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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로서의 사명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고 싶다”
손수민∙조일호 기자 | 승인 2017.08.25 17:01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한다. 펜과 수첩 대신, 피켓을 들고 로비로 향한다. 출근 직후와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 직전까지. 그렇게 하루 세 번, 사장 퇴진을 외친다. 한 달 전, 고작 열 명이서 시작한 시위. 하지만 이젠 350여명의 노조원이 시위에 동참한다.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마음들이 로비를 가득 채웠다. 

PD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제작 중단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곤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는 것 뿐. 이마저도 회사 출입이 가능할 때의 얘기다. 목에 맨 출입증이 어느 날 갑자기 막힐지도 모른다. 제작 중단 한 달째에 접어든 MBC PD수첩 PD들의 이야기다. 8월 17일 상암동 MBC 사옥에서 PD수첩 서정문, 조진영PD를 만났다.

서PD와 조PD는 각각 2007년, 2008년 공채로 MBC에 입사했다. 김재철 사장이 ‘낙하산’ 논란으로 사장이 되던 2012년에 서PD는 <PD수첩> 조연출에서 연출자로 입봉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가 왔지만 아이템 발제부터 쉽지 않았다. 권력에 비판적인 아이템은 너무나 쉽게 ‘킬’ 당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가 38대 검찰총장으로 내정됐던 한상대 후보자의 의혹들을 취재하려고 팀장에게 보고한 다음 날, 타 매체의 검찰 출입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서PD, 그 아이템 안 다루기로 했다며?” 아이템의 통과 여부를 본인 보다 검찰 출입 기자가 먼저 안 것이다. 머지않아 MBC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조PD 역시 <생방송 금요와이드>로 막 입봉하던 때다. 

▲ 서정문PD, 조진영PD

- (8월 15일 기준) PD수첩이 결방된 지 4주째다. 그런데 결방되는 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 보인다.
조진영(이하 조): 그래서 더 슬프다. PD수첩이 방송 안 되는 것조차 사람들이 잘 모른다. 며칠 전에 간부들이 우리에게 ‘PD수첩이 결방 돼 생긴 경제적인 손실을 묻겠다’더라. 그래서 그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람들이 방송 안 나가는 것조차 모르는데 무슨 말이냐’고.
서정문(이하 서): 그나마 사내에선 외롭지 않다. 지난 7월 21일 제작중단을 선언할 때는 PD수첩 PD 열 명이 1층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까 시사제작국이 참여하고 카메라 기자들, 보도국 기자들이 시위에 동참해 이젠 회사 로비가 꽉 찬다. 사내에선 우리가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걸 느끼지만, 과연 이게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 회사와 PD들 간에 갈등이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제작중단까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조: 제작중단을 촉발한 아이템은 이영백, 조윤미PD가 발제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관한 거였다. 해당 아이템의 기획 의도는, 구금된 한 위원장을 통해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이었다. 그걸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이 거절했고 아이템 조율을 위한 소통까지 거부당하자 PD들이 제작중단에 나섰다. 국장이 그 아이템을 거절한 이유는 ‘노조원은 노조 아이템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서: 국장이 우리더러 ‘당신들의 수장을 감옥에서 꺼내기 위해 이 아이템을 다루는 것은 방송법에 저촉된다’고 했다. 한국의 지상파에서 가장 오래된 시사보도 프로그램,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하는 PD들에게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린 노조원이기 전에 PD다. 하지만 회사는 우리를 PD로 보지 않는다. 자기 양심대로 움직이면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찾아내서 고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시사교양PD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했다. 지난 5년 간 그런 일을 숱하게 당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저렇게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 각종 징계나 인사로 우릴 괴롭히는 그들에게 당하고만 있지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부당한 근로 조건을 바로잡자.’

- 공영방송 PD들에겐 어떤 근로조건이 필요한가.
서: 2014년에 서울남부지법에서 노동조합을 상대로 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판결문에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 명시돼 있다. 요지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근로조건’이라는 것이었다. 공정방송을 사수하기 위한 2012년 MBC 총파업은 우리들의 합당한 권리라는 말이었다. 나아가 어떤 아이템을 선정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의 의사소통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나나 조진영 PD는 MBC의 그런 시절을 겪어본 마지막 세대다. 2012년 이후로 들어온 시사교양 PD들은 팀장과 국장과 1대1로 대화해 본 적도, 자기의 소신대로 합리적으로 토론하면서 방송을 만들어 본 적도 없다. 내부적으로 활발히 소통하며 방송을 만들지 못했다는 말이다. 

방송의 공정성이 준수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 방송의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제시와 참여 하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여부가 보다 객관적인 판단기준으로 기능한다. (...) 사용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여 방송의 제작, 편집 및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관련 제규정에서 정한 00의 의무를 위반하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객관적 법질서로서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며….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 판결, 2012가합3891)

- 내용을 어떻게 손보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윗선에서 있었나.
서: 예를 들어 세월호 아이템을 다룰 땐 ‘청와대라는 말을 빼라’, ‘유가족들이 우는 장면을 줄여라’는 지시가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인터뷰이까지 빼라고 하기도 했다. ‘표창원을 빼라’, ‘심상정은 인터뷰하지 마라’는 식이었다.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 인터뷰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주문인데 근거도 없이 그냥 빼라는 거다.
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에 무상급식을 없애겠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을 내가 다뤘다. 당시 경남도청에 어머님들이 몰려와서 식판을 들고 ‘우리 아이들의 식사도 교육이다’면서 시위를 했다. 그 모습을 당연히 영상에 넣었고. ‘엄마들이 왜 길가에 나앉았는가’를 궁금해 하는 게 언론인의 자세 아닌가. 근데 국장이 그러더라. “저 사람들 일반 엄마들 아니지 않냐. 일반 엄마들이 왜 집에서 밥 안 하고 저기 나와 있냐.” 이해가 안 되니까 그 장면을 빼라는 거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대가나 어떤 배후 세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생각을 가진 국장을 상대해야 했다. 내 기억에 그때 그 장면들을 거의 다 뺐다. 결국 PD는 방송을 해야 하니까. 그것 가지고 씨름하다 방송시간을 놓치면 안 되니까.

▲ 제작중단 이후 매일 세 번씩 건물 안팎에서 시위를 이어가는 PD수첩 PD들.

- MBC노조는 오는 9월에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2012년에 진행한 170일간의 파업은 노조에게 아무 승산 없이 끝나지 않았나.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그때 역시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시민들이 많았다.
서: 맞다. 우리가 170일 동안 파업을 했는데 시민들께서는 무한도전 6개월 결방 정도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MBC 파업이라는 게 혹은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파업이라는 게 시민들께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고, 그게 제작 중단이라는 결정으로 이어진 거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요새 잘 나가지 않느냐. 한 번은 <그것이 알고싶다> PD가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 했다. 다만 MBC, KBS가 알아서 망가져준 거다’라고. 지금 그렇게 <PD수첩>을 망가뜨린 책임자들은 지방사 사장으로 가 있다. 그게 지금 MBC의 현실이다.

- 그럼 왜 그때 더 저항하지 않았나. 항간에선 ‘5년 간 뭐하다 왜 이제 서야 목소리를 내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서: 그간 우리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점을 국민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내 경우엔 지난 5년간 실제 제작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이 7~8개월밖에 안 됐다.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나서 4년 가까이 제작을 못하면서 지냈기 때문이다. PD들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뤄보려고 하면 간부들은 그들을 비제작부서로 쫓아냈다. 주조정실이나 미래방송연구실, 하물며 MBC에서 운영하는 스케이트장으로까지 PD들을 내보냈다. 그 빈자리는 시용PD라고 하는, 회사 측의 입장을 거의 대변하다시피 하는 대체 인력들이 채웠다. 뉴스데스크가 그렇게 망가졌다. 시청률이 바닥을 치고 사회적으로 흉기에 가까운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PD들마저 쫓겨나면 PD수첩 역시 사측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돼 사회의 흉기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일종의 타협이라면 타협일수도 있지만, PD들은 이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혹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저항을 해왔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물에 물탄 듯 지내왔더라면 벌써 5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다시 이렇게 나설 이유도 없다. 


- 3년 만에 ‘바깥(비제작부서)’에서 돌아온 서정문 PD의 입장이 그렇다면, 그간 ‘안(제작부서)’에서 PD수첩을 제작해 온 조진영 PD는 지난 5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조: 제작중단을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사례들을 모으다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지난 4년간의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가 중요한 일들을 많이 안 다뤄왔다는 점이다. 연말에 한 해 동안 다뤘던 아이템들을 바탕으로 연말 하이라이트를 하는데, 막상 보니 방송할 게 없었다. 그간 중요한 이슈를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굵직한 이슈를 비중 있게 다뤄왔다면 그 후속편을 취재해서 내보낼 텐데 주로 사건사고 위주의 아이템을 다뤘어서 방송할 게 없었다. 내가 다룬 아이템 중에 시청률이 잘 나왔던 게 전자발찌와 성추행범 관리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연말에 후속방송을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근데 대부분이 그런 아이템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오늘이 와서 참 다행’이란 점이다. 이제라도 참상을 알릴 수 있어서, PD들과 기자들, 아나운서들이 뜻을 모아 드디어 우리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D수첩을 시작으로 제작 거부가 확산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제작거부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인터뷰 시작 전에 조진영 PD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간 임원진들이 PD들에게 보여 온 태도는 PD들에게 무력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한 인간의 존엄을 해쳤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좀 더 설명해 달라.
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피해자들이거나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을 만나고 오면 ‘대충 해야지’ 같은 생각을 절대 못 한다. 악착 같이 해야 하고, 또 그러고 싶은데 아이템 방향을 두고서 거의 매번 내부에서 부침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첫 의도와는 다르게 방송이 나가면 어느 쪽에서든 좋은 소리 한번을 듣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람이 변해 갔다. 자괴감에 빠지는 거다. 이도저도 아닌 영상을 만들면서 스스로 ‘내가 바보지…’ 하고 자조했다. 그러다 ‘이 일이 나를 계속 갉아 먹는구나’란 걸 알게 됐다. 비슷한 생각을 한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고, 일부는 병을 얻었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정신이 아픈 경우도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되는 자괴감을 뒤로하고 영상을 만든다는 것이 PD로서의 나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조진영이라는 한 사람을 지켜주진 못했다.
서: 5년 전에 파업이 끝나자마자 난 제작을 못하게 됐다. PD가 제작을 못하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MBC성남지국으로 출근을 했는데 사실 거긴 일이 없다. 근데 거길 가야 되는 거다. 출근길에서 매번 자괴감을 느꼈다. 성남지국에서의 일이 미천하다든가 내 격에 안 맞는다든가 그런 게 아니다. 그 인사 자체가 모욕을 주기 위한 인사라는 말이다. 모욕감을 심어주기 위한.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한. 그래서 이번에도 제작거부란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도 속으로는 두려웠다. 출구가 없는 이 싸움이 지난 파업처럼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땐 회사가 내게 또 어떤 학대를 가할지, 그때 난 그걸 견딜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무서웠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말해야 했다. 회사가 나를 이런 식으로 학대하는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좋은 방송을 하고 싶고, 좋은 PD가 되고 싶고,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까지 학대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야 했다. 우리에게 방법은 제작중단 뿐이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서: 글쎄, 내일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어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은 이게 지는 판은 아닐 거라며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국정과제 중에 공영방송 정상화도 있었다. 방송통신위원장도 그런 의지를 갖고 계신 분 같다. 문제는 MBC나 KBS가 처한 상황을 이제는 국민께서도 알아주셔야 한다는 거다. 지난 5년간 MBC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께 보여드릴테니 이제는 공영방송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을 모아서 방통위 같은 기관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함께 압박해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이번엔 2012년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 “그간 우리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점을 국민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인터뷰는 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마침 노조 사무실에서 아나운서국 총회가 열리고 있어 인터뷰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날 아나운서국은 PD들과 기자들의 제작거부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MBC노조는 오는 9월에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PD수첩 PD들의 제작중단은 ‘2017년 MBC 총파업’의 단초가 됐다. 이번 투쟁은 5년 전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파업 끝에 그들은 비제작부서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을까. 파업 끝에 그들은 원하는 대로 ‘좋은 PD’가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이 점을 궁금해 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고 그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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