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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촛불 맨드라미] 셋째날 20. 하수 : 인생의 맛
홍유진 작가 | 승인 2017.10.01 22:00

 







셋째날












 20. 하수 : 인생의 맛


 

 

 


  기차는 역시, 낮에 타야 제맛이다.
  밤차는 구경할 풍경이랄 것도 없이 심심해서 잠을 자기에나 딱 좋으니까. 커피를 홀짝이며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들의 바다를 바라본다. 고흐가 그린 밀밭처럼 넘실대는 누런 물결과 정선의 수묵화를 펼친 듯 겹겹이 포개진 산등성이는 지금 내가 느끼는 비현실감을 더해 준다. 어젯밤에 내가 들은 말이 진짜일까? 눈물나게 기분이 나쁜 악몽을 꾼 건 아닐까? 아침에 폭신한 이부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한마디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솔직하게 대답하든 거짓말로 둘러대든 내게는 충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눈을 뜨던 순간부터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는지도.
  졸음이 내려앉던 내 머릿속이 만든 헛소리라면 간단해. 어느 날 불쑥 내 인생에 끼어든 도둑 운과 가출의 피로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 거니까 싹 지워 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걸까?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와 엄마, 가족 모두에게 끔찍한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미치도록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사실일까 두려웠다. 나는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아침을 억지로 먹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잘 생각했다면서 내 어깨를 토닥이는 할머니의 손길이, 더 이상은 따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지금, 하나의 물음이 가슴속을 헤매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 할까? 

  하, 이 생각은 안 하려 애썼지만 이젠 피할 수 없다. 

  내가 가려던 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프랑스? 파리? 수혁의 곁? 소르본에서 반가움에 들떠 망아지처럼 날뛰면서 나 같은 건 까맣게 잊었을지 모르는 수혁에게 매달리기라도 했다면, 놀라 나자빠지는 건 둘째 치고 과연 억지 미소라도 지으며 날 받아 주기는 했을까?

  수혁과 나,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우연이 필연을 만든다고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 필연은 우리를 안타까이 비껴가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잡았던 손을 놓은 걸까? 눈을 감으면,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프랑스어과 새터로 떠나는 버스에서 아는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창가 자리에 앉은 내 옆으로 그가 고민하듯 걸어와 앉았다. 이제 막 고등학생티를 벗은 신입생으로 둘 다 식신이라는 조그만 공통점만으로도 우리는 서둘러 친해졌다. 돌이켜보면, 앞으로 겪을 전쟁터와도 같은 대학 생활에서 단지 새터에 온 며칠만이라도 뒤통수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있었던 듯하고. 
  그날 이후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슷한 습관이 늘어날수록, 모순적이게도 수혁과 나는 참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는지, 어떻게 가야할지 아는 남자였으니까. 세상의 기대에 맞춰, 엄마의 등쌀에 밀려, 별 고민 없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 나와는 출발부터 달랐다. 수혁은 외아들이면서도 부모님과 끊임없이 싸워서, 나와 봤자 청년 실업률만 올린다는 말이 되는 이유로 그분들이 반대하는 프랑스어과에 왔다. 그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하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가는 사람들은 의외로 정말 단순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 확신에 차서 뭔가 있어 보이는 이유를 댈 거란 선입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의 대답은 담백했다. 
  “프랑스가 모파상의 나라라서. 모파상의 글을 영혼으로 이해하고 싶어. 그러려면 프랑스어를 알아야 하고,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워야 해서. 좋아하니까,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나에 대한 고백도 아닌데, 괜스레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그러고 보면 역시, 필연은 우연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지독한 모파상앓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시작됐다고. 독후감 과제로 나온,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를 읽고 반해서 『여자의 일생』, 『벨아미』, 『목걸이』 같은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었다고 했다. 수혁은 스스로의 의지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 사람이다. 삶에 쏟아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우연의 수를 생각하면, 무엇을 필연으로 연결할지는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렸으니까. 
  “가장 멋진 작품은 『비곗덩어리』지만, 제일 좋아하는 글은 『벨아미』야. 벨아미가 더 야해서.” 
  다 자란 어른인 척 말하면서도 수줍은 호기심이 가득한 사춘기 소년의 눈빛까지 감추지는 못하던 수혁이, 너무나 보고 싶다.
 
  서로를 잃을까 조심스러웠을까? 다가서지 못하고 진심을 감추려 괜히 미팅, 소개팅에 나가면서도 애인은 안 사귀던 우리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올 여름 수혁이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서투르게 끝이 났다. 내 몫의 지원서까지 가져와 함께 가자던 그에게, 나는 파고들 틈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내 미래는 외교관으로 정해져 있었고, 외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고시촌에 들어가서 하루 24시간 내내 책만 파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하, 정말로 그땐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차마 나 자신에게도 솔직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다음’에 대한 걱정이었다. 함께 떠나면, 그 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 마음이 끝도 없이 깊어지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난 어떡하고? 어학연수를 끝낸 다음에 우리는, 나는 뭘 해야 할까? 지금 돌아보면 일어나지도 않을, 그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선택과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 ‘내일’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고 타조처럼 땅에 머리를 처박은 꼴이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야만 아는 일이 있는 법이다. 알았다고 해서 다시 용기를 내기도 어렵고.
  수혁은 결국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에게 단단히 실망한 채로, 혼자서 자신의 길을 갔다. 이제라도 온 건 잘한 일이라고 응원해 줬을까, 아니면 고릿적 감정을 부여잡고 프랑스까지 쫓아온 스토커로 보고 모르는 사람처럼 차갑게 뒤돌아섰을까? 그를 잃은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집을 나온 나. 그 끝이 파리라면, 수혁이라면, 과연 그게 내 길일까? 파리에 가면 당장 무엇을 하겠다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계획이 내게는 없다. 단지 엄마가 세운 이 길은 아니라는 마음만 있을 뿐. 그럼 나는 엄마의 꿈에서 수혁의 꿈으로 그냥 옮겨 타려던 게 아닐까? 언제까지 다른 사람에게 빌붙으려고 했던 걸까. 에휴, 정말 한심하다, 은하수.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종이컵을 찌그러뜨리자, 냉기가 손끝을 감싼다. 커피 맛을 알아야 인생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어떤 유명한 사람이 말했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서, 바닥에 깔린 식어 빠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다. 덜 갈린 커피 가루가 내려앉아 며칠이나 안 비운 재떨이 맛이 난다. 과연 이게 인생이라면, 나는 기꺼이 맛볼 준비가 된 걸까?

  “우리 열차는 이제 곧 양평, 양평역에 도착합니다. 양평역에서 내리실 승객들께서는 두고 내리시는 물건이 없도록….”
  안내 방송이 나오자 갑자기 주위가 부산해진다. 아직 기차가 힘껏 달리고 있는데도 다들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윗옷을 입고 휴대폰을 누른다. 언제 사람이 이렇게 많이 탔지? 코레일이 걱정될 정도로 비었던 객실이 점점 떠들썩하게 채워지고 있는데도 몰랐다. 하, 나는 왜 항상 한발 늦게 깨닫는 걸까?

  어릴 때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나가면, 사람들이 뇌까리던 말이 생각난다. 
  “딸아이가 방실방실 잘도 웃네. 그래도 딸 하나론 아무래도 부족하지.”
  그러면서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 
  “딸뿐이에요? 아가, 부모님한테 남동생 하나 낳아 달라고 해. 더 늦기 전에.”
  역시 아쉽다는 미소.
  사람들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온 가족에게는 그런 말을 잘 안 했다. 아들이 하나든 둘이든, 딸이 섞여 있든 아니든… 거기에 모든 비밀이 감쪽같이 숨겨져 있었다. 어린이 원피스를 벗고 교복 치마를 거쳐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내가 자랄수록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조금씩 더 진실에 다가갔는데 왜 몰랐을까. 아니 어쩌면 다 알면서 외면했던 걸까?
  “딸만 있으면,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 줄 사람이 없어서 섭섭하겠어요.”
  위로하듯 건네는, 이름도 모를 동네 아저씨의 말에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던 아빠의 갈색 눈동자가 이제야 또렷이 떠오른다.
  “요즘은 딸이 더 좋아요! 하나라도 잘 키우면 아들 여럿보다 낫다고요!”
  남들이 지나치며 가볍게 던지는 말에도 싸움닭처럼 발끈하는 엄마를 보며 쓴웃음을 짓던 할머니와, 싸늘한 분위기에 울음을 터뜨리려고 어깨를 들썩이는 어린 나를 달래던 아빠의 복잡한 표정도 기억난다. 부모님이 눈만 마주치면 싸우던 이유가 그거였을까? 친척들 앞에서 나 하나 챙기는 일이 자식 여럿 돌보기보다 어렵다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푸념하던 이유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돋보이게 나를 키우고 싶은 이유도 같고? 설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혼하신 이유도 혹시 나? 아니, 아닐 거야.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나에게 있다고? 그것도 단지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말이야? 만약에, 혹시나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공평한 일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냐고! 딸만 하나뿐인 집도, 자매만 키우는 집도 널렸다. 그런 집들이 다 이런 다툼을 겪는 건 아니라니까? 여자가 아들을 낳는 기계가 아니라는 건전한 상식이 퍼져 있고, 자식을 안 낳고 부부끼리 재미있게 사는 집도 얼마나 많다고. 잠깐만, 정말 그럴까?

  할머니가 보수적인 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친가에 내려갔던 어느 명절, TV에서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친손주와의 유산 소송 과정에서 외손주가 살해당한 뉴스가 나오자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죽을 짓을 했구먼그래! 그러게 친손주가 있는데, 왜 외손주가 외할아버지 재산에 욕심을 내? 외손주가! 안 그러나?”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작은 할아버지가 바로 맞장구쳤다.
  “암요, 형님. 친손주랑 외손주는 틀려요.” 
  “내 말이! 자네, 친손주랑 외손주가 눈앞에서 동시에 넘어지면 누구를 일으키겠나?”
  “당연히 친손주 아니겠니껴!”
  지지자를 얻은 할아버지는 뉴스가 나오는 동안 몇 번이나 더 호통을 쳤다.
  “어디 감히 외손주가! 성 씨도 다른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그때 할아버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의 모습을 한동안 잊지 못했다. 내게는 할아버지의 고리타분한 막말보다 할머니의 침묵이 더 슬프게 다가왔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녀’라는 이유로 우리 엄마가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내팽개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평생 아이들을 가르쳐 온 존경받는 선생님이자 내게는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던 우리 할머니에게서. 

  할머니도 여자고, 할머니도 은 씨가 아니라니까? 왜 은 씨 성을 잇는 일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게다가 나도 은 씨인데, 왜 내가 낳을 아이는 은 씨를 잇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법적으로는 내 남편이 찬성하면 우리 아이가 내 성을 따를 수도 있어. 물론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엄마의 성을 따른 아이는 아주 드물고, 스스로 꽤 진보적이라 자신하는 남자들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아무런 의식조차 없는 경우가 흔한 데다, 설사 가족끼리 동의한다 해도 아빠와 성이 다른 아이의 엄마를 미혼모로 오해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한 게 현실이긴 해. 나도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 내 아이에게 남편의 성이 아닌 나의 성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 씨도 내 뜻과는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아버지의 성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도대체 왜 우리는 남자의 성만 따라야 하는 걸까? 아버지 혹은 남편의 성을. 아들이 제사를 지내니까?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니까? 이 말들을 뒤집어 보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째서 아들만 제사를 지내게 됐을까? 왜 장남이 부모님을 모셨을까? 우리 사회가 아들을 원하는 진짜 이유, 결혼한 여자가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솔직한 이유는 남자만이, 아들들만 성을 이을 수 있기 때문 아닐까?
  하, 어쩐지 억울하다. 유전적으로는 아들이나 딸이나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똑같이 반씩 물려받는다고.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키워서 온몸이 으스러지는 고문 같은 고통을 겪으며 낳는 건 우리 할머니였고, 우리 엄마였고, 나와 같은 여자들이고! 이런 현실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건 그나마 위로가 되는 일일까, 아니면 더 절망적인 상황일까? 여자가 혼자서는 집밖으로 나설 수도 없는 데다 휴대폰을 쓰거나 운전을 배우려 했다가는 명예 살인을 당할 수도 있는 국가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영국 등 남녀평등이 많이 이루어진 국가들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아예 자신을 대표하는 성 씨조차 바뀐다니까? ‘미셸 오바마’처럼 오바마의 부인 미셸로 말이야. 

  아들을 낳지 못하면 은근슬쩍 뭔가 부족하다거나 안타깝게 보는 시선. 그 바닥에 깔린, 아들만이 성을 이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일 정도로 뿌리 깊은 사회적 강요. 여자들조차 당연하다는 듯이 남편의 성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 이거야말로 우리가 결코 극복하지 못한, 여자라는 이름의 원죄가 아닐까? 엄마는 내가 알면 충격을 받거나 엇나갈까 봐 가족 모두가 쉬쉬하도록, 내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허튼소리가 안 나오도록 자신의 인생을 던져 온몸으로 막아 온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결심했어! 이 모든 의문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저작권자 © 홍유진 작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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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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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stem error 2017-10-10 20:19:02

    이번 회를 읽으면서는 많은 단상과 경험들이 떠오릅니다..
    호주제.. 성씨.. 가문계승..
    생존본능이 확대된 번식,영생의 욕구.. 나아가, 후손을 통한 자기복제 또는 영구추모의 욕구.. 어쩌면 그것이 자연?...
    더 나아가 통치이념으로 사대적 유교사상이 채택되었던 이 땅.
    통치자들과 기득권자들이 그 덕을 톡톡히 봤던 대한민국의 현대사...
    이건 뭐, 시스템 오류라고 봅니다.

    읽다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나서, 이상한 말을 너무 적었네요.. 문제소지 있으면 정정삭제요구 말씀 주십시오~
    그만큼 몰입해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삭제

    • Gen Paik 2017-10-09 21:33:41

      (긴 연휴 마치고 지금서야 봤네요..;;;;)
      서울 청량리로 올라가는 중앙선 열차타고 상념에 젖던 오래전 옛기억이...

      하수가 집으로 돌어와 어떤 의문의 고리를 풀려할지 궁금.기대되네요^^*
      깊어가는 가을에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작가님, 늘 건강하게 지내시길^^~~~   삭제

      • 소설 소셜 카페모카 2017-10-03 21:54:08

        사진과 글이 잘 어울려져 더 잘 읽히네요.
        저도 얘기 듣고 와서 순례 중... 입니다...^^
        청소년소설...화이팅!   삭제

        • rmaxod 2017-10-02 17:51:55

          작가님의 글을 읽은 다음에는 항상 표현력때문인지 사진속
          장소를 가고싶고 느끼고 싶다고 해야할까요?! 기차를 타고싶어요!^^
          곧 그런기회가 있기를..^^
          저도 아이가 있지만 당연하게 남편성을 따라 이름을 짓게 됐네요
          생각조차하지 못했네요~~ 뿌리깊은 생각이나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세대 부모들은 달라지고있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드네요^^ 하수가 일단 집으로 간다하니 다행이네요~~다음편도 궁금
          하네요~! 즐거운 한가위보내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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