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 작가, 파워 블로거, 페이스북 스타, 퇴진 요정. 모두 MBC 김민식 PD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올해 1월 나온 그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지금까지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2천 명에 달한다. 그가 되찾고 싶어하는 수식어도 있다. ‘드라마 PD’다. 김 PD는 시트콤 <뉴 논스톱>, 드라마 <내조의 여왕>등 톡톡 튀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은 작품들을 연출했지만 지난 5년 동안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

 

“일일 연속극 연출을 제의 받고 제작진과 배우 미팅까지 했어요.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 여기서 나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겠어’, ‘약간 우울한 이야기지만 이 배우를 써서 스토리 라인을 이렇게 하면 좋겠어’라며 어떻게든 재밌게 만들어보려 했는데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이화여대 언론고시반에 면접 위원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는데, 지하 주차장으로 쫙 들어가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핸들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꺼억꺼억, 소리 내서 울었죠."

 

지난 5년 간 가장 답답했던 때를 묻자 김민식 PD가 들려준 일화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난 2012년 1월부터 170일간 방송 공정성 회복을 외치며 파업에 참가했던 때도 아니었다. 지난 6월 대기 발령 통보를 받았을 때도, 7월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을 때도 아니었다. ‘다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무너진 2014년의 어느 날이었다.

 

“나에게 왜 이 비싼 돈을 주고도 일을 시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그가 지난 6월 4일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열린 ‘MBC 결의의 날’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 말이다. 앞선 6월 2일에는 회사 안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수차례 외쳤다. 지난달 13일 열린 첫번째 인사위원회에서 “당신이 일을 못 해서 시키지 않았다”는 한 임원의 말에 그는 이렇게 받아쳤다고 밝혔다. ”지난 1월에 제가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냈는데 10만 부가 팔렸습니다. 지난 상반기에 나온 1만5천권의 책 중 제 책이 8위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김 PD의 공세에 “괴로워 했다”는 경영진은 지난 11일 열린 세번째 인사위원회에서 그에게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았다. 회사는 17일 ‘취업 규칙 위반'이라는 사유로 김 PD에게 출근정지 20일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페이스북에 “이의제기하고 다시 인사위 가겠다”고 불복 의사를 밝혔다.

 

시트콤과 드라마를 만들던 김민식 PD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방송 공정성 회복 투쟁에 나선 걸까. 두번째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20일 오후, 강남역 근처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김민식 PD를 만났다.

 

▲ 7월 20일 오후, MBC 김민식 PD가 강남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야기 ‘덕후’ 김민식

 

김민식 PD의 일상은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는 매일 자신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가장 즐겨 읽는 것은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페이스북’이 됐다. 밤에도 그는 둘째 딸 민서 양과 그때그때 주인공을 정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텔링 게임’을 하다가 잠든다.
 

“아이에게 ‘오늘은 몇 명 할까’ 하면  ‘주인공 3명’ 또는 ‘5명’이라고 해요. 첫번째 주인공을 민서가 백설공주라고 하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백설공주가 캠핑을 갔어, 그런데 먹을 게 없잖아. 두번째 주인공 얘기해봐.’ 민서가 ‘숲속의 잠자는 공주.’ 제가 ‘먹을 게 없어가지고 옆에를 봤더니 어떤 여자가 자고 있는데… 어, 100살도 넘은 할머니가 자고 있어, 100년 넘게 자고 있었던 거지.’ 뭐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게, 그러다가 같이 잠드는 게 자기 직전에 하는 일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인 김승현(24) 씨는 2012년 2학기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이해’ 특강에서 김 PD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김 씨는 “그때 PD님이 동방신기 팬픽을 읽고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며 “중년 남성이 믹키유천과 시아준수 커플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하는데, 스토리텔링 연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한다는 게 무척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야기에 대한 열정은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사소한 부분에도 녹아있었다. “창작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메일 주소에도 나라는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야 한다”고 하는 김 PD에게 이메일주소를 묻자 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사인필드(Seinfeld)”라고 말했다.
 

“<사인필드>는 미국의 80~90년대 최고의 시트콤이었어요. MBC 입사하고 나서 처음 이메일 주소를 만들 때, ‘나는 한국에서 사인필드 같은 시트콤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어’하고 만들었죠. 그 덕에 시트콤을 연출하게 됐어요. 어느 날 저희 부장이 저에게 ‘아마존’에서 클래식 CD가 잘못 왔으니 항의 메일을 대신 써달라고 하셨어요. 그 때 제 이메일 주소를 보시고 ‘<사인필드>, 이거 미국 시트콤 아니냐’고 묻길래 ‘흠흠, 저는 한국의 <사인필드>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대답했더니 다음에 시트콤 제작을 할 때 저를 불러주신 거예요.”

 

그렇다면 동료로서 김민식 PD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도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김민식 PD가 현업에서 활약하던 2001년에 만든 카페 <시트콤 사랑>이 남아있다. 약 2천 명이 가입돼 있는 이 카페에는 2001년 김 PD가 <뉴 논스톱>을 연출하며 썼던 연출 일기에서부터 2015년 그가 연출한 드라마 <여왕의 꽃>을 보고 회원들이 썼던 감상문도 올라와 있다. 그 중 2002년 3월 28일, 김민식 PD는 <주철환 교수님의 PD론>이라는 글에서 주철환 전 PD가 당시 MBC 홈페이지(imbc.com) <뉴 논스톱> 게시판에 자신에 대해 쓴 글을 소개했다. 아래 인용문은 그 글의 일부다.

 

“처음 김민식PD가 입사했을 때 저는 그의 모습이 골프의 천재인 타이거 우즈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끔 미스터 우즈라고 불렀던 적도 있습니다. 그는 일할 땐 너무 신명나게 일하고 회식 자리 같은 데서는 또 너무나 흥겹게 잘 놀던 PD였습니다. (중략) 그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 이를테면 솔직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하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쓴 글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자신만의 특화된 취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죠.”

 

MBC 예능국의 후배 권성민 PD도 지난달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2년 파업이 끝나고 회사에 염증을 느끼고 있을 때 고민 끝에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갔던 사람이 민식 선배였다”고 썼다. “선배와는 개인적으로만 연이 있고 일터에서 함께 만난 적은 없다”고 밝힌 권 PD는 글에서 “내가 정직과 유배를 거치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벌일 때마다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뭐 어떠냐’고 말해준 사람은 민식 선배 뿐이었다”고 했다. 권 PD는 지난 2015년 회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그려 페이스북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렸다가 해고된 뒤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 지난해 5월 복직했다. 권 PD가 이 글을 올린 13일은 김민식 PD가 첫번째 인사위원회에 참석한 날이었다.

 

▲ 김민식 PD가 6월 2일 MBC 안 구름다리 위에서 진행한 페이스북 라이브 게시글. (사진 캡쳐= 김민식 PD 페이스북)

‘덕후’가 ‘퇴진 요정’이 되기까지

 

김민식 PD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결정적인 계기는 6월 2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 오전 11시 반, 김 PD는 회사 안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켰다. 그는 “안녕하십니까.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저자 김민식 PD입니다”라고 인사하더니 곧 MBC 내부의 구름다리로 걸어 나가 쩌렁쩌렁하게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쳤다.

 

그런 김 PD에게 돌아온 건 누리꾼이 붙여준 ‘퇴진 요정’이라는 별명과 경영진으로부터의 대기발령이었다. 6월 13일 경영진은 김 PD에게 ‘업무 방해’와 ‘직장 질서 문란’이라는 이유로 대기발령 1개월을 통보했다. 아래 인용문은 대기발령 조치 후 사측으로부터 받은 인사위원회 개최 통보서 중 인사위원회 부의 사유다.

 

“심의대상자는 회사 내 불특정 장소에서 수 십 차례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고성을 질러,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표이사에 대하여 근거 없이 “물러나라”고 하여 회사의 전체적인 지휘체계를 훼손하고 직장질서를 문란하게 하였음(취업규칙 제3조, 제4조, 제66조 제1호 위반).”

 

김민식 PD가 그토록 김장겸 MBC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까닭은 ‘업무 방해’라는 사적인 이유와 ‘방송 공정성 회복’이라는 공적인 이유 때문이다. 김 PD는 “지난 5년 간 내가 연출을 못 하게 방해한 것이 김 사장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총파업 때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부위원장이었던 그는 보도국으로 돌아갈 후배들을 대신해 보도 공정성 회복을 요구하는 데에 앞장섰다. 하지만 그 직전까지도 김 PD는 ‘파업 반대론자’였다. 그는 “예능은 매주 전쟁터”라며 “한 3주 파업하면 그 여파가 있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이나 시사교양 PD들에게 ‘왜 치사하게 파업으로만 싸우려고 하냐, 검열하면 평소에 들이 받고 개인적으로 싸워야지’라고 했죠.” 하지만 보도국 내부 의견이 묵살되자 그도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김민식 PD는 파업 당시에도 집회의 사회를 보고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등 그의 끼를 살렸다. 현재 유튜브 조회수 23만 회를 돌파한 ‘MBC 프리덤’은 가수 UV의 ‘이태원 프리덤’의 가사를 개사해 MBC노조 조합원들이 춤을 추며 랩을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이 영상의 1분 30초 경, 까만색 폴라티와 자켓, 청바지를 입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핸드폰을 보며 들어오다가 카메라를 발견하자 팔다리를 위아래로 미친듯이 휘젓는 사람이 바로 김민식 PD다. 그가 이 영상을 연출했다.

 

‘별 일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던 파업은 170일이나 이어져 이후 김민식 PD가 파업에서 복귀한 후에도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김 PD는 “저는 공대를 나와 저널리즘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인데, 보도국에 와서 언론이 어쩌고 저널리즘이 어쩌고 하니까 그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게 돼 버린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당시 김장겸 사장은 보도국 정치부장이었다.

 

2014년 일일 드라마 연출이 좌절된 데에 이어, 2년 전 겨우 드라마 <여왕의 꽃> 야외 연출을 맡았던 김 PD의 자리는 드라마가 끝나고 편성국 송출실로 옮겨졌다. 그는 “일개 드라마 PD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면,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거쳐 사장이 됐으니 기자나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겠어요?”라고 덧붙였다.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칭하는 김민식 PD지만,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PD로서 MBC라는 언론사에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이었다. 2005년, <PD수첩>이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을 보도해 큰 파장이 일었다. 그 보도가 나간 날 김 PD는 귀가해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인. 우린 이제 망했어. 이 보도가 사실이면 우린 국민 영웅을 죽인 게 되고, 보도가 거짓이면 우리는 국민 영웅을 모함한 것이 돼. 어떤 식이든 MBC는 망했어. 근데 그거 알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는 건 MBC 밖에 없어.”

 

김 PD는 지난 세월호 보도와 대통령 선거 보도를 언급하며 “약한 사람들이 ‘제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조사해주세요’, 라고 찾아갈 수 있으려면 언론이 살아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은 언론이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게 그가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이유였다.
 

▲ 지난달 27일, 김민식 PD가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 시사회에서 관객들과 함께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김 PD는 이 모습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중계했다. (사진 캡쳐= 김민식 PD 페이스북)

이야기가 김민식 PD의 무기다

 

“제가 뭐 보여줄까요? 흐흐, 좀 유치하긴 한데.”

 

인터뷰 도중 김민식 PD는 자신이 매고 온 작은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꺼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영화 <영웅본색>의 ‘풍림각 총격전’으로 불리는 장면이었다. 영상 속의 배우 주윤발은 적들이 모여 있는 ‘풍림각’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곳곳에 놓여있는 화분에 자신의 무기를 숨겼다. 김 PD는 핸드폰 화면 속 주윤발을 가리키며 “이게 저예요”라며 웃었다.

 

“나는 그냥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쩌다보니까 내가 이야기의 한복판에 들어와 버렸어요. 그러니 역시나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싸우고 싶고, 사람들에게 이 과정을 재미나게 풀어주고 싶어요.”

 

영상 속 주윤발이 김민식 PD라면 주윤발이 곳곳에 숨겨놓는 무기들은 김민식 PD의 ‘스토리텔링’이다. 김 PD는 드라마 연출에는 활용하지 못하게 된 열정과 내공을 ‘MBC 정상화’ 투쟁에 쏟고 있었다. 김 PD는 6월 2일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 당시 핸드폰을 셀카봉이 아니라 손으로 든 것도 “다 계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바스트 샷’이거든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MBC의 풍경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이야기잖아요.” 그의 계산은 맞아 떨어졌다. 그날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의 조회수는 약 3만 4천회를 기록했고 댓글은 약 170개나 달렸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많이 떨리고 긴장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겁이 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설레느냐 안 설레느냐예요. 페이스북 하기 직전에 ‘내가 여기다 김장겸에게 물러나라고 한번 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 설레고 재밌을 것 같고,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겁이 좀 나도 하는 거죠.”

 

첫번째 인사위를 앞둔 지난달 11일 MBC노조 페이스북에서는 김PD가 인사위원회에 들어가서 읽을 응원 댓글을 모집한다며 ‘국민 배심원단 이벤트’가 열렸다. 게시글에는 댓글이 약 370개 달렸다. 허유신 MBC노조 홍보국장은 지난달 10일 통화에서  “노조 집행부에서도 김민식 PD가 이렇게 나서줘서 고맙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 이벤트도 김PD의 아이디어였다. 김민식 PD는 “시트콤, 드라마를 오랜 세월 연출하면서 느낀 건데, 시청자 100만 명 중 코어 100명을 잘 잡아야 된다”며 “이들의 마음을 잘 잡으면 이 사람들은 뭐라도 해 줘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2년 <뉴 논스톱> 촬영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김 PD는 시트콤의 마무리를 배우 조인성과 박경림이 결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 때 그는 MBC 홈페이지와 카페에 공지를 올리고 시청자 하객을 모집했다. 아래 ‘청첩장’은 김민식 PD가 그해 4월 21일, 결혼식 장면 촬영을 앞두고 카페 <시트콤 사랑>에 올렸던 글 일부다.

 

“5월의 신랑 신부가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그간 여러분의 성원 속에 아름다운 사랑을 가꿔가던 두 사람이 하나되는 자리를 가지려 합니다.

이에 두 사람의 사랑을 아껴주시던 많은 분들을 이 축복받은 자리에 모시려 합니다.

신랑 조인성

신부 박경림

주최 문화대 사체과

장소 문화대 보라매 공원 캠퍼스 (호수 일각-자세한 장소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일자 4월 24일 (수요일) 오후 2시

(후략)”

 

김 PD는 이에 대해 “중요한 건 이 사람들에게 계속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던 것”이라며 얼마 전 응원 댓글 이벤트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노조에 글을 남김으로써 ‘앞으로의 싸움을 지켜보고 응원하겠다’ 지지하는 것이 되잖아요. 이런 걸 조금씩 끌어들일 수 있는 인터랙티브한 공간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민식 PD는 이 날을 기다려 왔다

 

두 번째 인사위원회가 열리던 지난달 21일 오후, 김민식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일본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H2> 속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다. 사진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자 야구 선수인 히데오는 말했다. “난 이 날을 위하여 야구를 해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김 PD는 오후 2시 반쯤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회사 앞에 나타났다. 이 날은 오후 2시부터 MBC 사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모두 봉쇄되고 보안 요원들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용무를 물어본 후 기자면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김 PD는 그 소식을 듣고 회사 정문 앞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를 켰다. 그는 짤막히 상황을 설명한 후에 “여러분, 기자들의 출입을 막는 방송사가 언론사로서 자격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몇 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녀와서 뵙겠습니다”라고 한 후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유리문 위에 붙어있는 길쭉하고 파란 플래카드에는 까만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 MBC가 함께 합니다.”

 

▲ 지난달 21일 오후, 인사위원회에 출석하기 전 김민식 PD가 MBC 사옥 앞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김민식 PD에게 그가 생각하는 MBC 정상화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MBC 정상화는 간단히 해직자 복직, 유배자 현업 복귀입니다. 공자에게 한 제자가 ‘정치란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이름을 바로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나는 PD는 PD답게, 기자는 기자답게, 각자 자기가 하던 일을 돌아가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싸움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서 즐거운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김 PD는 구체적인 구상은 “안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지난 5년 간 다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거듭 좌절됐다. 그래서 그는 현재를 산다. 김 PD는 웃으며 “저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요”라고 말했다.

 

김민식 PD는 저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썼다. 취미 삼아 중국어와 일본어 회화책을 외운다는 그에게 지인들이 ‘그런 힘든 일을 왜 하냐’고 묻자 그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PD가 지난 6월 2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고 한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요즘 저의 꿈은 MBC 사장님이 나가시는 겁니다”라며 “이럴 때 난 뭘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겁니다” 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고 한 번의 인사위원회를 거쳤다. 바로 다음 날에는 두번째 인사위원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로 힘들지 않을까. 그는 웃으며 “안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요즘 느끼는 건요, 나는 이 날을 기다려 왔구나. 한번 작정하고 미친듯이 싸울 수 있는 그 시기를 기다려 왔다고 생각해요. 지금 그게 온 거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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