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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⑦ 종로구 낙원동
김재현 기자 | 승인 2018.02.23 01:36

 

1월 31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할아버지 수십 명이 지하철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1번 출구 탑골공원 방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닮아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지팡이를 짚고, 표정 없이 뚜벅뚜벅 걷는 모습. 같은 곳을 향했지만 모두 ‘혼자’였다.

종로 3가역, 탑골공원, 낙원동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일대는 고독과 소외의 공간이다. 수많은 노년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경제 활동에 전념하는 평일 낮, 그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래픽 디자이너 오근재는 이곳을 ‘퇴적공간’이라 명명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잉여적 존재가 된 이들이 하구의 삼각주처럼 퇴적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이다.

탑골공원에는 할아버지 여럿이 모여 있었다.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인근 패스트푸드점 안에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혹은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혼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그들은 창밖을 보거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기자가 말을 걸자 “머리 식히러 왔다” “바람 쐬러 나왔다”고 말하고는 저리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한 명이 교류하는 사람은 자녀 3.4명, 형제자매 2.7명, 가까운 친인척 1.1명이었고, 친한 친구나 이웃은 1.6명에 불과했다. 은퇴 후 사라지는 대인 관계는 외로움을 낳는다. 가정이 있어도 적적해서 공원을 찾는 노인들도 많다.

고독과 소외 속에는 빈곤도 자리한다. 1월 28일 찾은 탑골공원 옆 골목(낙원동 뒷골목)은 빈곤의 모습을 드러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는 낮 12시부터 점심 식사가 시작되는데, 할아버지들이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선다. 무료급식소를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장근식 씨는 “집은 가락동인데 여기 복지관(급식소)에서 밥을 줘서 왔다”고 했다. 여기서 친구를 사귀시냐는 질문에 “나는 능력이 없으니까, 능력이 있어야 사귀지 안 그래?”라고 대답했다.

골목길의 물가는 저렴했다. 선짓국 한 그릇을 2000원에, 막걸리와 소주 한 컵을 1000원에 파는 ‘잔술집’과, 3500원에 이발을 할 수 있는 이발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200원에 파는 미니 자판기도 놓여 있었다.

공원 담벼락 앞에는 바지 한 벌을 1500원에 파는 노점이 있었다. 천 원 한 장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사서 마시는 할아버지, 차가운 바닥에서 막걸리 몇 병으로 술판을 벌인 할아버지들도 보였다. 골목 한 귀퉁이의 폐지 수거장에는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들이 들락거렸다.

▲ 탑골공원 뒷골목, 무료급식소(뒤편 노란색 건물)와 이발소, 잔술집이 있다.

골목길에서 10m 정도 걸어 나와 ‘송해길’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씨의 이름을 딴 길이다. 낙원동 일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 식당, 호프집, 라이브 카페, 노래방이 즐비했다. 청년층이 찾는 번화가보다 세련된 느낌은 덜했지만 활기가 느껴졌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음식이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건물과 벽 몇 개를 바로 맞대고 있는 뒷골목보다 가격대가 높았다.

1월 31일과 2월 6일 밤 찾은 송해길. 추운 날씨였지만 삼삼오오 놀러 나온 노년층들로 붐볐다.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는 노년 커플이 걸어 다녔다. 저마다 점잖게, 혹은 옛 유행에 맞게 화려하게 꾸민 모양새였다. 장발 머리를 뒤로 묶고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은 할머니들도 보였다.

한 할머니는 “요새는 어딜 가나 젊은 사람들만 있다. 여기는 노인이 많으니 끼리끼리 모인다. 우리 아들은 저기(익선동) 가서 노는데 (나는) 여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이민재 씨는 “낙원동은 인사동에 비해 실속이 있는 곳”이라며 “작은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얘기하는 낭만이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호프집 먹고갈래 지고갈래는 오후 시간대였음에도 노년층 손님으로 북적였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공연이 펼쳐졌다. 임동수 사장은 “종로는 어른들이 예전에 많이 다니던 공간이라, 인천이나 의정부 등지에서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어르신뷰티살롱은 여성 전용으로 열었지만 메이크업 수요가 낮아 찻집을 겸해 운영 중이었다. 정효정 대표는 “어르신들은 아끼는 데 익숙해 본인에게 잘 투자하지 않는다”면서도 “연령대가 60대로 낮아질수록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는 추세가 보인다. 남성분인데 눈썹 정리 해 달라거나 화장품을 써 보고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송해길에 있는 호프집, 오후 시간대임에도 노년층으로 붐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2017년 10월 한국인의 행복수명이 74.6세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행복수명은 건강, 경제, 활동, 관계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계량화한 지표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독일(77.6세), 미국(76.6세), 영국(76.6세), 일본(75.3세)과 비교하면 한국인의 행복수명이 가장 짧았다. 특히 활동수명과 관계수명이 5개국 중 가장 낮았다. 건강수명과 경제수명도 4번째로 하위에 속했다.

작은 경계는 대조적인 풍경을 갈랐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 사회 역시 노년층에게 ‘같지만 다른 공간’일지 모른다. 노년층의 고독과 빈곤의 공간은 줄어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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