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세대가 지금은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구름밖에 없는 시골 하늘 아래 서 있다. 이 구름 아래로, 파괴와 폭발의 싸움터에, 조그맣고 여린 인간의 육체가 있다(발터 벤야민)."

책을 통해 만난 그에게서 불현듯 멕시코의 사빠띠스따가 생각난다. 말을 타고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농민해방전사들. 그들이 추구하는 '자연의 정치'는 김종철 교수(영남대 영문학)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어버린 그가, 그의 사상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평론집<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내놓았다.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에 이어 99년에 내놓은 두 번째 평론집이다.

김종철은 우리에게 그 이름보다도 <녹색평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김종철'이라고 하면 누군지 잘 몰라도 '녹색평론'이라고 말하면 그제서야 '아하, 그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실제로 녹색평론은 김종철 선생과 다르지 않다.

위에서 인용한 발터 벤야민의 말은 김종철 선생의 출발선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구름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과학 기술, 파괴라는 이름이 인류에게 선사한 '공포와 권태'를 넘어 너와 내가 형제고, 자연과 내가 하나인 세상을 위해 그는 뛰고 있다.

때로 인간들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고, 도시를 벗어나 만난 시골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면서부터 갖게 된 숙명적 업보다. 그 밑바닥에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가 있다. 김종철 교수에 의하면 원시시대의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란 지금과 다른 것이었다. 시애틀 추장의 그 유명한 연설처럼, 원시인들에게 자연과 인간은 형제였다. 따라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은 죽음을 정당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건 산업 문화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물질주의적 가치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것들, 사회적 성공, 명예, 이런 것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죽음은 단순히 두렵고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대상이 될 뿐입니다. 사람이 성숙하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 中)"

김종철 교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생명파괴, 생태계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생물학적 의미의 생태계 이상이다. 제임스 러브로크가 말한 '가이아(Gaia,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는 김종철 선생이 생각하는 자연과 같다. 자연은 그 구성원들이 모여 만든 생명체라는 말이다. 산업화 이후 욕망의 지배는 가이아의 죽음을 가져왔고, 인간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다. 

"감수성의 대전환"

그는 91년 <녹생평론>을 창간한 뒤로 한국 지성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인물이 됐다. 그가 말하는 '공동체적 삶'이나 환경에 대한 진보적 사상에 있어서 그렇다. 그는 자연을 찬양하지만,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자연에 대한 신비주의보다는 조화된 삶과 사회적 자연을 이야기한다. 그는 산업사회의 물질적 삶을 깨부수고, 사악한 욕망에 의해 경쟁하는 삶을 고치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행동가다.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는 김종철을 "신념의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녹색평론>이후의 김종철 교수를 말한다면, 그는 평론의 이론가가 아니다. 현실 속에 확실한 자리를 가지고 있는 확신의 인간이다." 그러나 김종철 교수는 확신에 차 있지만 위험하지 않다. 대부분의 확신가가 물질세계에 대한 지배의지를 가졌다면 김종철 교수는 비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확인'만을 할뿐이다.

김종철 교수의 사상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느껴봤다면, 혹은 쓰레기 재활용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김종철 교수의 말이 자신의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자신이 물질문명의 추종자이고, 기계론적 우주관을 따르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가 말하는 "감수성의 대전환"은 현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수진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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