유기견은 거의 안락사 된다고 봐야 하죠. 경제적인 이유를 들지만 장례비와 안락사비를 생각하면 무조건 죽인다고 이득은 아니에요.”

김 대표 등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으로 용인시는 유기견을 10일 만에 안락사 시키던 관행을 없앴다. 생명공감 강경미 대표는 대형견의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골에서는 떠돌이 개들의 새끼가 계속 태어나요. 정부가 대형견의 중성화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해요. 길 고양이 중성화 작업(TNR 사업)에 나서는 것처럼 개 역시 그런 노력이 필요해요.”

대형견의 국내입양을 늘리려는 노력과 함께 입양절차가 더 까다로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에서 입양되는 대형견 중 개 농장으로 팔려가는 개가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동물보호 활동가 윤정민 씨는 2017년 화성의 동물병원에서 최소 5마리 이상의 대형견을 한 사람에게 입양시킨 사례를 발견했다.

윤 씨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개의 특징에 분명 ‘매우 사나움’, ‘병듦’이라고 적힌 대형견이 입양됐다는 거 자체가 이상했죠. 그것도 한 사람한테요. 입양했다는 곳에 직접 가보니 좁은 비닐하우스 철창 속에 28마리의 개가 목줄에 묶여 있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지자체 공무원까지 현장에 불렀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두 달 뒤 다시 찾은 곳엔 15마리만 남았고, 3일 뒤에는 전부 사라졌다. 윤  씨는 “주인은 모두 도둑맞았다며 저보고 훔쳐 간 게 아니냐고 반문했어요. 이런 식으로 입양된 개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인천공항 검역소 앞에서 이종수 씨가 케이지 안을 정리하기 위해 써니를 잠시 꺼내놓았을 때다. “오~ 저건 진짜 비싸겠다.” 지나가던 남성이 써니를 보고는 같이 걷던 사람에게 말했다. 이 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게 현실이에요. 개를 보고 예쁘다, 잘생겼다고 말하기보다 가격부터 말하잖아요. 이런 걸 보면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봐야겠죠.”

이 씨는 한숨을 쉬고는 비행기 안에서 혹시 춥기라도 할까 개 목도리를 써니에게 둘러줬다. 그렇게 검역소를 나오고 3시간 뒤, ‘비싸 보이는 개’ 써니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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