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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⑤ 돈의문 박물관마을
이도윤 기자 | 승인 2018.02.23 01:29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는 병원, 관공서, 신문사, 은행 등 웅장한 건물들로 빼곡하다. 버스 경음기 소리를 뒤로하고 경찰박물관 옆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아까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골목길이 가로 세로로 얽히어 있는 이곳엔 식당 4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잡초과 이끼, 식당주인들이 가꾸어 놓은 화분들로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회색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낡은 시멘트 담 너머로 보이는 유리창은 세월이 입김을 불어 놓은 양 뿌옇다. 버선코 모양의 처마와 녹갈색 기와들이 덧니처럼 덧대져 있는 감색 기와지붕을 한 한옥들이 근대식 가옥과 뒤섞여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식당들의 나무 대문이 활짝 열리고, 양복 재킷을 어깨에 들쳐 맨 무리가 줄을 선다. 조선 시대 때 사대문 안 주거 공간이었던 곳이 60년 넘은 먹자골목으로 바뀌기까지, 오랜 세월 이곳을 스쳐 간 온갖 삶의 소리가 윙윙대며 골목을 울린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신문로 2가 먹자골목의 과거 풍경이다.

세월에 시커멓게 무뎌진 나무 처마를 드리운 한옥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하얗게 덧칠된 시멘트벽 위에 노란빛을 띠는 나무로 만든 처마가 쭉쭉 뻗어 있는 신식 한옥이 서 있다. 수십 년에 걸쳐 개량돼 골목의 근현대사를 켜켜이 쌓아두었던 한옥 식당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골목의 역사를 온전히 담은 건, 몇몇 대문과 벽돌로 된 아치, 그리고 명패 정도다.

대문 너머로 보이는 ‘보존’된 근대식 가옥은 40년 전이 아닌 4개월 전에 지은 듯이 외벽과 페인트칠이 깨끗하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의 촬영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준다. 공사 소음이 과거 골목을 가득 메웠던 사람 소리를 대신한다. 재개발이라는 해일이 빠르게 덮친 옛 신문로 2가 먹자골목에 들어선 돈의문 박물관마을의 모습이다.

박물관마을은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먹자골목에 있던 조선시대 한옥과 근현대 건물 등 68개 동을 개조해 총 43개 동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건축박물관·전시공간·유스호스텔·식당·공방 등으로 메울 예정이다.

2014년 1월에 사업이 계획됐고, 2016년 6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완전한 준공은 2019년 12월 예정이지만, 2017년 8월 22일에 43개 동 중에서 39개 동이 들어섰다. 서울시가 이곳에서 제1회 서울건축비엔날레를 개최함으로써 첫 선을 보였다.

박물관마을 사업이 전개된 양상은 미로 같았던 먹자골목만큼이나 복잡하다. 원래 이곳은 돈의문 뉴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에서 근린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곳이었다. 서울시는 2014년 1월, 이곳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보존, 개조해 박물관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경희궁자이 아파트 등 고층아파트 건설을 허용해주는 대신, 조합으로부터 부지를 기부채납 받았다.

서울시와 종로구, 조합이 먹자골목을 두고 핑퐁게임을 벌이는 동안 희생된 건 골목을 지키던 상인들이었다.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점포의 상인이 퇴거당했다. 먹자골목에서 10년간 장사를 했던 김권택(49) 씨는 “거기서 40년, 50년 있었던 분들은 실향민 된 거지.”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장사를 했던 상인이 많았던 만큼, 그들에게 먹자골목은 자부심이자 지켜야 할 곳이었다. “개량된 지붕이 낡아서 비가 새도 그거 훼손 안 하려고 천막으로 막고 장사하고 그랬어.” 김 씨가 말했다.

박물관마을은 2019년 12월까지 시범영업 형식으로 운영된다. 아무리 시범운영이라지만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박물관마을이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건 박물관마을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겉모습이 완전하게 보존된 여관, 리모델링을 거친 근대식 가옥, 아예 신축된 한옥 등 보존, 보수, 신축된 각기 다른 건물이 한 공간에 혼재해 있음에도 지도나 안내문이 없었다. 박물관마을 내 지도는 피난 대피도 뿐이었다.

▲박물관마을 내 근대식 가옥 보수 공사 현장 너머로 신축된 한옥들이 보인다.

박물관마을에서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곳은 단연 신식 한옥이 밀집한 곳이다. 원래 있던 한옥은 전부 철거되고 기단석 등 일부 자재만 쓰였다. 재개발 전에 이 자리에서 삼계탕 식당을 운영했던 권금순 씨(63)는 “보존해야 할 곳은 엎어버리고 안 해도 되는 곳을 보존해 놨다. 그럴 거면 차라리 수리를 해서 원래 있던 사람들 장사하게 해 주지”라고 말했다.
 
보수와 철거를 가른 기준에 대해 박물관마을 조성을 총괄하는 이광백 주무관은 “단열, 내구성, 내진 등 안전에 있어서 현행 규정상 문제가 있는 곳은 보강했다”고 말했다. 건물의 보존 가치와 관련한 기준도 따로 없었다고 했다. 건물의 역사·문화적인 의미가 아닌, 건축 법규가 철거냐 보존이냐를 결정지었다는 소리다. 서울시가 박물관마을 내 건물에 유스호스텔, 공방, 식당 등 상업 공간을 입주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외형과 의미뿐 아니라 기능까지 모호한 모습이다.

토착민이 나가면 마을은 ‘인형의 집’이 된다.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그때뿐, 공간을 둘러싼 특수한 서사와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기억은 사라진다. 방향성 없는 재개발과 이름뿐인 재생사업은 이따금 관광객 너덧 명이 한 번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이 아닌 인형이 사는 장소를 만든다. 박물관 마을에는 334억여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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