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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④ 성북동 북정마을
양한주 기자 | 승인 2018.02.23 01:28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성북동 외교관 사택단지를 경계 짓는 경사 너머로 북정마을이 있다. 북정마을에 가까워질 때쯤 성북03번 마을버스에서는 “경사가 가파르니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버스에 가만히 서 있기도 버거운 언덕을 오르면 ‘북정 카페’라는 간판을 건 파란색 벽의 낡은 한옥 건물 앞에 도착한다. 사람이 많을 땐 파전을 팔기도 했다는 북정 카페는 며칠 내내 자물쇠로 문이 잠겨있었다. 주택 열 채 중 여섯 채는 노후 주택이고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달동네 북정마을. 조용한 마을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곳은 노인정뿐이었다.
 
마을 초입의 한마음 사랑방도 그 중 하나다. 2월 1일 오후 4시 한마음 사랑방에서 할머니 6명이 전기장판 위에 모여 사과를 깎아 먹었다. 허술하게 붙여 곳곳이 크게 운 흰색 벽지를 노란색 박스 테이프가 지탱했다. 이곳에 50년째 산다는 김종순 씨(70)는 “조용한 동네지만 일 년에 꼭 두어 번은 행사가 있어 북적북적해진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1년 사이 북정마을에서 열린 행사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5건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행사가 일회성인 데다 근본적인 마을 정비보다는 곁가지를 지원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개발과 보존 사이, 북정마을은 지자체의 각종 사업에 이름만 올린 채 방치되고 있었다.

▲2월1일 한마음 사랑방에서 있는 김종순씨(왼쪽)와 박정순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헐거운 벽지가 박스테이프로 고정돼있다.

김 씨의 말처럼 북정마을에는 크고 작은 행사가 꾸준히 열렸다. 2016년 7~12월에 서울시가 빈곤마을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사회공헌사업 ‘따뜻한 북정마을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시는 지자체로부터 10곳을 추천 받은 뒤 그 중 한 곳인 북정마을을 대상지로 선정했다. 그리고 기업과 협력해 지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로 언론에 네이버 뉴스에 검색된 사업 관련 기사만 50건이 넘었다.

서울시는 조선시대에 메주를 쑤던 북정마을의 특성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20억 원 예산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콩된장 체험장을 기획했다. 그러나 건립이 무산되면서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사업을 진행한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이민규 과장은 “재개발로 불안정한 상황이라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그 정도 예산을 들여 체험장을 지을 기업을 찾지 못해서 무산됐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많은 예산이 배정된 벽지 도배, 보일러 설치 등 주거 지원 분야도 66% 수준으로 줄었다. 대신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드는 생필품과 의료 지원이 늘었다. 규모는 줄었지만 참여 기업은 늘어났다. 참여 기업의 홍보 기사도 수십 건이었다. 그러나 서울시 보도 자료 제목처럼 낙후된 북정마을을 ‘변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 LED 등을 3개 설치해줬는데 1년도 못 가서 하나가 고장나버렸어. 이왕 해주는 거 튼튼한 걸 해주면 좋을 텐데.” 김씨의 말에 다른 할머니가 “우리 집 것도 고장이 났다”며 맞장구를 쳤다. LED 등에 대해 잘 모르는 노령의 주민들은 고장 난 등을 고치지 못한 채 다시 예전의 전구로 바꿔 끼워야 했다.

▲북정마을 골목의 빈 집. 마당에 있는 부서진 장독대와 화분 위에 눈이 쌓여있다.

주민들이 북정마을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거 건물의 노후화다. 낙후된 상황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방향으로 비좁은 골목을 내려가다 보면 반쯤 부서진 빈 집이 보인다. 마당에는 장독대 두 개와 화분 세 개가 깨진 채 눈에 파묻혀 있다.

근처의 다른 집은 지붕이 무너져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건너편에는 눈 때문에 입구가 막힌 녹슨 철문이 있다. 사회공헌사업 때 밝은 연두색으로 칠해 깨끗한 담벼락이 낡은 철문과 부조화를 이뤘다. 현재 국토교통부 GIS건물통합정보에는 북정마을 건물 200여 채 중 101채의 정보가 등록돼있는데, 1채를 제외하면 모두 2000년 이전에 지어졌다.
 
지지부진한 재개발 논의는 낙후된 북정마을의 정비를 막는 걸림돌이다. 약 10년 전부터 재개발 논의가 나왔지만 주민갈등과 성곽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2015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전면 개발이 무산됐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듯 북정마을의 어느 집 마당에는 ‘OOO-OO 토지는 사유지로 어떠한 개발, 보상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꽂혀있었다. 그러나 북정노인정에서 만난 성북제2구역 재개발비상대책위원회 이병관 위원장은 “여기는 달동네지만 청와대와 붙어 있는 특수지역”이라며 “개발하지 말자는 건 주민들 욕심이다”고 말했다.

▲북정마을의 한 집에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팻말을 집 앞 마당에 꽂아두고 있다.

도시계획위원회는 일부는 전면 개발하되 나머지 절반은 보존과 재생을 동반한 수복형 개발을 추진하라고 했지만, 구체적 계획은 전무한 상황이다. 서울시 주거사업과 장길홍 주무관은 “북정마을은 땅만 있고 건물은 없는 등 필지별로 상황이 달라서 조사가 필요하다. 다만 재개발 안이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확정돼야 구체적인 정비 계획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재개발 안은 성북구에서 서울시로도 넘어가지 않은 상태다.

주민들은 이런 상황에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북정마을에는 무허가 집에 변상금을 내고 사는 주민이 많아 불안과 답답함이 더 크다. “무허가여도 세금 다 내고 살았는데, 10년째 재개발이 말만 많으니까 내 집 깨끗하게 하지도 못하고 있어. 고쳐놓고 살만 한데 나가라고 하면 안 되니까.” 50년 넘게 북정마을에서 살아온 박정순 씨(80)의 말이다.
 
정체된 논의와 일회성의 보여주기식 지원의 반복 사이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박 씨는 “여긴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40년, 50년째 사는 노인네들”이라며 “어디로 옮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사과를 더 먹고 가라는 할머니들의 권유를 뒤로 한 채 사랑방을 나섰다. 좁은 골목은 제설작업의 손길이 닿지 않아 군데군데 얼어있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을 쳤다. 같은 길을 한 할아버지가 담배를 문 채 세 걸음에 한 번 쉬어가며 오르고 있었다. 골목의 끝은 전혀 다른 세상인 성북동 부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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