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정상에 섰을 때 남들이 '저 사람은 자격이 있어'라고 인정할만한 사람이 되려면 일만 잘해선 안 돼죠. 그래서 균형 감각이 아주 중요해요. 사람은 누구나 모든 면이 근사하고 싶은 완벽주의자니까요." 이엠컨설팅(E.M.consulting) 황은미(45) 사장. 아름다운 프로 정신을 가진 여자.

"이화여고,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 77년 Bank of America 입사…다국적 기업 마케팅 관리 책임자…IBRD president 비서…기업 자금 관리 솔루션 한국 책임자, 95년 창업…." 그의 쟁쟁한 프로파일을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그런 그와의 전화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감이란 손톱을 물어뜯는 없던 버릇까지 만들 정도다. 귀를 귀울이자 다른 회선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이가 지긋할 것 같은 할머니의 반복해서 말하는 지루한 이야기에 친절하게 대답하는 목소리가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습에 몰두하는 소프라노의 정교한 바이브레이션을 생각나게 하는 고음. 그 속의 통렬한 부드러움. 마음이 놓인다.

대학로 동숭 아트센터 2층 그의 사무실은 세 면이 벽, 한 면은 유리다. 조용한 거리가 내려다 보이고 오후의 햇살이 그렇게 잔인하게 부서지는 방에서 어떻게 냉철한 분석이 필수조건인 컨설팅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사무실도 넓히고 직원도 더 뽑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여기를 너무 좋아해서 못 그러고 있어요." 눈이 먼저 웃고 그 다음에 입이 따라 웃는 사람이 가식이 없다고 하던데, 그녀의 눈은 항상 웃고 있다. "글쎄…. 내가 친절하게 웃나요? 처음에 비서로 시작했기 때문에 최고 경영자들을 대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융통성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탑 매니저들 상대하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거든요."

비서의 매력은 도전해봄 직한 생경함

25년 전 비서란 예쁘게 꾸미고 앉아 잔심부름이나 하고 타이프나 치는 비전문직 여성을 의미했다. 대학에 비서학과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안다고 해도 정확히 무엇을 배우는 학과인지 거의 알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일반인에게 인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비서학과가 그에게는 신선한 매력이었다. 미개척분야에 대한 타고난 도전 정신이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집안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 기술과 지식이 필요했다. 비서 학과는 그러한 그의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었고, 그는 4학년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Bank of America에서 비서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엔 대학을 졸업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의 꿈이 현모양처였고 일을 갖지 않는 것이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황은미 사장처럼 취업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직업을 버리지 않는 경우가 특별한 케이스일 정도였다.

"달러가 귀했던 시절이예요. 은행이 기업 위에 군림하던 때였죠. 그러니 내 프라이드가 어땠겠어요? 게다가 월급도 국내 기업보다 30%나 많았으니까…." 외국 기업의 분위기는 치열 그 자체였다. 그는 일상적인 업무 외에도 주기적으로 프로젝트를 맡아야 했고 연초에 그 해의 목표치가 설정되었다. 올해 목표치 달성 여부가 내년 연봉에 그대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일은 느슨하지 않았다. 목표한 만큼 일을 수행했다면 월급이야 오르겠지만, 내년의 목표 달성 기대치는 그만큼 높아져 있었다. 일도 책임도 늘어나기만 하는 상황에서 연장 근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여성이 커리어를 개발하려면 남편을 잘 골라야 해요. 집안 일이야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있지만, 정신적인 지원이나 조언은 남편밖에 해줄 수 없죠. 여성의 능력과 사회 생활의 모든 면을 인정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그래요, 우리 남편이 그런 사람이죠." 그는 무역업을 하는 남편과의 파트너십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 뒤에는 훌륭한 저격수의 엄호 사격이 필요한 법이니까. "물론 저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죠." 그는 최선을 다한다는 무책임한 말에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을 부여한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있다는 논리는 페미니즘에서나 당연할 뿐이다. 그에게는 부모가 참석해야 하는 아이들의 학교 행사나 서클 활동에 절대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더 당연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과 가정에 모두 충실하고 싶어하는 여성을 수퍼우먼 콤플렉스라는 말로 쉽게 비아냥거린다. 그는 그 말에 신경이나 쓸까? 딸(문수지·17)의 이런 칭찬을 듣는데 말이다. "엄마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분이시고 모든 일에 충실하세요. 전 엄마를 정말 닮고 싶어요."

후회하지 않을 만큼 몰두하기

그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그것을 작품처럼 펼쳐 보이는 일을 좋아한다. 그런 일을 만나면 완벽하게 몰두한다. 얼만큼? "후회하지 않을 만큼." 고등학교 때 반끼리 출전하는 합창대회에 지휘자를 맡은 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대회라서 모든 반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당연했고 음악실 쟁탈전이 치열했다고 한다. 그는 합창 대회가 끝날 때까지 새벽 4시에 학교에 나와 음악실을 어김없이 확보해냈다. 그것도 모자라 뭔가 특별한 레파토리가 필요하단 생각에 미8군을 누비며 작곡가를 찾아 다녔다. 미발표곡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대회 끝나고 몸져누울 정도였으니까요."

지그시 웃는 그의 눈은 이미 회상의 언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당시의 열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는 식의 뻔한 과장의 표현이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는 표정으로. 대학 재학 시절, 학교에서 후원하는 락 뮤지컬에 출연했을 때에도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몸져누웠다. 오디션을 통과한 12명 중 상당수가 성악 전공이라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밉지 않다.

일 욕심이 많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이 찾아오기 쉽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하나의 교훈을 발견해냈다. "삶을 윤택하게 하려면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해요. 일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프로의식은 아니죠. 유능한 사람일수록 성공을 위해 초조해 하고 단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이루려고 하지만 빠른 성공이 인생의 가속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인생의 성공이란 마감할 때나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멈추지 않고 스텝 바이 스텝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는 지금도 대학 때처럼 노트를 들고 특강을 들으러 다닌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기대어져 있는 액자를 보면서 그가 말하는 삶의 균형을 어림 짐작해 본다.

나의 경험은 후배를 위한 조언으로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남성보다 네트웍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백그라운드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앞으로 더욱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황은미 사장은 자신이 좋은 선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선배라는 위치는 참 어려워요.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기란 더욱 어렵죠. 저는 후배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고 싶어요."

그는 은퇴하기 전에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여성의 커리어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사관련 컨설팅 비영리 법인을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젊어서는 열심히 일하고 또 새로운 것을 자꾸 받아들여 더 성숙하는 일에 몰두해야죠. 그렇게 경험이 축적되면 그것을 나누어 주면서 봉사하는 삶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삶이에요." 그의 말 속에 과거의 20년과 훗날의 20년이 녹아 들어 있다. 이제는 자신의 경력을 한발 앞서기 위한 무기가 아닌 한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한 격언으로  돌려주고 싶어하는 진정한 프로정신이 엿보인다.

김상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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