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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도 스펙? 겉모습에 발목 잡힌 구직자들
배소영 기자 | 승인 2018.02.21 20:03


대학생 박보인 씨(22)는 몇 달 전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업체 양식을 받아보니 사진은 물론 키와 몸무게 등 신체 사이즈까지 입력해야 했던 것. 박 씨는 “어느 정도 단정한 용모를 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단기 아르바이트인데다 유니폼이 있는 곳도 아니었는데 지원서에 몸무게까지 적어야 하는 게 의아했다”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커피 전문점도, 의류 매장도, ‘사진 미부착 시 지원 불가’

최근 채용 시 이력서에 사진, 학력, 출신지 등 차별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배제하고 지원자를 평가하도록 하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 정책이 눈길을 끈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부문에 먼저 적용하고 이를 점차 민간 기업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구직 과정에서 지원자의 외모나 신체를 확인하고 검열하는 일이 빈번하다.

올해 2월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2017 고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인사 담당자들이 채용 시 이력서에 사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업 규모별로 신입 사원 채용 평가 시 이력서 사진이 꼭 필요한지를 질문한 결과,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59.4%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또한 각각 60.7%, 60.0%가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구인 구직 포털 알바몬의 ‘브랜드 채용관’에 등록된 43개의 대형 브랜드 이력서를 조사한 결과, 16개의 브랜드가 지원자의 사진을 필수 제출 사항으로 정해 놓았다.(17. 11. 26 기준) 전체 3분의 1이 넘는 일자리가 사진을 제출하지 않으면 지원조차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체 이력서 양식을 갖고 있는 8개의 브랜드 중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목적을 밝히지 않고 신장이나 몸무게 등을 요구하는 이력서도 있었다. 이처럼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찾는 첫 단계에서부터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껴야 한다.

‘취업용 이미지’ 위해 고군분투하는 취준생들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입사에 도전하는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의 경우 외모 스트레스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력서에 담긴 사진이 곧 기업에 드러내는 자신의 첫인상이라는 생각에 지원자들은 마음에 드는 취업용 사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한 취업 사진 전문 스튜디오는 취업 업종과 이미지에 맞는 사진 촬영을 제공한다. 맞춤형 서비스 수준에 따라 1회 촬영 당 최소 9만원부터 최대 20만원이 넘는 상품도 있다. 보통 증명사진 촬영 가격이 1만원에서 3만원 사이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높은 금액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면서 수요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취업 시즌에는 이 같은 상품을 이용하려는 온라인 문의가 게시판을 가득 메운다.

이렇게 찍은 사진이 취업에 적합한 이미지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취준생들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평가 받는 일에도 서슴없다. 유명 온라인 취업 카페는 이미 이력서 사진 평가 게시판을 만들어 회원들끼리 사진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지 오래다. 자신의 외모가 취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성형이나 시술 관련 문의를 올리기도 한다. 이름도 모르는 남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기꺼이 부족한 점을 듣고자 하는 풍경은 취준생들의 취업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씁쓸한 현실을 대변한다.

 

▲ 한 온라인 유명 취업 카페에서 구직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올려 조언을 구하는 모습

 

모, 신체 조건이 당락을 결정한다? ‘기업 노력도 별 효과 없어’

잘 나온 사진 하나로는 외모나 신체 조건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없는 구직자들도 있다. 암묵적으로 이미지가 채용 결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직무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외모의 중요성이 다른 직종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방송 관련 직업이나 일정한 신체적 조건이 필요한 승무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국 항공사의 경우 신장 제한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외적 요건이 과연 직무와 관련된 적절한 수준인지 의문이 남는 이유다.

객실 승무원의 경우, 원활한 업무 수행을 이유로 일정한 신장 기준을 내놓는 항공사들이 많다. 또한 서류나 면접 전형 그 어떤 부분에서도 지원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기준은 없으나 전형적인 승무원의 이미지가 고정돼 있어 그에 부합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고 믿는 지원자들이 상당수다. 지난 1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승무원 구직 과정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항공사 취준생 34명을 대상으로 익명의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이 구직 시 외모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승무원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응답은 ‘서비스 정신’ 32%, ‘위기 대처 능력’ 29%, ‘언어 능력’ 18% 순으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단정한 용모’를 선택한 응답자는 15%에 불과했다. 반면 구직 활동 시(서류 심사, 면접 등) ‘가장 크게 요구 받는다고 느낀 부분’이나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서는 ‘단정한 용모’를 꼽은 응답자가 각각 41%, 35%로 응답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승무원 직무 수행에 있어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자들은 거의 없지만 상대적으로 구직 과정에서는 외모가 중요한 요소라고 느낀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신체조건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채용 시 신장 제한을 차별 행위로 보고 시정을 권고하면서 대한항공은 2014년과 2015년, 남성 지원자와 여성 지원자에 대한 키 제한을 차례로 폐지했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도 신장 기준 조항을 삭제했다. 과연 이러한 기업의 조치에 실효성이 있었을까. 앞선 설문 조사에서 ‘주요 항공사의 신장 제한 조건 폐지가 실제 구직 활동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절반인 50%에 달했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20%로 그 뒤를 따랐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여전히 작은 키에 대한 고민이 취업 카페에 꾸준히 올라온다’, ‘조건이 없어졌더라도 암묵적으로 면접점수에 반영이 되는듯하다’, ‘합격자들을 보면 대부분 신체적 조건이 평균 이상에 해당하는 것 같다’ 등의 의견을 내비쳤다. 신체조건 폐지에도 많은 지원자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고 느꼈다. 제도는 사라졌지만 부담은 여전하다는 의미다. 항공운항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이예지 씨(21)는 “외모의 아름다움을 떠나 ‘승무원’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다고 느낀다”며, 신장 제한 폐지에 관해서는 “키 제한이 없더라도 암리치(Arm reach, 뒤꿈치를 들고 팔을 최대한 뻗어 올린 높이) 등의 기준을 도입해 결국 지원자의 키를 간접적으로 볼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방송에 노출되는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 특히 방송 기자나 아나운서 지망생의 경우에도 취업 준비는 자연스레 외모 가꾸기를 포함한다. 포털 사이트에 ‘아나운서’를 검색하면 스피치 학원이나 프로필사진 광고와 함께 치과, 성형외과 광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뉴스 이해도와 전달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뉴스 기사들조차 아나운서들에 대해 꾸준히 외모와 관련된 내용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 빅카인즈 분석을 이용해 ‘아나운서’와 ‘외모’ 또는 ‘미모’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 건수를 검색한 결과. 2000년대 들어 그 수가 급증한 모습이다.(출처=빅카인즈)

외국에서도 ‘외모’가 취업의 경쟁력일까

외국의 모습은 어떨까. 외국에서도 외모가 지원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지 들어봤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티엘 대학교(Thiel College)의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과 로스 누젠트(Ross Nugent) 교수는 “방송과 관련된 직무에서는 (지원자의) 전반적인 외모가 물론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몸매나 성별, 인종에서 비롯된 겉모습이라기보다는 정돈된 모습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확인하는 쪽에 더 가깝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아나운서에게는 언제나 뉴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관련 지식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업무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의미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나운싱(announcing) 과목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는 또한 ”지난 10년 간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아나운서에게 외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사라지는 추세였지만, HD 기술의 발달로 다시 방송 업계에 외모 관리에 대한 관심과 압박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외국의 경우라도 무조건적으로 채용 시 외모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차이는 이력서에서 드러난다. 포털 사이트 구글에서 ‘resume(이력서)’를 검색했을 때 등장하는 이력서에 사진이나 신체 사이즈를 입력할 공간은 없다.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정보와 경력을 직접 기입한다. 뚜렷한 양식이랄 것도 없는 모습이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구직자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력서 양식에는 약속이나 한 듯 가장 먼저 사진란이 등장한다. 2007년 노동부가 직무와 무관한 성별이나 외모, 나이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작해 보급한 표준이력서 양식이 있으나 아직까지도 잘 활용되지 않는 점이 문제다.

 

▲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각각 ‘이력서’와 ‘resume’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출처=Google)

 

▲ 현재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력서 예시.(출처=티엘 대학교(Thiel College))
▲ 2007년 노동부가 제작·배포한 표준이력서 양식. 사진란이 없고 대부분 직무 관련 내용으로 채우도록 만들어졌다.(출처=고용노동부)

 

블라인드 채용 정책이 나아갈 방향

지원자 확인을 위해 이력서 사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2월 취업 포털 잡코리아는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지원자의 사진이나 신체 정보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의 56.2%가 ‘본인 확인을 위해’, 20.9%가 ‘기업이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나의 평가 요소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20.2%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이력서상에 있는 사진과 (면접장에) 온 사람을 보고 동일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한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력서 사진으로 본인여부를 판단할 때 타인 사진 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신분 확인에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이용해야 할 것”이라는 추가적인 의견을 밝혔다. 또한 최근 이력서에 붙일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거나 추가 수정 등을 통해 실제 본인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례를 언급하며 이력서 사진이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부작용을 설명했다.

한 의원은 지난 2016년 6월 구직자의 기초심사자료에 사진 부착을 포함해 용모·키·체중 등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이 법안은 사진사들의 생계 문제 등으로 인해 법사위에서 계류 중인 상황이다. 한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보니 다른 의원들도 비슷한 법안을 많이 발의하는 것으로 안다. 논의를 잠시 기다리는 중이니 12월 임시 국회에서는 통과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법안 통과에 대한 긍정적 예측을 드러냈다. 해당 법안이 법사위에서 의결될 경우 본회의에 상정 절차를 거치게 된다.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경우 법적 제재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채용 절차, 특히 서류 단계에서 외모나 신체에 대한 구직자들의 스트레스는 현저히 줄어들 전망이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김문주 교수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채용상 발생할 수 있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 각성시키고 교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현행처럼 단순히 업무 내용만 공고하기보다 직무의 내용이 기술된 직무기술서와 해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이 담긴 직무명세서가 필수적”이라며 문제점이 따를 수 있는 부분에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이력서가 변화하면 채용 방식도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올바른 인적 자원 관리를 위해 “기업의 최고경영층이 인적자원에 대한 ‘관리’를 뛰어넘어 ‘관심’과 ‘존중’, ‘배려’를 바탕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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