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무술의 달인?'

얼굴살이 하나도 없고 앙상할 정도로 마른, 170 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체구의 남자. 그래서 '이 사람이 무술의 달인?' 이라는 의구심이 솟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어지러운 머리를 수습하지 못한 채 먼저 척척 앞서가는 그의 뒤를 바쁜 걸음으로 좇아가는데 갑자기 옆 골목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돌진해 온다. 그의 시선은 반대 방향에 머물러 있는데. '아, 치이는구나' 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 질끈 감기는 내 눈이 무색하게 그는 이미 한 발 뒤로 멈춰서 있었다. 어느 새 오토바이를 봤을까. 그의 민첩함과 재빠른 발걸음에 속으로 확신에 찬 미소를 머금었다. '빙고!'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마주 앉은 류시호(30)씨. 그는 속이 꽉 차 보였다. 생각해 보니 권법 소년 용소야도 우람한 체격에 떡 벌어진 어깨는 아니다. 근육질은 아니지만 건실해 보이는 몸이 용소야와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만화책을 들기 시작한 어린 독자들을 매료시켰던 선하면서도 강한 눈빛이 있다. 그의 작은 키와 용소야의 크지 않은 몸집이  꼭 맞아떨어지는 묘한 일치, 문득 용소야의 고향 일본에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용소야'는 80년대 일본을 휩쓸었던 무협 만화. 소년 용소야가 대림사에서 나와 여러 적들과 싸우며 점차 자신의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그린 극화의 일종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90년대 초 '용소야'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가 최근 '권법소년 친미' 라는 이름으로 재출간 됐다. 용소야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발간된 해적판 '용호야' 도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만화방이 아니고서는 추억의 '용소야'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를 통해 어린 시절의 작은 영웅이었던 용소야를 회상해 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

외유내강의 무술

류시호. 경희 대학교 대학원 스포츠 의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또 그는 지난 11월부터는 경희대가 원주에 설립한 한산림 문화 센터에서 태극권을 가르치고 있다. 안양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번은 학교, 두 번은 원주로 왕래하느라 일주일 내내 분주하다. 여기까지가 바쁘지만 평범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다. 게다가 주말에는 짬을 내 무술 학원 원장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경력이 있다. 대한 기도회 합기도 공인 4단, 특공 무술 공인 4단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택견과 수벽치기도 사범 과정을 수료했다. 인간 문화재 김용 선생으로부터 우리 나라의 전통 무술춤인 처용무도 학습했다. 중국에서는 6년 동안 배운 태극권으로 중국 무술 협회 북경시 진가 태극권 협회에서 주관한 전통권 부문에서 1995년 3위, 1997년에는 1위로 입상했다. 이듬해에는 전통검 부분에서 1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외국인인 그가 중국의 전통 무술 부분에서 1위를 했다니 그의 무술 실력이 속빈 강정은 아닌가 보다.

광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가게 됐다. "제가 강해야만 읍내 아이들로부터 시골 친구들을 보호할 수 있었어요." 으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그 역시 싸움을 잘 하고 싶었고 강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세 번 있는 체육 시간에 하는 운동으로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별다른 기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술이었다. 그는 무술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부터 체육관에서 사범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재능이 있었기 때문. 이때까지만 해도 무술은 취미였다. 그러나 재수 시절 광주에 있는 도장에서 관장 생활을 하던 중 무술에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이때 김일양 스승님을 만났다. 아직까지도 정신적 지주인 스승님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무술과 함께 동양 철학 사상을 공부했다. 그리고 1993년 청운의 꿈을 고이 품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외국인으로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그는 3차례의 화려한 수상 경력을 않고 올 2월 귀국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이요? 물론 힘들었죠. 중국 대성권의 3대 왕한민 선생님의 경우에는 제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개월을 방문하여 겨우 입문 제자가 됐어요. 입문 제자, 즉 도제가 되는 것을 '투기'라고 하는데, 제가 도제식을 할 때는 외국인을 제자로 맞는 것이 못마땅한지 다른 제자들의 반대가 대단했어요. 물론 지금은 모두 한가족 같은 사형들이지만요."

"만화 속 무술들은 과대 포장되어 그려진 경우가 많아요."

무협 만화, 특히 용소야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영화나 만화에서의 중국 우슈는 화려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동작을 만드는 것으로 변질됐어요. 진정한 무술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죠. 황비홍의 이연걸이나 조문탁의 우슈가 그런 류에 속해요. 실재로 소림사의 무술이나 태극권과 같은 전통권에 모양새가 아름답거나 현란한 동작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간단한 동작들로 이뤄져 있어 멋있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동작들이 더 어렵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죠."

용소야가 터득하는 통배권. 자기의 몸보다 다섯 배는 더 큰 항아리의 정면을 강타하여 앞면에는 아무런 흔적 없이 뒷면에 큰 일격을 가하는 권법이다. 그리고 일명 사마귀권으로도 불리는 당랑권. 만화에서만 나오는 듯한 권법들이 실제로도 있는지 궁금했다. "있어요. 그러나 현실과 달리 과대 포장되기 마련이죠." 만화 주인공들은 나뭇잎 한 장을 밟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는 예사고 심지어 손끝에서 무엇인가 발사되기도 한다. 이런 무공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평생을 연마한 고수들도 하기 힘들다.

보통 진정한 고수들은 한 가지 무공만을 정해서 평생동안 연마한다. 일생을 바쳐도 그 무공을 완전히 터득하기는 힘들다. 만화에서처럼 한 가지 무공을 익히고 또 다른 무공을 배우거나 책 한 권으로 그 무공을 깨닫는 사람은 현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무공에 두루 통달한 고수도 존재할 수 없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복수를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죠?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불가능해요. 무술이 늘기 위해서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남을 살생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는 무공을 쌓을 수가 없어요. 무술을 연마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명상 공부예요." 말하는 그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내년에는 서울에 도장을 하나 가지고 싶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평생 희망사항은 청학동에 들어가서 유기 농사를 지으며 일 년에 한두 번씩 중국에 있는 스승님을 뵙는 것이다. "그래도 황비홍을 제일 재미있게 봤어요. 굉장히 멋지던데요." 마지막 한마디에 겸손한 미소를 담는 그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작은 영웅 용소야가 스친다. 

장혜린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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