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제 7차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DEW는 6회에 걸쳐 국어, 윤리, 영어 교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짚어왔다. 입시 제도의 변화는 문제집, 출판사, 사설학원뿐만 아니라 학교 내 수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새 천년을 앞두고 입시제도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건국 이래 55년 동안 10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 동안 교육의 기준과 이념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등학교 입시제도의 변천을 통해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얼마나 자주 바뀌었나요? 

1) 명문 고등학교의 탄생-학교관리제(1945~1950)
개별 고등학교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필답고사와 중학교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이 때에 서울고, 경기고, 이화여고, 숙명여고, 경기여고 등 명문이라고 일컬어 졌던 학교들이 등장한다. 좁은 고등학교 입학의 문은 입시 경쟁을 과열시켰고 중학교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절름발이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2) 국가 시험 한 번에 학교 시험 한 번-국가연합고시제(1951~1953)
6.25 전쟁으로 인해 학생, 교원들 거주지의 유동성과 전시의 혼란함 때문에 이전의 학교 관리제는 시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국가가 공통으로 출제한 동일 문제로 입학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입학을 결정하였다. 국가연합고시제는 학교별 시험의 폐지를 목적에 둔 것이었으나 소위 명문고라고 불리는 학교에는 지원자가 집중하여 다시 입학 시험을 치르게 되었으며 이에 오히려 이중고사를 부과하게 되는 모순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연합고시제로 인하여 학교간 격차가 더욱 노출되었고 이는 학생과 학부모의 과중한 부담을 가져오게 되었다.

3)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옛날로-학교 관리제(1954~1957)
국가연합고시제로 인하여 학교간 격차가 더욱 노출되어 입시 경쟁을 부추겼으므로 이를 다시 폐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전 학교 관리제로 돌아감에 따라 내신이 중요해졌고 이는 중학교 내부에 새로운 경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4) 너희들 마음대로 골라-내신 전형제, 학교별 필답고사제, 연합출제제(1958~1961)
내신서에 의한 무시험 전형제, 학교별 필답고사제, 시·도별 연합출제제를 각각 독립 시행하거나 병행하여 실시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는 학교장에게 이양되었다. 이렇게 개별 고등학교가 다양한 전형 방식을 택할 수 있었지만 각각의 전형방식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무시험 전형의 경우에는 내신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단독출제와 공동출제의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주는 부담감이 여전한 문제였다.

5) 국가가 강력하게 관리하겠다-국가고시제(1962~1963)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또다시 국가의 공동출제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때는 문제가 너무 쉬워서 동점자를 지나치게 양산하여 합격자를 가려내기가 힘들었고 또다시 학교별 격차가 현저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제도는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1년 정도만 시행하고 단명하였다.

6) 과목을 줄이면 부담도 줄어들거야-시·도별 공동출제제도(1964~1965)
1964년에는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 수학, 영어만을 입시 과목으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국·영·수 위주의 교육이 성행하게 되자 1965년에는 입시 과목이 중학교 3학년 전교과로 확대되었다.

7) 어떤 것이 좋은지 또 모르겠어-1차 공동·단독 출제 병행제(1966~1968)
학교장 책임하의 단독 출제와 교육감 책임하의 공동 출제 중 자유로이 하나를 선택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단독 출제를 문제 은행식으로 출제하게 됨에 따라 중학생들이 많은 문제들을 기계적으로 달달 외우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8) 우리 애 교육을 위해 8학군으로 이사갑시다-2차 공동·단독 출제 병행제(1969~1973)
1969년 중학교는 무시험 입학으로 바뀌게 되면서 고등학교 입학 전형제도가 중학교와 완전 분리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가장 논란이 됐던 사항은 동일구내 인문계 고등학교의 무시험 입학이었다. 이는 입시지옥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행되었지만 소위 명문고가 몰려있는 곳에 학생들이 집단으로 거주를 하는 등 '강남 8학군'이 나타나게 되어 학교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 시기에 나타난 또 다른 문제점은 고등학교의 타도 진학이 허용되면서 지방학생들이 서울로 몰렸다. 그래서 서울의 고등학교 학생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 학생 수용능력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9) 평등하게 하자-고등학교 연합고사제도(1974~1989)
공동출제된 연합고사를 치르게 한 후 학군 내에서 추첨, 배정하는 방식이다. 또 고등학교의 신입생 선발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전기에는 실업계 고교, 특수 목적고 등에 먼저 지원하게 하고 후기에는 이를 제외한 모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지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지원할 실력이 되지 않는 학생이 전기에 지원함으로써 전기교와 후기교의 차이가 심해졌다. 또 평준화로 인해 학급 내에 개인차가 심화되었다. 이는 교사의 학생지도에도 어려움을 가져왔고 학생들도 학교 수업을 불신하게 되어 과외에 더 열중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10) 학생에게 선택권도 줘야지-고등학교 연합고사와 학교별 선발제도의 병행(1989~1997)
연합고사의 문제점으로 인해 교육부가 평준화를 시·도별 자율에 맡기자 평준화를 해제하는 지역이 늘어났다. 목포, 군산, 안산, 천안 등의 지역에서는 공동출제에 의한 학교별 선발고사를 실시하였다. 이는 학생의 선택권을 늘려주었지만 이전보다 학생들 사이에 좋은 고등학교 진학 경쟁이 더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특수목적고의 학교별 필기시험을 폐지하고 중학교 내신과 면접 등으로 선발하게 하였으며 서울시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전형을 중학교 내신만으로 하게 되었다.

11) 내가 직접 감독에 나서야 안심-연합고사제, 학교별 단독 시험제, 내신제 병행(1998~)
-1998년도부터 서울과 부산에서는 연합고사를 폐지하고 내신성적에 의한 무시험 전형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신에 의한 무시험 전형제는 학교간 상존하는 학생들의 성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강남 등 우수한 학생이 몰려있는 곳의 학부모가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고, 일부의 학부모들은 내신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중학교에서의 시험을 감독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교사에게 시험문제 유출을 부탁하는 촌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고등학교의 입시제도만 살펴보더라도 우리의 입시제도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건국이래 55년 동안 무려 10번이나 바뀌었으니 입시제도가 평균 5.5년에 한 번씩 바뀐 셈이다. 이 중에는 1년 정도만 시행하고 없어진 제도들도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白年之大計)라고 하는데 우리의 교육은 고작 오년지대계(五年之大計)였다. 우리 나라는 풍부한 천연자원도 없고 오직 우수한 인적 자원에 기대어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 진정한 우수 인적 자원을 기르려는 계획이 충분한 연구와 검토 끝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의 임시방편으로 세워져 왔다.

10번의 제도 변천 과정을 보면 문제점은 거의 반복되고 한 가지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하고 문제가 또 생기면 다시 예전으로 회귀하는 고리를 가지고 있다. 크게 학교별 시험→국가 시험→학교별 시험→병행 시행→국가 시험→병행 시행→국가 시험→병행 시행의 흐름을 보인다. 학교별 시험은 학생에게 학교의 선택권을 줄 수 있고, 수준이 비슷한 학생끼리 모여 교육의 효율성을 가진다. 그러나 학교간 격차가 드러나 지나친 입시 경쟁을 야기하고 학교 수업보다 과외에 치중하여 학교 수업의 부실을 가져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출제 시험을 치르면 학교간 격차가 더 심화되었고 학급 내 개인차가 커져 학생들의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었다. 두 시험의 장점을 취하기 위해 병행을 하기도 하지만 내포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병행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다.

"나는 1977년에 처음 교단에 섰다. 그때는 월말고사, 군학력고사, 도학력고사로 학교 순위, 학급순위까지 매기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교실에서 수업은 시험위주로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율적인 학습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교사에 따라서는 이를 실천하기도 했다. 지금은 70년대와 같은 평가 방식이 없어졌고,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20년이 지나도 그리 큰 변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 이중현(경기 남양주 장현 초등학교)

20여년 간 교단에 서면서 수많은 제도의 변화를 겪었지만 실질적 내용에서 큰 차이는 없다는 한 교사의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외줄을 타듯이 불안하며 언제 바뀔지 모르는 입시 제도 아래서 우리 아이들은 근시안적 대처 방법에 익숙해져 간다. 새 천년의 시작에 앞서 우리의 백년지대계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송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