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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혼자 있게 해주세요."…혼자가 편한 직장인들
고홍주 기자 | 승인 2017.08.13 16:22

직장인 박민선 씨의 하루는 ‘오늘 점심시간엔 무슨 거짓말을 하지’하는 고민으로 시작한다. 팀장을 포함한 총 7명의 직원은 모두 함께 점심을 먹는다. 박 씨는 일주일에 두어 번은 약속이 있다고 하거나,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식사에서 빠진다. 처음엔 왜 밥을 먹지 않냐며 호들갑을 떠는 상사들에게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느라 바빴지만, 이젠 제법 능숙해졌다. 박 씨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엔 진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상사들이 좋았다. 그러나 점점 힘에 부쳤다. 엄밀히 말해 휴식시간인데도 업무의 연장선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밥 먹으러 가서 하는 얘기는 뻔해요. 아이 얘기, 거래처 얘기. 관심도 없는 얘기에 맞장구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말 밥 먹는 시간까지 불편하게 있고 싶지 않았어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직장인 현유진 씨는 오늘도 부장님과 함께하는 점심 대신 요가학원행을 택했다. 한창 배고플 시간에 식사 대신 요가를 한다는 게 다소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현유진 씨는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기 위해서 과감히 밥을 포기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종 특성상,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다른 회사들에 비하면 점심시간을 개인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자유롭지만,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어요. 배고픈데 운동을 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저런 핑계 댈 것 없이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이처럼 자발적으로 점심시간에 ‘아웃사이더’를 택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참 싫다. 박 씨처럼 상사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싫어 속이 안 좋다는 거짓말을 하고 카페에서 혼자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는가 하면, 현 씨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점심시간을 쓰기도 한다.

오피스 타운 가게들은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을 겨냥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요일 정오, 서울 종로의 한 풋 마사지숍에는 쉴 새 없이 몰리는 손님들로 직원들이 분주했다. 다른 시간대에는 친구나 커플들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점심시간만큼은 혼자 오는 손님이 대다수다. 오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평균 40여 명 정도가 이용하는데, 점심시간 수요만 20명 정도다. 하루 이용객의 절반가량이 점심시간에 몰리는 셈이다. 관리자 서 모 씨는 “최소 하루 이틀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마사지를 받기가 어렵다.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리다보니 11시 반부터 1시까지 가장 짧은 프로그램인 40분 코스로만 예약을 받지만, 수요가 워낙 많아 예약은 필수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여의도의 한 외국어 학원은 아예 점심까지 제공하며 직장인 전용반을 만들었다. 40분 동안 학원에서 제공하는 김밥을 먹으며 짧게 강의를 듣는 것이다.

직장인을 위한 점심시간 전용 강좌

또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이 1인 기준에 맞춰진 식당도 늘어나고 있다. 광화문, 여의도, 강남 등 오피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 중인 ‘스노우 폭스’가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는 신세대 직장인들이 만들어낸 신풍경이다.

그들은 왜 혼자가 되었나
취준생 사이에는 이력서에 등산을 적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력서에 등산을 적게 되면, 주말마다 부장과 함께 등산을 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전민지 씨는 이력서에 취미로 사이클을 적었다가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반강제로 상사와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됐다. 평소 라이딩이 취미이긴 하지만, 아직 회사 분위기도 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대표와 이사까지 참석하는 주말 라이딩은 전 씨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이력서에 취미로 적었다는 이유로 제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렸더라구요. 입사 두 달째라 의지와는 관계없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이는 비단 일부 사기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정여진 씨의 경우, 점심시간은 눈치껏 행동하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 들어가자마자 상에 수저 놓고, 컵에 물 따르는 건 모두 막내 몫이에요. 접시에 반찬이 비면 누구보다 재빠르게 더 갖다달라고 얘기해야 하고요." 정 씨는 이 숨 막히는 분위기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은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단 한 시간이에요. 하루 종일 가족보다도 더 오래 붙어 있는데, 단 한 시간 떨어져 있는 게 이렇게 힘들까요?" 정 씨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이런 분위기에서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회사에서 회식은 일이다. 그런데 수당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 돈을 내야 한다.(27세, 영업직)', '얼마 전 상사가 내 동료에게 "저 녀석은 자주 쉬는 놈이야"라고 평가하는 것을 듣고 앞으로 나는 못 쉬겠다고 생각했다.(24세, 영업직)', '"내 집 같은 회사입니다!" = 바빠서 퇴근하지 못하니 회사가 집이 됩니다.' 등 실제 직장인들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책은 발매 세 달 만에 6쇄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속편인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역시 SNS상에서 '공감 짤(공감을 느끼는 사진 등을 이르는 신조어)'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책이 지적하는 피곤한 조직 문화의 핵심은 바로 '가족 같은 분위기'다. 저자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내 업무가 끝났어도 옆 사람의 업무가 끝나지 않으면 가족의 도리로 함께 야근에 동참하는 '의리 야근' 풍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상사들의 변명
물론 상사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애착을 갖고 주말 출근도 이상하지 않은 기성세대 상사들에게 요즘 신입 사원들은 별종이다.
삼성그룹 사보 삼성앤유 프리미엄에 따르면, 임직원 3,2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가직장 내 세대 차이를 종종 느낀다고 답했다. 세대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회식 등 친목 도모 모임에 대한 의견이 다를 때(47.7%)'로 가장 많았다. 특히 기성세대의 경우 '개인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고, 신세대는 '회사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집단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이고 싶다
오늘도 박민선 씨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 핑계를 생각한다. 오늘 박 씨가 택한 거짓말은 학교 선배가 주변에 왔다가 밥을 사주러 온다는 것이다. 약속이 있다는 말에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하는 팀장의 눈초리가 사납지만, 점심시간 1시간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보루다. “점심 좀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해서 동료가 싫다거나 회사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행복한 회사생활을 위해서 거짓말까지 하면서 점심을 혼자 먹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박 씨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요하지 않는 이상 회사가 싫지 않다. “그냥 좀 쿨해졌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열 시간을 같이 있는데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있는 걸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냥 그것만 인정해주면 회사생활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박 씨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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