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를 나와 걸었다. 3분 정도 걷다보니 빌딩 숲 사이 위치한 허름한 녹색 건물이 보였다. 주위의 고층 건물이 더 눈에 들어왔다. 17층짜리 국민연금 사옥이 바로 옆.

8차선 도로를 낀 맞은편에는 동아일보 사옥이, 옆에는 16층짜리 통유리건물인 풍산빌딩이 서있었다. 그 뒤로 드문드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유독 낮은 층수의 녹색 건물은 마치 외딴 섬 같았다.

외벽의 빛이 바랬고, 많이 벗겨졌다. 시멘트벽이 패여 철골이 드러나는 곳도 있었다. 오른쪽 외벽으로 난 철제계단은 반쯤 떨어져나가 현재 골격만 남아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충정아파트다.

▲ 도심 속 충정아파트의 모습

충정아파트는 1937년 일본인 도요타가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서울 시내에서 몇 안 되는 고층 건물이었다. 손에 꼽히던 건물이 낡고 허름한 건물이 되기까지의 긴 시간동안 충정아파트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건물이 6.25도 견뎠는데, 그때 유엔군이 호텔로 이 건물을 사용했어요.” 1층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장안호 씨가 말했다. 그는 이 근방에서만 40년을 살았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5층이 다른 층과 다른 듯했다. 다른 층은 창문이 9개씩인데, 5층만 한 줄 더 붙어있다. 알고 보니 5층은 나중에 생겼다. 때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대통령이 6.25전쟁 때 여섯 아들을 모두 잃었다는 김병조라는 사람에게 이 건물을 무상으로 불하(拂下)했다.

그가 5층에 가건물을 설치하고 ‘코리아 관광호텔’로 이용하면서 24년 만에 위층이 새로 생겨났다. 하지만 김병조가 사기꾼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건물이 다시 몰수됐다. 그 후 국세청 소유가 됐다가 주민들이 협상을 벌여 5년 상환 조건으로 소유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는 47세대가 산다.
 

▲ 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충정아파트(좌측 녹색건물)

 2월 4일, 다시 찾은 아파트 안은 어둡고 축축했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많아 빛이 잘 들지 않았다. 건물 가운데 삼각형의 중정이 있는 구조였다. 중정을 가로질러 어지러이 전선줄이 오간다. 가운데로 중앙난방을 했던 흔적이라는 큰 굴뚝이 세워져있다.

눈을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좁은 건물에 중앙계단과 비상계단 외에 별도의 계단이 혹처럼 붙어 있었다. 복도 역시 한 개가 아니라 두 줄로 갈라진다. 그 곳에 냉장고, 세탁기, 자전거 등 가재도구가 가득했다. 화장실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미로 같았다.

복잡한 내부구조에도 사연이 있다. “1979년에 8차선으로 도로를 확장하면서 건물 앞면을 잘라버렸어요.” 장 씨가 말했다. 당시 도로 쪽에 살던 22평짜리 세대는 한순간에 7평으로 좁아지는 일을 겪었다. 그들은 좁아진 집을 대신할 공간으로 집 앞의 계단과 복도를 택했다. 가재도구가 복도로 나온 이유다. 그래도 사람이 다녀야하니 다른 주민들이 이중으로 복도와 계단을 만들게 됐다.

▲충정아파트 내부. 계단이 좌우 2개다.

80살의 할아버지 아파트는 이제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노후문제로 인해 물건이 낙하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을 정도다. 서울시는 2008년, 이 곳을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재개발 지역이 으레 그렇듯, 떠나야 하는 세입자와 새 집을 얻고 싶은 집주인, 또 더 많은 보상을 바라는 세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10년 째 지지부진하다. “5층 세입자들이 토지 소유권이 없다고 보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나쁜 사람들이야.” 장 씨가 덧붙였다.
 
건물의 독특한 구조와 건물이 굳세게 버티어낸 역사 덕에 충정아파트를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예컨대 2013년도에 충정아파트는 서울 미래유산 후보군에 올랐다. 도심 속,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역사적 의미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미래유산 지정을 담당하는 문화정책팀의 구민수 주무관에 따르면 주민들의 반대로 유산 지정에 실패했다.

이곳의 실거주민 대부분은 집세가 싸서 입주했다. 이들에게는 문화유산지정도, 재건축 논의도 심지어는 외부인의 방문도 모두 성가신 일인 듯 했다. 이곳에 세 들어 산다는 주민은 “재건축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으니 부동산에 가든지 조합사무실에 가든지 하라”고 말했다. 다른 세입자의 반응도 똑같았다.

아파트 입구에는 ‘외부인 무단출입 및 사진 촬영 금지’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다. 대한민국 1호 아파트라고 알려지면서 알음알음 출사를 하러오거나 탐방처럼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과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충정아파트를 방문했었다는 A 씨는 “촬영당시 주민의 신고로 경찰까지 출동한 적이 있다. 미래유산인지 뭔지 왜 선정해서 사람을 더 힘들게 하냐고 주민이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04호에서 지물포사를 운영하는 봉창규 씨는 주민심정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이 좋아서 사는 게 원만하다면 모르지만, 원만하지도 못한데 누가 사는 걸 노출 시키고 싶겠냐”라면서 “가난을 드러내는 건데 저 사람들도 자존심이 있다”고 말했다.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충정아파트를 네 차례 찾았다. 기자에게 충정아파트는 ‘응달’같았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도 인기척이 적었다. 화려한 건물들과 달리 빛이 희미했다. 퇴근 무렵이 되자, 국민연금 건물에서 넥타이를 맨 직원들이 걸어 나왔다. 그 중 몇몇이 충정아파트를 지나쳐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맞은 편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사람들로 복작였다. 충정아파트에만 드나드는 이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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