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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곳 ③ 종로구 창신동
조해영 기자 | 승인 2018.02.23 01:26

 

1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647번지 일대 봉제골목은 한산했다.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작은 봉제가게에서 ‘드르륵’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이 흘러나와 골목을 채웠다. 찾는 사람 하나 없는 골목 곳곳 빳빳한 새 간판이 눈에 띄었다.

회색빛 낡은 콘크리트 건물 위에 깔끔한 글자체로 봉제가게의 이름을 적어놓은 간판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봉제골목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는 안내판도 보였다. 1996년부터 23년째 창신동에 산다는 송정헌 씨(52)는 “겉은 깨끗한 것 같아도 안을 열어보면 똑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곳에 봉제박물관을 짓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창신‧숭인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다. 지난해 12월 완공이 목표였지만 공사가 지연됐다. 1월 31일 오후 1시경, 이곳으로 향하는 공사차량은 647번지 일대 작은 사거리에서 봉제자재를 나르는 오토바이들과 인근 창신골목시장에 고기를 납품하는 트럭과 엉켜 혼잡함만 더했다. 송 씨는 “여기는 접근성이 안 좋아 사람이 찾아오기도 힘든데 왜 여기다가 지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창신골목시장이 끝나고 봉제골목이 시작되는 사거리. 공사차량과 납품차량과 오토바이 등으로 혼잡한 모습이다.

비슷한 공사장은 마을 중턱에도 있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앵커시설’이라는 이름의 주민 커뮤니티 센터가,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당고개공원 일대엔 ‘어린이 놀이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당고개공원 건너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영일 씨(78)는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지역주민은 바라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김 씨는 1980년대에 상경해 창신동으로 이주한 지 30년이 넘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데 다 헛소리여. 재생지구 사업 끝나 부렀지. 바람만 피워논 거여, 박원순(시장)이가.” 김 씨의 말이다. 그는 공사 소음 때문에 생활마저 불편하다며 서랍에서 주황색 귀마개를 꺼내 보여줬다.

▲마을 중턱에 있는 앵커시설 건립공사 현장

도시재생 사업의 기본 목표는 주거환경 재생, 봉제 재생, 관광자원화 등 세 가지였다. 서울도시재생포털(https://uri.seoul.go.kr)에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211억 원이 투자된 것으로 안내돼 있다. 서울시 주거재생과 주거재생계획팀 소석영 주무관은 “포털엔 그렇게 돼 있지만 200억 원 정도가 투자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공사는 올해 7~8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200억 원을 들인 사업이 2014년부터 이어지는 중이지만 사업 자체를 모르는 주민도 있다. 1월 31일 오후 청암교회 앞 벤치에서 만난 이모 씨(75)는 “재생사업이 뭐냐”고 말했다. 30여 년간 창신동에서 살았다는 다른 주민은 “여기 뭐 와서 사진 찍고 하는 게 그거네. 노래자랑 하길래 가서 손뼉치고 휴지 하나 타가지고 왔어”라고 말했다.

이들이 앉은 벤치 뒤로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지역 선정을 위해 주민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라고 적힌 도시재생 사업 관련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내용으로 보아 2014년 5월 이전에 붙은 것으로 보였다. 홍보물을 가리키며 사업을 잘 모르냐고 한 번 더 물었지만 “젊은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시 주거재생과 주거재생계획팀 소석영 주무관은 “홍보를 위해 소식지 부수를 10,000부까지 늘리는 등 노력했지만 그래도 관심이 없는 분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대화를 나눴던 교회 앞 벤치 뒤로 ‘도시재생 선도지역 선정을 위해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는 홍보물(빨간 동그라미 안 참고)이 붙어 있다.

“꼭 홍보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의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에서 마주친 신국현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장은 여전히 사업을 잘 모르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답답함을 드러냈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역시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창신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예술가 백남준을 기념하는 장소다.

신 이사장은 “시에선 무수히 많이 홍보를 하고 있을 텐데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종화 창신1동 공간기획단 대표는 “원래부터 새마을부녀회라든지 그런 것에 참여를 하던 사람들이 주로 재생사업 관련 주민 활동에 참여한다”며 “원래는 관심이 없다가 재생사업을 하면서 관심이 생긴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신 이사장과 이 대표를 만난 1월 31일 점심시간대의 백남준기념관 역시 인적이 드물었다. 기자가 머물렀던 1시간여 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백남준기념관과 백남준카페가 있는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 전경.

창신동의 왼쪽 경계는 동대문 성곽공원이다. 창신‧숭인 지역은 서민이 모여 사는 ‘한양 밖 첫 동네’였던 셈이다. 서울도시재생포털은 이 일대를 가리켜 ‘조선시대부터 다수의 자연취락이 존재’했고 ‘한국전쟁 이후 1차적 주거공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서민의 모습을 그려냈던 화가 박수근도 1952년부터 11년간 창신동에서 살았다. 종로구는 창신동과 숭인동을 가르는 지봉로 일부 구간엔 ‘박수근길’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하지만 정작 지봉로에서 만난 상인들은 박수근길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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