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화창한 봄의 끝 무렵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던 중 대통령과 동행한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급하게 귀국했고 곧 면직됐다. 방미 수행 중 주미한국대사관의 여성인턴을 성추행해서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며칠 뒤, 경향신문에 파격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 제목만 보면 윤창중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읽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우리나라에서 입이 더럽기로 소문난 자”로 표현했다. “입이 더러운 자는 보통 손은 깨끗하다”며 “만에 하나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말과 손과 성기가 삼위일체로 더러운 보기 드문 인물이 된다”고 평가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통쾌함의 웃음이다. 칼럼은 윤창중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반어법을 통해서다. 독자들은 “제목 보고 욱해서 읽으려다 완전 빵 터져 감.”(ID: Daeha Park), “아이러니컬 기사의 정석.”(ID: Kim Sang In)라며 통쾌함을 드러냈다. 요즘말로 하면 ‘사이다 칼럼’쯤 되겠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정치인도 아니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개그맨도 아니다. 

칼럼의 저자를 4월의 끝자락, 교보문고가 위치한 합정의 어느 복합문화단지에서 만났다. 그 곳에서 저자는 교보문고 오픈 기념 강연이 있다고 했다. 복합문화단지의 카페엔 토요일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그 사이로 한 남성이 들어오자 소곤댄다. “어머, 그 왜 기생충 박사 있잖아.” 등에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책을 들었다. 봄에 걸맞은 분홍색 체크무늬셔츠도 입었다. 칼럼을 쓴, 기생충을 연구하는 단국대 서민 교수(51)다.

▲강연을 하고 있는 서민 교수

“이렇게 한적한 데가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진짜.” 반어법의 전문가다웠다. 카페의 음악은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여전히 컸고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은 소리치며 뛰어다니기 바빴다. 초면의 어색함을 깨려는 서민 교수의 배려와 유머가 돋보였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자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투잡을 뛰고 있어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서 교수가 말한 ‘투잡’은 말 그대로 ‘two job’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둘 이상의 여러 분야에서 돋보이는 그의 활약상 때문이다.

서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대 85학번이다. 졸업 후 단국대학교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는 18년째다. 2012년 영국고고학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대한기생충학회에서 학술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 있는 학자다. 이젠 카페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바로 알아볼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은 생소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통해 기생충학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서 교수 특유의 문체로 재밌게 풀어냈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MBC 〈컬투의 베란다쇼〉, KBS 〈아침마당〉, TVN 〈어쩌다 어른〉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기생충 학자로 얼굴을 알렸다. 수년 간, 강연에서 '기생충으로 본 남녀 관계', ‘기생충에게 배우는 삶의 교훈’ 등 기생충을 인간의 삶에 비유해왔다. 사람들은 쉽게 흥미를 붙였다. 결국 대한민국에 기생충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에도 서 교수의 행보는 기생충 연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작가 서민, 정치평론가 서민, 남성 페미니스트 서민.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서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작가, 정치평론가 서민의 시작은 암담했던 어린 시절”
“우선 어릴 적, 어릴 적은 정말 암담했어요.”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인의 얼굴에는 여러 타입이 있는데 저는 김제동, 주진우로 대표되는 그룹입니다. 많은 상처를 안고 어른이 되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그룹이죠.’ 중학교 때까지 외모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잘하거나 좋아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우리 아버지만 보면 벌벌 떨었어요. 말도 더듬고. 틱 장애까지 있었죠.” 서 교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혼자 벼랑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북한은 왜 안 쳐들어올까. 우리 다 같이 죽자 이런 생각만 했거든.” 서 교수의 자존감은 말 그대로 ‘바닥’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 교수에게 적성 검사결과표가 날아들었다. 작은 종잇조각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 종이는 서 교수에게 의대에 적성이 있다고 했다. “그 전까지 제가 무기력한 이유는 그거였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도 나한테 뭘 잘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의대를 목표로 진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버지는 특히 그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를 하고 온 날이면 ‘진짜 훌륭한 사람은 잠도 다 자면서 공부한다’며 뚜드려 맞기도 했다. 그래도 몰래 후레쉬에 책을 비춰가며 공부를 했다. 결국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85학번으로 입학했다. “목표가 있으면 사람이 장애물도 능히 극복하게 되더라구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 너무 좋아합니다. 근데 이미 다른 사람이 말해버려서 뭐··(웃음)” 

그 후, 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글을 쓰겠다는 목표. 처음에는 그냥 뜨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중학교 때까지 너무 자존감이 없이 살아서 뜨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의대에서 서 교수는 ‘천재작가’ 소리를 들었다. 사실 의대에선 주어 동사만 갖추면 다 천재작가란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쓴 첫 책이 쫄딱 망했다. 좌절하지 않고 또 노력했다. 글을 쓰는 목표는 변함이 없는데 그 이유가 변했다. 책을 읽으면서다. 깨달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바로 서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아버지가 책 읽는 것도 싫어하셔서 서른 살이 되어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혀 모르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인생에서 큰 울림을 준 책 중 하나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의는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B급 정치』라는 책을 펴냈고 최근에는 『서민적 정치』를 출간했다. 경향신문에 <서민의 어쩌면>이란 코너로 정치칼럼도 싣고 있다. 『서민적 정치』의 편집장인 생각정원 출판사의 강혜진 팀장은 “정치 이슈를 쓸 때면 전지적 관찰자 입장에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게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정치 책을 읽으면서 패배감이 들 때가 많은데요, 서민 선생님은 항상 우리가 승리했던 경험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이것이 바로 서 교수가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깨달음 같다고 설명했다. 요즘 서 교수가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패널로도 출연하는 걸 보면 빵 뜨고 싶은 소망도 이미 이룬 셈이다. 네이버 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서민의 서재는 제 2의 자궁이다.” 기자가 이를 언급하자. 손사래를 치며 “아, 나 그 말 괜히 했어. 대답하고 나서 되게 멋졌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많이 얘기했더라고. 서재는 제 2의 숙주다. 이렇게 했어야 돼. 명색이 기생충 전공인데. 기생충이 숙주로부터 많은 걸 얻는 것처럼 나도 책으로부터 많은 걸 얻으니까.”

“아직 배우고 있는 남성 페미니스트죠”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 다음으로 서 교수에게 울림을 준 책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저 같은 경우에는 남자라서 차별받은 적은 없었죠. 못생겨서 차별받은 적은 있었지만.(웃음)” 이 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여성의 감수성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이 부당하다고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서 교수가 의대 학부생이었을 당시였다. 한 여학생이 안과를 전공으로 지원했다. 200명 중 2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지만 전공진입에 실패했다. 안과는 여자를 뽑지 않아서다. 실력이 출중한 데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여학생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걸 보면서도 저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이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딸이나 내 주위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더 깊게 공부했고요.” 

서 교수는 여성신문에 <서민의 페미니즘 혁명>이란 코너로 칼럼을 싣고 있다. 서 교수는 그동안 여성신문에서 ‘메갈리아’를 소재로 여러 칼럼을 써왔다. 한창 메갈리아가 이슈였을 때, 한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는 메갈리아를 ‘치마를 입은 일베(극우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줄임말)’라고 표현했다. ‘일베’는 우리 사회에서 패륜 집단으로 인식된다. 약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일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은 칼럼을 통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이유 없이 가해지는 여혐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게 고작이었지만, 메갈이 생기고 난 뒤에는 여혐에 대해 당당히 맞서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메갈리아의 행동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메갈’을 ‘일베’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견고한 입장을 담은 서 교수의 ‘메갈리아’ 칼럼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계기로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EBS <까칠남녀>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그가 섭외된 이유는 여성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남성 패널이 참신하기 때문이리라. 서 교수는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어떻게 남자가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서 교수는 소문난 애처가다. 아내가 결혼 후 설거지를 한 횟수는 세 번에 불과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터뷰 당일 날 아침에도 설거지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까칠남녀>에서도 종종 아내 이야기를 한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서 교수의 이런 행동에 대해 ‘그의 유머가 자학적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자칫 외모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는 오해를 낳을 수 있고 여성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서 교수는 “여성이 몸으로 페미니즘을 배우는 반면, 저는 성차별의 경험이 없는 남성이 책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학습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죠. 단지 지향할 뿐”이라며 “아직도 제 안에 남성우월적인 생각이 많이 남아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 20년 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인터뷰 내내 ‘경험’과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뭔가 다른 걸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열려있어야 해요. 저는 기생충에 열려있었어요. 동병상련이랄까.” 우스갯소리로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이어 서 교수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여기에 있어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거죠. 책을 통해.” 서 교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생충의 마음이라고 했다. 사람은 억척스럽게 내 것만 챙기지만 기생충은 그렇지 않다.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도 배려심이 있다. “사람 몸 안에 있으면서 티도 안내고 웬만하면 같이 살자는 게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게 없어요.” 서 교수가 새로운 것에 항상 도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와 다른 것을 충분히 경험하고 포용하는 세상. 서 교수는 그가 소망하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계속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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