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잔디밭.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운데 네 명의 남자가 개구쟁이 같은 눈을 반짝이며 뒤집힌 드럼통을 신나게 두드리고 있다.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던 신선한 음악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그들의 연주는 계속된다. 드럼통을 두드리고 손바닥으로 리듬을 맞추며 그들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바로 창작 타악 그룹 푸리이다. 신명나는 두드림과 깊게 퍼지는 타악기의 울림. 이 두 가지는 푸리의 음악을 설명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푸리는 원일, 민영치, 김웅식, 장재효 네 명으로 구성된 창작 타악 그룹이다. 그들의 음악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신선함과 독특함을 특성으로 한다. 5박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리듬을 구사하는「셋,둘(1집)」, 꽹과리 네 대로 연주하는「채놀이(1집)」등 푸리의 음악은 이제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한다. "제가 하나의 컨셉을 던져주면 멤버들이 제각기 어떻게 연주할 지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나온 이야기들을 접목시켜서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거죠."

그들의 음악에는 다양한 리듬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리듬을 창조하기 위해 다양한 악기가 등장한다.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인 공스튜디오에는 우리나라 북, 장고에서부터 드럼, 하와이언 우드블럭 그리고 심지어 드럼통까지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모든 악기들이 있다. 이곳이 푸리의 창조의 산실이다.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푸리이지만 그들의 새로움의 바탕에는 항상 전통이 있다. 멤버 네 명이 모두 국악을 해 온 사람들인 만큼 그들의 마음에는 국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다. 때문에 사물놀이나 무속음악 같은 우리의 전통이 그들의 음악에 농축되어 나타난다.

지난 4월 푸리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과 전통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첫 앨범을 내놓았다. 새로운 곡으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하기 위한 욕심에 그들은 앨범을 내기 전 서울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합숙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의 합숙은 며칠 안 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저만 빼고 다들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 아내를 많이 보고 싶어하더라구요. 결국 합숙시작한지 며칠 안 되서 보고 싶다고 집에 전화를 하더라구요." 푸리의 리더 원일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 때의 일을 얘기했다.

푸리가 첫 번째 앨범에서 담아낸 화두는 '이동'이다. 이동은 푸리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그 중 하나는 전통과의 앙상블을 이룬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의 '이동'이다. 음악보다는 말이 많은 토크 콘서트나 재미만을 추구하여 연극적인 해프닝을 보여주는 데만 급급한 요즘 콘서트의 경향에서 확실히 이동하는 것이다.

"푸리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해프닝을 벌이는 상황연출을 하는 콘서트를 지양합니다. 푸리는 음악을 하는 팀이니까요. 연극적인 요소가 중심이 아닌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주가 되는 것이 푸리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동의 의미는 세계로의 이동이다. 푸리는 국내 공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해외공연도 하고 있다. 일본에는 푸리의 공연을 전담해서 기획, 홍보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까지 있을 정도. 푸리는 이미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이미 투어를 끝낸 상태다.

마지막으로 푸리의 이동은 젊음으로의 이동이다.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푸리는 패닉, N.EX.T 등의 대중가수들과 함께 앨범작업을 하기도 했다. 또한 공연 때는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상황 연출도 한다. 때문에 푸리의 공연에는 대다수의 관객이 젊은이들이다.  

"푸리의 공연을 보고 「난타」공연을 주관한 곳에서 저희한테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거절했죠. 저희는 음악적으로 푸리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바랍니다.「난타」같은 해프닝 연출은 음악에 소홀하게 되고 대중가수들과의 작업은 푸리가 단순한 사물놀이팀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 온 푸리. 그들은 이제 '21C한국 음악의 미래'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푸리는 그리 쉽게 탄생한 그룹은 아니었다.

푸리가 처음 만들어 진 것은 93년이었다. 그 당시의 멤버는 지금의 멤버는 아니었다. 초창기 멤버 중에 남아있는 사람은 리더인 원일 뿐. 원일의 동료들이었던 그들은 각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푸리를 떠났다. 그러다가 지금의 멤버로 만들어진 것은 95년이었다. 푸리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온지 2년만에 제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당시 원일은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민영치는 일본에서 여명이라는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서, 장재효는 타악기 세션으로, 김웅식은 산조 연주가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립고등학교 선배인 원일은 그들을 부른다. 각자의 길에서 아직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 보고싶다는 욕심은 그들을 푸리라는 이름으로 뭉치게 한다. 맺힌 것을 푼다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푸리. 그들은 '푸리'라는 이름처럼 신명나는 두드림으로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푸리는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좀 더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하고 싶을 때 모이는 거죠." 지금도 푸리의 네 명은 그 동안 해왔던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 원일은 박기형 감독의 새영화 「비밀」의 영화음악을, 민영치는 일본에서 꾸준한 활동을, 장재효와 김웅식도 푸리 외에 각각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푸리의 음악에서는 신선함, 젊음, 그리고 힘이 넘친다. 단순한 두드림이 아닌 전통과의 앙상블을 통한 두드림,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악기를 통한 다양한 음악의 시도. 푸리의 음악에는 그들만의 색깔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들의 신명나는 두드림과 새로운 음악은 우리 마음속에 맺혔던 것들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진정한 '푸리'의 역할을 한다.

조수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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